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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로그

달리기로그(1) 10km, 50분 후반대

요새 들어 10km 달리기 기록이 안정적으로 50분 후반대에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제대로 뛰는 분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만, 나름의 개인 최고기록인 55분에 곧 도달할 것 같아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운동에 탄력이 붙은 만큼, 앞으로는 블로그에 기록을 조금씩 남겨볼까 합니다. 책 이야기 말고 운동 이야기를 하겠다고 지난 겨울에 썼었는데, 다시 겨울을 목전에 두고서야 실천하게 되었네요.

10월 30일

161030

10km에 58분 12초. 60분 아래로 안정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첫 날.

 

11월 3일

161103

10km에 57분 35초. 마지막 구간에서 전력질주를 했었나 봅니다.

 

11월 5일

161105

조금만 더 하면 3년 전 개인신기록인 55분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날.

이날부터는 운동 방식을 조금 바꿨다. 그전까지 기록을 보면 1km당 페이스가 6분 30초쯤에서 시작해, 3km 구간을 지나면서 빨라지는 식이었다. 그동안 이런 기록 추이를 워밍업 구간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바라보니, 아예 뛰기 전에 15분가량을 걸으며 워밍업을 하는 게 낫겠다고 운동 방법을 수정했다.

전체 들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만, 실제 달리기 자체의 수준과 기록 향상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이날 처음 적용해봤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1km당 4분대까지 내려가는 스퍼트를 하지 않고도 매 구간 5분대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10km를 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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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 단어책 추천 세 권

수정 안내 :

최초 발행시 포함되어 있던 어느 단어장 관련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 일대일 대응 암기는 가급적 지양해야 할 방법입니다. 아무리 초보자일지라도 권하지 않습니다.


사실 영어 공부에는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좀 알겠다 싶으면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등장하게 마련이지요. 단어부터 시작해서 문법 이해도, 독해 숙련도나 듣기 실력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의 수단으로 ‘끝’을 예측합니다. 공부하는 책의 목차나, 수강하는 강의 및 과외에서 교·강사의 안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왔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를 가늠하는 것이죠.

간만에 블로그에 써보는 이 글에서는 영어 단어에 한정해서, 그러한 ‘끝’을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3권을 추천해볼까 합니다. 전반적으로, 영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교양 단어들에 관해 주로 다루는 책들입니다.

Barron’s 504 Absolutely Essential Words

504

1941년 설립된 미국의 교육전문 출판사 Barron’s에서 나온 단어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리 많이 알려진 출판사는 아닌데요,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인정하는 곳입니다^^

‘504’는 영어를 읽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하신 분들이 초·중급에서 중급으로 확실하게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교재입니다. 영어 자체의 환경 속에서 단어를 익히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42개의 레슨에 각각 12개씩의 단어가 수록돼 있습니다. 단어마다 예문이 3개씩 함께 제공되고, 해당 단어를 제대로 익혔는지 훈련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와 여러 활동(activities)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른 책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단어장 같네요. 504의 핵심은 단순히 어휘를 나열하고 뜻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어휘를 근간으로 그것의 다양한 쓰임새와 적절한 배경지식까지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종합적인 접근방법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의 레슨에 겨우(?) 12개의 단어씩만 수록된 것입니다. 차근차근 학습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교보문고 어느 회원님의 리뷰에 보니 “나만 알고 싶은 단어책“이라는 말도 나오네요. 🙂

Word Power Made Easy

wpme이어서 추천하려고 하는 ‘Word Power Made Easy’는 앞서 소개한 504 Absolutely Essential Words의 아쉬운 점을 보강하면서, 중고급의 교양 있는 단어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504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어근과 접두사/접미사를 다루는 비중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부분입니다. 우리말에서도 한자를 알면 단어의 이해도와 활용성이 커지듯, 영어에서도 단어의 근간을 이루는 어근과 접두사/접미사를 알고 있으면 어휘력에 큰 도움이 됩니다.

Word Power Made Easy는 어근과 접사를 기반으로 어휘력을 강화해주는 아주 효과적인 단어집으로, 전체 44개의 강의와 3개의 테스트를 통해 48일 동안 공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미지는 한국어판을 가져왔지만, 저렴한 가격에 원서 페이퍼백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영어 실력과 영문에 대한 부담감(?) 정도에 따라 원서와 역서 가운데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단어책이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 내 읽으며 학습하기를 강조하는 설명과 단어에 대한 설명을 통해 들려주는 저자의 다양한 이야기였습니다.

1949년 출판된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데서 신뢰가 절로 생기는 단어집입니다. 지나간 세월이 꼭 책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단어책이 60년 넘게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Word Smart

WSMRT

이번에도 번역서 표지의 스크린샷을 첨부했습니다. 저 말을 그대로 믿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SAT 등의 시험을 준비하는 “미국인들의 필독서”.

초중급 학습자에겐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학습자가 수준 높은 영어 글을 확실하게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특히 정말 미국적인 상황을 잘 녹여낸 다양한 예문이 매력인 단어 교재입니다. 원서든 번역서든 예문을 꼭 챙겨서 공부할 것을 추천합니다.

굳이 설명을 더 쓰기보다, 워드스마트 매니아로 보이는 어느 분의 블로그를 인용하겠습니다:

한국의 어휘 교재를 살펴보면 단순히 한글 뜻만 달달 외우게끔 만드는 교재가 많은데, 그렇게 공부를 해버리면 실제로 그 단어를 나의 말(speaking)과 글(writing)에 사용하는 능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맥에서 그 단어가 쓰이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워드스마트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까지 함께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다만, 교재에서 다루는 어휘의 수준 자체가 매우 높기 때문에 (현지 미국인들도 잘 모르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SAT/TOEFL/TEPS 고득점을 목표로 하는 분들에게 적합한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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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실리콘밸리의 헌책방

지난 2015년 6월에 써놨던 기록입니다. 결국 이 서점은 2016년 4월 문을 닫았습니다. (기사)


BookBuyers Facebook

BookBuyers Facebook

지금까지 한 달 째 머물고 있는 도시인 마운틴뷰는 현재 전 세계 IT의 흐름을 좌우하는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다. 거리 어디에서나 ‘Google’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고, 중심가 도로에선 잠깐 사이에도 테슬라 모델S와 시험운행 중인 구글 무인차가 한두대씩 지나 다닌다.

하지만 마운틴뷰라고 해서 IT기업과 그 직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도 ‘동네 주민’이 있고 ‘동네 가게’가 있으며, 그 중에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어제 방문한 헌책방 ‘북바이어스'(BookBuyers)다.

누가 읽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되고 초라해 보이는 페이퍼백 책부터, 엄청나게 두꺼운 옥스포드 대영영사전까지 무척 많은 책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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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중에 내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진열장 옆에 붙어있던 종이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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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바이어스 25주년..올해가 마지막일까요?

북바이어스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서점 운영을 항상 기쁘게 생각했지만, 이 일이 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인터넷과 전자책의 등장, 높아진 임대료와 최저임금 등의 이유로 북바이어스를 유지하는 것은 점점 치열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운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단계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늘어만 가는 어려움을 마주하며, 저희는 지난 2년간 가격을 낮추는 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는 다른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지역 서점으로 앞으로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줄 변화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개편했으며, 매장 내 거실 공간(Living Room area)를 새단장했습니다. 연중 계속되는 이벤트를 기획했고, 더욱 다양한 제품에 추가 할인을 적용하고 그 폭도 크게 잡았습니다. 또한 매장 내 인테리어도 가꿔 나가는 중입니다. 세 달 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북바이어스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지역 공동체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다시 가치를 줄 수 있게 되어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상품을 매력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겠죠. 지역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에게도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저희 서점에 방문해 책을 구입해주세요. 무료로 제공되는 다양한 이벤트를 함께해주세요. 큰 폭의 할인을 계속해서 누려주세요. 그렇게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친구,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찾아주세요. 마음에 들었던 점, 여러분의 지역 서점에게 바라는 점 모두 새겨 듣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보태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호트란사 어자야(Hotranatha Ajaya)

 

영어 작문과 영문법 서적을 둘러보다가 두 권을 골랐다. 내가 요즘 한국어판으로 읽고 있는 ‘먹고, 쏘고, 튄다’의 원서 ‘Eats, Shoots, Leaves’와 간결한 영어 글쓰기의 좋은 길잡이인 패트리샤 오코너의 ‘Woe is I’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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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과 함께

계산대에는 글 맨 위에 올린 단체사진에서 왼쪽 아래에 나온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분에게 “한국에서 잠시 출장 왔고, 이 번역본의 원서를 사 간다. 앞으로도 쭉 이곳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분 역시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이 서점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타트업? IT? 테크? 이것들이 바꿔 나가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이 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낡은 것이 나쁜 것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왜 그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까. 대학에서 배운 게 읽고 쓰는 것뿐이라 이런 걸까. 일상 생활에서 기술 수용도는 또래보다도 빠른 편이고, 스타트업 하겠다고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는 두 달 만에 실리콘밸리에 오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걸까.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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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짓말

스타트업에 관한 강연과 글로 활동하는 뮌헨 출신의 블로거 얀 지라드가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약간의 의역을 포함시켰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활방식, 문화에 대한 자아비판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디지털 노마드에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세 달 반 동안 나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동시에 업무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음.. 최소한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나는 내 소개를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물론 나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이 아니기도 하다. 어떤 게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디지털 노마드라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내가 거쳐간 곳은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였다. 이런 멋진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시간이 꽤 걸리는 새로운 작업들과 함께 다른 모든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무척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배운 것은, 여행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걸 창조하기란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도 원래 무척 힘든 작업이다. 뭐가 문제고 뭐가 방해가 되는지 잘 알고있는 환경에서도 그럴진대, 여행 기간에 뭔가를 만들어내기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모든 것이 더 버겁게 다가온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 꼭 해야할 일들, 꼭 관람해야할 것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이런저런 장벽들, 모르는 것들, 또는 각종 장애물까지. 모든 것이 매번 더 우리를 버겁게 한다.

그리고 당신이 인터넷에서 읽어봤음직한, 디지털 노마드가 얼마나 멋진 삶인지에 관한 글들은 일단 다 거짓말이다. 당신에게 뭔가 제품을 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혹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특정한 서비스, 그것도 아니면 코칭 세션 등을 팔기 위한..

그들은 당신에게 ‘꿈’을 팔아넘기려 애를 쓴다. 다른 말로 하면 ‘라이프스타일 패키지’일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유 패키지’, 하여간 온갖 이름을 갖다붙인 패키지들. 한 달 99달러에 모십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자유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나. 클릭 몇 번으로 자유를 산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자유에 대체 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자유(freedom)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 아닌가. 그것도 무료로(for free).

세상은 분명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걸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최근의 시간들을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간 경험하고 배운 것들 역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분명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저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간다는 게 대체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그림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 해변가에서 일하기

당신이 인터넷에서 봤음직한 해변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사진은 정확히 말하자면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에어컨이 없는 뙤약볕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시도해봐라. 몇 분 안 가서 죽을 것 같다고 느낄 것이다.

에어컨 없이 해변가에서 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그런 끝내주는 장소들은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다.

믿기 어렵다고? 그렇지 않을 거다.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름날 야외에서 한두시간 정도 업무를 해봐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업무와 여행

머무르는 지역을 바꿀 때마다 당신은 며칠의 시간을 손해 볼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있어도 일을 하는 데 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도시에 갔으면 그곳을 둘러봐야하지 않겠는가.

혹시 그런 쪽에 취미가 없다고 해도, 당신은 그 도시에서 간단한 생필품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지 등을 새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삼시세끼 다 맥도날드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2주에 한 번씩 지역을 바꾸면서 규칙적인 업무 패턴을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대충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나의 업무 스타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끔은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방문한 도시가 맘에 들지 않거나, 호스텔이 거지같을 때면..

이걸 생각해보면 쉬울 거다. 사무실이 아닌 곳들에서 ‘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그래, 때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집안이 완전히 통제된 환경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소한 몇 가지만 틀어져도 집중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 거주

거주지로서 괜찮으면서 일까지 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무지막지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여기에서 인터넷은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뭐 에어비앤비로 해결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엔 진짜 집이 거의 없다. 최소한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에선 그랬다. 대개는 호스텔의 도미토리 광고였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 괜찮은 실제 거주용 아파트가 올라왔다고 해도, 지낼만한 곳들은 예약이 꽉 차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잠은 호스텔에서 자고,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 역시 썩 괜찮은 대안이 아니었다. 시도는 해봤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스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또 호스텔에서 자는 경우엔 제대로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다. 다음날이면 일을 하기엔 너무 피곤하기 일쑤다. 귀마개를 끼고 잔다고 해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 다섯 잔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돈이 많다면 모르겠다만.. 매번 호텔에 투숙하는 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 고립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나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단기 렌트를 할 수 있는 아파트나 그 외 괜찮은 장소를 찾아서 100%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였다. 마치 지금처럼.

지난 이틀간은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려고 다가오는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다른 모두가 재밌게 놀고 있을 때, 모두들 술 한 잔 걸치고 파티를 즐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세 달 반 사이에 나는 파티에 겨우 두 번 갈 수 있었을 뿐이다.

결론은 이렇다:

뭔가를 해내고 싶다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다면(그저 관리하기 말고), 남들 하는 걸 똑같이 즐기면서 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냥 집에 있었어도 뭐…

# 외로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마치 꿈 속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개소리'(bullshit)라고 한다. 이런 삶의 방식, 진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무척 외롭기도 하다. 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이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데에 걸림돌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일 것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보낼 줄 모른다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절대 당신에가 맞는 방식이 아니다.

# 루틴

업무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는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다니는 동안에는 이런 루틴을 지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나에게 루틴을 지키는 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뭔가를 계속 하는 것! 개인적으로 효과를 본 방법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걸 발행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스 이동으로 써버렸는지, 그날 무슨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한 번 이걸 해내니까, 점차 다른 일들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루틴을 정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뭔가 제대로 해내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중요한 걸 살펴보자.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 이건 당신에게 꿈을 팔아서 지갑을 채우는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끝내주는 삶, 디지털 노마드라는 꿈!

디지털 노마드 현상에 버블이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한 명만 나에게 소개해달라. 단, 그 사람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하고 뭔가 팔려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자유 패키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인터넷 강의, 무슨무슨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티켓, 다 안 된다.

진짜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들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뽐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고, 그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다.

#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내가 보고들은 바로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프리랜서 활동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친 활동과 노력으로 당신의 이름값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고, 당장 내일 어느 섬나라에 가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 주위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세우고, 작업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채워야 한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자유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인터넷 강의 수강하는 시간보다는 훨씬 오래.

# 관리 vs 설립 (management vs. building)

디지털 노마드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도 있긴 하다. 이미 잘 돌아가는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로 변신하기에 앞서서 이미 설립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비즈니스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은, 그 시작을 여행과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는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상품화한다거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경우엔 얘기가 통한다. 실제로 시장에서 그런 상품이 팔리니까. 아마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비즈니스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소위 디지털 노마드들이 그 길로 들어선 이유다. 음..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니까. 또 나는 이처럼 돌아가는 것들을 진지하게 믿는 편이다.

난 그저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에 마음을 쏟기 전에 몇 가지를 알아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걸 믿게 되기 전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믿기에 앞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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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씁니다

‘샤오미처럼’ 중국은 원래 강대국이었다

책비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샤오미처럼’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샤오미처럼’이고 실제 내용의 70% 가까이가 샤오미 관련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30%는 샤오미의 케이스이긴 하지만 어느 모바일/인터넷 기업이든 참고할 만한 ‘스타트업 지침서’의 내용과, 텐센트 등 중국의 다른 모바일/인터넷 공룡을 이끄는 수장들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경영 지침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샤오미의 역사와 전략을 다루는 70% 부분은 이미 알던 사실 대부분이라 그리 놀라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정작 저를 놀라게 한 내용은 ‘30% 부분’에서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일관된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중국은 원래 강대국이었다.

인터넷 기업은 전통 산업을 존중하고 협력 파트너로 인식해 그들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 파괴자는 공공의 적이 되기 쉽고 파괴의 결과는 늘 암울하다. 기존의 시장 가치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간단하고 편리한 수단과 방법을 제시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누군가 새로운 방법으로 경쟁자를 남김없이 쓸어버리면 시장이 파괴되어 결국 그 자신도 망할 수밖에 없다.

마화텅은 이 논리를 정확히 인지했다.

 

“이미 수차례 강조했지만 전통 산업은 반드시 존중해야 할 중요한 존재입니다. 절대 누군가에게 아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만 척하지 말고 진심으로 존경해야 모두가 윈윈할 수 있습니다. 위챗은 가장 기본 분야에 집중하겠습니다. 나머지 업계는 각자의 논리에 따라 각자의 공간을 채워가길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분야마다 각각의 논리와 기준이 명확해야 모바일 인터넷이 최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240쪽)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파괴적 혁신’이 모범답안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그러한 파괴적 발전이 과연 공동체 전체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월급을 받고 생활을 이어나가는 일반적인 직원들의 삶 관점으로 경제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전에 없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그 생태계 안에서 노동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사고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그 기업들은 아무런 보호막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문제삼는 언론인, 학자, 정치인들의 발언은 꾸준히 소개되는 편입니다. 또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블로거들이 같은 궤적의 비판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바일과 인터넷 기업의 수장이 이런 관점과 유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저는 이 책에서 처음 봤습니다. 중국의 초대형 인터넷기업인 텐센트를 이끄는 마화텅이 위에서 인용한 발언을 한 것이죠.

물론 텐센트가 실제로 얼마나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지, 정말로 모두와 상생을 추구하는지를 따지고 들어간다면 분명 어두운 점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텐센트의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WeChat)만 해도 이 글을 보면 더 이상 “가장 기본 분야에 집중”하는 메신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구요.

다만, 저는 한 거대기업의 대표가 자사 서비스뿐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른 영역과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책에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러고 보면 공맹, 제자백가, 사기 열전의 수많은 주인공들.. 이들의 정신은 크게 봤으면서 우리는 왜 현대 중국을 우습게 봤는가.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대학에 다니면서 독서 모임 활동을 할 때, 중국 고전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언제나 올라와 있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나 논어·맹자·중용·대학의 사서는 책 욕심좀 있다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책들입니다. 중국은 언제나 모든 분야에서 앞선 공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고꾸라진 것은 길게 보더라도 200여년에 불과하니까요. 중국이 경제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요즘 ‘부상’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잠시 잃어버렸던 자리를 되찾는 과정일 것이란 생각이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중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가라고 하면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이 있지요. 그가 2013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주최 ‘올해의 경제인상’ 시상식에서 샤오미를 평가한 말을 소개합니다.

샤오미의 마케팅은 정말 대단하지만 마케팅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지요. 수년 이내에 샤오미의 매출액이 거리그룹을 앞설 수도 있겠지만, 그렇가고 기업의 모든 역량이 거리를 앞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알리바바는 곧 월마트의 세계 매출액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리바바가 월마트보다 좋은, 뛰어난, 앞선 기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금 중국의 인터넷 기업은 시대를 잘 만난 덕분에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쉽고 빠른 것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문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지금 현재 얼마나 발전했는가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286쪽)

2013년이면 이미 알리바바가 엄청나게 잘 나가던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윈은 절대 오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문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지금 현재 얼마나 발전했는가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보면, 마치 삼국지나 사기 열전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중국 기업인들이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이처럼 넓고 깊다는 것에,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샤오미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샤오미라는 상징적 기업을 통해 중국 모바일 기업 문화를 다루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의 장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련된 편집, 특히 사이사이에 들어간 한 페이지 통째의 인용구 편집 덕분에 읽으면서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국 IT매체인 버지(The Verge)의 페이지 디자인을 편집 디자인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용문 페이지는 꽤 자주 등장하지만, 다섯 가지 추천사가 나온 곳만 촬영해봤습니다.[note]사진은 MS 오피스렌즈 앱으로 촬영했습니다. 컬러 페이지엔 약하네요..[/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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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번역] 샤오미가 설계하는 미래

대만 타이페이에 거주하는 독립 컨설턴트이자 블로거인 벤 톰슨이 2015년 1월 7일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당신의 블로그에만 게재할 수 있다”(it is limited to your blog)는 조건으로 번역을 허락받았습니다. 복사 후 다른 곳에 게재하기보단 링크 걸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을 위해 약간의 의역과 문단 변경, 그리고 제목 수정(원문은 ‘샤오미의 야망’ Xiaomi’s Ambition)이 있었습니다. 원문에 링크된 영어 콘텐츠는 같은 내용이 있을 경우 한국어 콘텐츠를 링크했습니다. 각주의 경우 별도 표시가 없다면 톰슨의 각주이며, [역자주] 표시된 것만 제가 작성한 각주입니다. 


지난달 450억달러(한화 약 49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로 11억달러(한화 약 1조2075억원)를 투자받은 중국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는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Mi.com은 수천가지의 품목을 자랑하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그곳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AA건전지 충전기다. 그런 충전기를 파는 곳은 따로 있다. 애플이다.

Apple AA Battery Charger

이 황당한 물건이 출시된 시기를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특별히 매력적이라거나 혁신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 동료가 출시 바로 다음날 이걸 실제로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전력 효율, ‘뱀파이어 드로우’ 현상[note]콘센트에 연결만 되어 있어도 충전기가 전력을 소비하는 현상[역자주][/note](과 애플 충전기의 문제 해결)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대체 왜 그 충전기가 필요한지에 관해선 신기할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충전기가 애플 제품이라는 사실이 구매의 이유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샤오미?

샤오미에 관한 글에는 조금 뻔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 영상은 샤오미가 ‘중국의 애플’로 불린다고 소개한 뒤, 알고 보면 애플과 샤오미가 매우 다른 회사라는 설명을 한다. 아마존에 가까운, 혹은 구글과도 약간 비슷하다는 점을 샤오미 CEO 레이쥔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다. 그들은 스마트폰 단말기를 원가(에 가까운) 수준에 판매하고, 각종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낸다.

샤오미에 관한 이 같은 설명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대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기엔 부족함이 많다.[note]예외적으로 이런 좋은 글도 있다[/note] 뻔한 추측으로는 ‘전통적 인터넷 기업이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서비스다. 예를 들면 구글이 지원하는 앱 스토어나 온라인 포털,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 서비스들은 기업가치 450억달러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특히 중국 모바일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을 텐센트(메신저 위챗, 검색엔진 바이두)·알리바바(전자상거래)·애플(앱스토어)이 가져가고, 그 나머지를 몇몇 중국산 앱스토어가 가져가는 상황에선 말이다. (샤오미도 자체 앱스토어가 있지만, 5위에 머무르는 수준이다.[note]15년 11월 현재 4위[역자주][/note])

관점을 바꿔보자. 샤오미가 어떤 기업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는지를 이해하는 길은 CEO 레이쥔이 말한 “서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샤오미가 어째서 애플과 같은 기업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수평 vs 수직(Horizontal Versus Vertical)

이 블로그 초창기에 나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수직적 비즈니스 모델'(예: 애플)과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예: 구글)의 차이점에 관해 서술했었다. 애플의 ‘서비스’들은 자사 하드웨어 차별화의 수단이고, 애플은 하드웨어에서 실제 수익을 낸다. 그러니까, 애플은 ‘독점적'(exclusive)이다. 반면 구글은 모든 사람들이 자사 서비스 이용자가 되길 바란다. iOS와 안드로이드 중 무엇을 쓰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note]The Android Detour에서 썼듯, 안드로이드라는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글의 각종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유지다.[/note]

두 방식 가운데 어느 쪽에 샤오미가 해당하는지는 즉각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우선, 샤오미의 다른 서비스들과 연동되게 하는 하나의 서비스이자 무료 안드로이드 롬(ROM)이라고 할 수 있는 MiUI[note]’미유아이’라고 읽습니다[역자주][/note]는 다른 제조사의 안드로이드 폰에서도 작동한다. 수평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샤오미의 수익은 스마트폰 단말기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점을 보면 수직적 모델에 가깝다. 수평과 수직 모델 가운데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기업인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애플의 배터리 충전기를 구매했던 그 동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샤오미의 ‘팬’

지난 2013년 샤오미는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TV(MiTV)를 공개했던 것이다. 인터넷 라우터를 발매했을 때는 그렇게 놀랍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엔 또 다른 충격을 세상에 선보였다. 공기청정기를 출시하고, 정수기 시판을 앞두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모두 MiUI에 연동된 기기들이었다. 미TV 출시 현장에에서 레이쥔의 발언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의 팬들이 사용할 첫 번째 TV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샤오미의 팬을 이해하는 것은 이 회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무척 중요한 지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샤오미를 조망하는 기사에서 팬들의 ‘열광’을 아주 잘 그려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생산업체로 출발해, 샤오미에 비해 재력을 갖춘 다소 높은 연령대의 고객을 타겟으로 하는 라이벌 기업 메이쥬(Meizu)의 부사장 리난은 샤오미 지지자들의 헌신적 태도를 종교적인 것에 비유한다.

“샤오미 팬들은 굉장한 수준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샤오미를 사랑하죠. 우상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원생 한 위(24)는 그러한 샤오미 열성 조직(idolator) 가운데 한 명이다. 수만명의 다른 이들과 함께 그는 샤오미의 유저 인터페이스(UI) 테스트에 참여해 버그를 잡고 개선 사항을 제안한다. 그는 샤오미 측 온라인 포럼의 몇몇 페이지를 관리도 맡고 있다. 포럼 전체에는 하루 평균 20만개의 포스트가 작성되며, 이곳은 회사와 팬(fan)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개인 생활은 상당 부분이 샤오미 생태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친구도 사귀게 됐다고 한 위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개인 비밀 갤러리’아이디어가 샤오미 스마트폰에 반영됐을 때가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참여감이 정말 즐겁습니다.”

한 위의 나이가 24세라고 했다. 이것은 지난해 여름 플러리가 발표한 자료에 꼭 들어맞는다.

샤오미 소비자 분포도는 13-17세, 18-24세, 25-34세 범위에서 우위를 보이고, 35-54세와 55세 이상 범위에선 낮게 나타난다. 이 자료는 샤오미 제품이 중국 내 젊은층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는 점, 특히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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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기사에 한 위의 거주지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확률이 꽤 높다. 중국에선 일반적인 일(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중국에서 자녀들은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출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산다(전·월세[note]원문에선 renting[역자주][/note]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는 한 위와 같은 청년들을 아주 가치 있는 소비자 집단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다. 독립해 살고 있을 경우 전·월세와 각종 시설 및 관리비, 식비 등에 지출했을 비용을 소비에 쓸 수 있기 때문이며, 샤오미의 방대한 액세서리 제품군은 그 부분에서 이득을 올리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따로 있다. 한 위, 그리고 동년배의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해 ‘내 집’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 역시 TV를 살 것이고, 공기청정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의 제품까지 구매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보기엔 그들이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것 같은가? 애플이 내 동료에게 AA건전지 충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면, 단언컨대 샤오미 역시 한 위에게 공기청정기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 그가 자신의 집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제품 가운데 다수는 샤오미가 투자한 다른 회사들이 제조한다).

샤오미 라이프스타일

이것이야말로 샤오미라는 기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스마트폰을 판매한다기보다,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그 라이프스타일의 연결고리는 MiUI다. 샤오미의 모든 제품군을 하나로 연결하는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사실상 샤오미야말로 최초의 사물인터넷(IoT)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구글(네스트 보유), 애플(홈킷 지원), 혹은 삼성(스마트씽즈 인수)처럼 개방형 소프트웨어 개발 킷(open SDK)을 통해 기기들을 엮으려는 기업 입장에선 타겟 소비자들이 이미 각종 기기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 같은 SDK가 필수적이다. 반면, 샤오미는 모든 기기들을 직접 연결하고 있다. 또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Mi.com에서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는 바로 샤오미의 팬들이고, 그들은 독립 생활 공간을 생애 처음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다.

두말 할 것 없는 수직 전략이다. 이 회사는 무척이나 애플과 닮아 있다. 단지 제공하는 품목 범위가 진 먼스터의 상상[note]먼스터는 애플이 실제 TV를 만들 것이라고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note]보다도 훨씬 더 방대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레이쥔이 말하는 ‘서비스’들, 특히 MiUI와 Mi.com은 제품을 판매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는다. 하지만 그 ‘서비스’들은 결과적으로 샤오미의 제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샤오미의 팬층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위의 전략은 샤오미의 해외 진출 전략까지 설명한다. 인구수 세계 2위인 인도 시장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구수 4위인 인도네시아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5위인 브라질에도 곧 진출한다. 맞다. 인구수 3위인 미국 시장엔 당분간 진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 애플이 이미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모두가 각종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지식재산권(IP) 이슈도 문제긴 하다.

샤오미의 도전

내가 보기에 샤오미가 꿈꾸는 야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담대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품목이 아주 방대하고 수익성 있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되는 것 정도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집’ 그 자체다. 혹시 이것이 레이쥔의 야망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 앞엔 중대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상당수는 제품 디자인에 관한 것들이다.

단기적으로 보자면, 샤오미가 다소 지나치게 다른 디자인을 “칭찬”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note]애플 팬들만 화내는 것이 아니다. 공기 청정기 역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note] 지식재산권에 대한 진중한 태도는 서양 문화권이 오히려 독특하게 갖고 있는 태도다.

다른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선 발명과 순수한 창조 행위까지도 공동체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어느 박물관에서든 족자나 그림 작품의 가치는, 호의와 고평가를 뜻하는 도장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그 작품 위에 남겼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Tang_WhiteNightHorse
Art-Virtue.com

한 가지 더하자면, 내 개인적 관점에서 이건 그렇게 큰 도덕적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진실을 파헤쳐보면, 미국은 중국이 지금 하는 것과 똑같이 지식재산권에 대해 제멋대로 굴면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나는 서양 세계가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려는 와중인 현재 개발도상국들의 처지에 관해 무척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기엔 누구도 지금 그들이 하는 것처럼 환경오염, 지재권, 노동자 권리 등의 문제로 제동을 건 적이 없었다. 이건 “올바르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역사적 배경은)[note]이 괄호는 독해 편의를 위해 역자가 넣은 것입니다[역자주][/note] “샤오미는 표절꾼”이라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의 주장보다 더 “올바름”의 기준을 회색지대로 끌고 가는 문제다.

샤오미의 해외진출 전망을 살펴볼 때, 독창성(혹은 그것의 부족함)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에서 멀어질수록, 레이쥔의 인기나 락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신제품 발표회, 강력한 소셜 미디어 존재감 등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것들의 영향력은 더욱 작아진다. 더욱이, 가격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갈수록 써드 파티 유통업체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샤오미는 ‘온라인 온리'(Online only)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만약 샤오미가 중국에서 한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팬(‘샤오미 하우스’를 꾸밀 그런 팬)들을 만들어낼 작정이라면, 샤오미는 자신들의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땐 카피캣 제품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샤오미가 서양 국가에 당장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이다. 라이센스 비용이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note]다시, 이런 라이센스 비용은 스마트폰 업계에서 경쟁하지도 않는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특허가 정말 세상을 더 좋게, 그리고 발전적으로 만드는가?[/note] 서양 사회엔 이미 주택에 가구들이 꽉 차있고, 강력한 브랜드의 업체들도 가득하다. 기회는 다른 곳에 훨씬 더 크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 시장 진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어떤 기업이 450억 달러의 가치(나중엔 더 커질 것이다)를 인정받는았다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말자.

샤오미 그리고 중국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샤오미의 영향력은,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안겨주느냐가 아니라, 보다 비물질적이지만 중요한 방향으로 입증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서도 대기업이 많이 나왔고, 일부는 글로벌 기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 바깥에까지 울림을 퍼뜨린 중국의 소비재 브랜드는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중국 내부에서도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샤오미 팬들의 연령대에 관해 생각해 볼 때,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 샤오미 제품 구매율이 낮은 30대 이상의 중국 고연령층은 자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 제품들을 쭉 무시해왔다. 저렴한 데다 2류 제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애플을 비롯한 서양의 고급 브랜드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 다시 말해 샤오미 세대는 다르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매년 10% 가까운 성장률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성장해왔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마음 속에서 중국은 세계적인 강국이다. 이들이 중국산 브랜드를 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런 민족주의적 성향을 샤오미는 이용하고 있다. 샤오미 마스코트의 모자에 그려진 붉은 별을 그저 의미없는 장식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MIUIEs-Logo

오해하지 말자. 샤오미에게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중국인 그 자신들이었고, 샤오미는 능수능란하게 승리를 이어왔다. 그들의 잠재력을, 넓게 봐서는 중국의 잠재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그들이 진출하려는 개발도상국가들은 훨씬, 훨씬 광대한 세상이다—우리가 사는 서양 세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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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보고서 문장 줄이기 연습

일상적으로 접하는 ‘글’과 기업 등의 환경에서 필요한 ‘보고서’는 다른 문법이 필요한 것 같다.

[slideshare id=39461544&doc=howtowritesentencesforreportteamlab-140924025708-phpapp01]

본 자료는 가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기술 경영 연구실 TeamLab에서 작성하였습니다.

1) 모자 관련된 얘기는 Refactoring과 관련된 프로그램밍 책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프로그래밍도 보고서를 쓰는 것과 비슷해서 Simple하게 코드를 작성하는게 중요하죠. 정확한 책 제목이 생각안나서 (TDD 또는 Refactoring인데…) 나중에 다시 정확히 적겠습니다.

2) 두 번째 얘기는 다들 아시겠지만 “미생” 이라고 하는 웹툰에서 주인공 장그래가 보고서를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해당 부분의 맨끝에는 “미생” 버전이 있고, 그 앞에는 제가 수업시간에 수정한 내용을 정리한 겁니다.

3) 세 번쨰 얘기는 제가 쓴 보고서를 직접 줄인 겁니다.

최성철 가천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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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한국어 통사구조와 숙어 속 일본어 흔적

2009년쯤부터 언어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철지난) 언어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니 ‘순우리말’ 같은 관념에 골몰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된 언어’를 읽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쓰고 있는 이 한국어라는 언어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서양의 관념과 제도, 문물이 일본어를 통해 한국에 정착한 과정에 흥미를 가장 많이 느꼈다.

오늘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가 차용한 일본어뿐 아니라, 통사구조와 숙어 수준에서도 한국어가 받아들인 일본어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아래는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에 실린 ‘조망-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이 같은 일본어의 흔적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면서 섞이고 스며들며 더욱 탄탄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문법 표현

[1]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그 비율 면에서는 비록 어휘 부분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지만 문법적 표현들에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사 ‘-의’의 과도한 사용 문제이며, ‘-에 있어서, -에서의, -(으)로서의’ 등과 같이 조사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일본식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음이 그러한 예문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새로운 도약에의 길/범죄와의 전쟁/앞으로의 할 일/한글만으로의 길/제 나름대로의 기준

[2]

문법 표현 중에 하나로서 접미사 ‘-적’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도 지적할 만하다. 그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접미사 ‘적’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같은 백화문(白話文) 자료에서 사용되었던 예를 제외하고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던 말이다. 이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은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그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본어와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적’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서재극(1970;95-6)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的(teki)「佛-tique, 英-tic」 -的
  중국어의 ‘底’에 해당됨. 明治初에 柳川春三이 처음으로 -tic[note]요즘은 이 ‘-tic’ 자체를 한국어 언중이 쓰고 있기도 하다. ‘-틱하다’라는 형태가 주로 쓰인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자료[/note]에다가 的이라는 字를 갖다 붙었다(科學的, 社會的, 心理的, 目的的 등). -“角川外來語辭典”에서
  ‘的’字를 쓰게 된 것은 -tic과 的이 音이 닮았다는 것으로 하여 익살맞게(우스개 삼아) 말한 것일 따름. -大規文彦의 “復軒雜錄”에서

  이 ‘-적’이 우리말에 유입되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서재극(1970;95)에서는 “상필 일본에 유학했던 자에 의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사용된 것은 1908년에 발간 “소년”지에서부터”라고 지적하고 있다.

통사 구조

[1] 출처: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 ‘일본어투 문장 표현

현대 국어의 “왔다리 갔다리”외 ‘-다리’는 일본어 “行ったり來ったり”에 보이는 형태 ‘-たり’의 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의 차용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어의 언어 접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처 위와 같음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7)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8) (아이들이) 보아야 할 책이다.
(9)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숙어

[1]

애교가 넘친다-愛嬌が益れる / 달콤한 말-甘い言葉 / 숨을 죽이다-息を殺す / 종말을 고하다-終りを告げる / 어깨를 나란히 하다-肩を竝べる / 기억이 되살아나다-記憶が蘇る / 기가 막히다-氣が詰まる / 희망에 불타다-希望に燃える / 혀를 깨물다-舌をかむ / 패색이 짙다-敗色が濃い /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他の追隨を許さない / 눈을 의심하다-目を疑う / 귀를 기울이다-耳を傾ける / (국제적 마찰을) 불러일으키다-呼び起こす / (석간에) 사진이 실려 있다-寫眞がのっている / 빈축(頻蹙)을 사다-頻蹙を買う

[2] 출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옛이야기 사랑방’

⑧ 통사 층위의 관용적 비유의 차용

흥분의 도가니, 도토리 키재기, 새빨간 거짓말,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호감을 사다, 눈살을 찌뿌리다,
의기에 불타다, 콧대를 꺾다, 무릎을 치다, 손꼽아 기다리다,
종말을 고하다, 패색이 짙다, 낙인을 찍다, 마각을 들어내다,
종지부를 찍다, 폭력을 휘두르다, 비밀이 새다, 낯가죽이 두껍다,
손에 땀을 쥐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순풍에 돛을 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note]일본어 원래 표현이 없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note]

 

같은 주제로 예전에 기록한 글: 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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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복기(復碁)의 의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다가 내 마음을 울리는 부분을 접할 때면 나는 ‘물리적’ 소름을 느낀다. 귓바퀴 뒤편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살갗을 휩쓴다. 똑같은 감각이 때로는 팔꿈치에서부터 어깨 부근까지 팔 전체를 감싸기도 한다. 대체로 이 느낌은 2초 안팎 유지하고는 푹 꺼진다.

오늘은 달랐다. 10초 이상 긴장감이 이어졌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매일 퇴근 후 하루를 복기(復碁)한다. 바둑에서 ‘복기’란 어떤 의미가 있는 행위인가.

“복습이자 미래를 위한 설계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Why][곽아람 기자의 캔버스] 바둑인생 58년… ‘戰神’조훈현

누가 보면 뻔한 한 마디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는 말은 화살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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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ing the go stone (CC BY 2.0)

승리도 패배도 모두 내 경험이고, 경험은 곧 자산이다. 누구나 삶의 순간순간에서 몇 번의 승리와 (대체로 승리보다 자주) 패배를 경험한다. 저 말을 한 조훈현은 프로 바둑 기사로 지금까지 2700회 넘는 대국에서 1900번 이상을 승리했다.

패배보다 승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조차 패배를 되돌아보고, 그런 다음에야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 내가 과연 얼마나 내 과거를 복기하면서 살아왔는지를 가늠해본다. 거의 없다. 일기를 때때로 쓰긴 한다만 그저 그날 하루 무엇을 했고 당장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기록했을 뿐, 내 패배와 승리의 경험을 제대로 복기해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기억나는 복기의 순간이 있긴 하다. 2년 전 진로 고민이 절정이었을 시기에 짧은 삶의 궤적을 정리해서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때의 감정과 주변 환경이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복기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런 되돌아보기의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겨울 에버노트에 저장해두었던 ‘뒤돌아보다‘라는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회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들춰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 이해하고 현재를,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고 또 그걸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나온 실행이 가치 있습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형성된 감정적 공유와 상호 이해가 가치가 있습니다.

조훈현이 매일 했을 ‘복기’가 김창준에겐 ‘회고’인 셈이다. 두 단어는 그 분야와 이름만 다를 뿐,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은 행위를 지칭한다.

복기하는 삶을 살겠다. 당장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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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눈빛

roh

1990년 1월 3당합당에 반대하며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라고 외친 사람.

 

Student leader Lester Shum arrested in HK protests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을 지휘했던 사람.

 

기자 시절의 김훈글을 쓰던 사람.

1990년의 노무현, 2014년의 레스터 셤,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초반의 김훈.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말과 행동보다 눈빛과 표정으로 기억에 남는 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