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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통사구조와 숙어 속 일본어 흔적

2009년쯤부터 언어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철지난) 언어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니 ‘순우리말’ 같은 관념에 골몰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된 언어’를 읽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쓰고 있는 이 한국어라는 언어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서양의 관념과 제도, 문물이 일본어를 통해 한국에 정착한 과정에 흥미를 가장 많이 느꼈다.

오늘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가 차용한 일본어뿐 아니라, 통사구조와 숙어 수준에서도 한국어가 받아들인 일본어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아래는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에 실린 ‘조망-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이 같은 일본어의 흔적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면서 섞이고 스며들며 더욱 탄탄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문법 표현

[1]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그 비율 면에서는 비록 어휘 부분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지만 문법적 표현들에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사 ‘-의’의 과도한 사용 문제이며, ‘-에 있어서, -에서의, -(으)로서의’ 등과 같이 조사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일본식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음이 그러한 예문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새로운 도약에의 길/범죄와의 전쟁/앞으로의 할 일/한글만으로의 길/제 나름대로의 기준

[2]

문법 표현 중에 하나로서 접미사 ‘-적’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도 지적할 만하다. 그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접미사 ‘적’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같은 백화문(白話文) 자료에서 사용되었던 예를 제외하고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던 말이다. 이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은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그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본어와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적’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서재극(1970;95-6)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的(teki)「佛-tique, 英-tic」 -的
  중국어의 ‘底’에 해당됨. 明治初에 柳川春三이 처음으로 -tic[note]요즘은 이 ‘-tic’ 자체를 한국어 언중이 쓰고 있기도 하다. ‘-틱하다’라는 형태가 주로 쓰인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자료[/note]에다가 的이라는 字를 갖다 붙었다(科學的, 社會的, 心理的, 目的的 등). -“角川外來語辭典”에서
  ‘的’字를 쓰게 된 것은 -tic과 的이 音이 닮았다는 것으로 하여 익살맞게(우스개 삼아) 말한 것일 따름. -大規文彦의 “復軒雜錄”에서

  이 ‘-적’이 우리말에 유입되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서재극(1970;95)에서는 “상필 일본에 유학했던 자에 의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사용된 것은 1908년에 발간 “소년”지에서부터”라고 지적하고 있다.

통사 구조

[1] 출처: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 ‘일본어투 문장 표현

현대 국어의 “왔다리 갔다리”외 ‘-다리’는 일본어 “行ったり來ったり”에 보이는 형태 ‘-たり’의 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의 차용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어의 언어 접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처 위와 같음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7)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8) (아이들이) 보아야 할 책이다.
(9)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숙어

[1]

애교가 넘친다-愛嬌が益れる / 달콤한 말-甘い言葉 / 숨을 죽이다-息を殺す / 종말을 고하다-終りを告げる / 어깨를 나란히 하다-肩を竝べる / 기억이 되살아나다-記憶が蘇る / 기가 막히다-氣が詰まる / 희망에 불타다-希望に燃える / 혀를 깨물다-舌をかむ / 패색이 짙다-敗色が濃い /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他の追隨を許さない / 눈을 의심하다-目を疑う / 귀를 기울이다-耳を傾ける / (국제적 마찰을) 불러일으키다-呼び起こす / (석간에) 사진이 실려 있다-寫眞がのっている / 빈축(頻蹙)을 사다-頻蹙を買う

[2] 출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옛이야기 사랑방’

⑧ 통사 층위의 관용적 비유의 차용

흥분의 도가니, 도토리 키재기, 새빨간 거짓말,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호감을 사다, 눈살을 찌뿌리다,
의기에 불타다, 콧대를 꺾다, 무릎을 치다, 손꼽아 기다리다,
종말을 고하다, 패색이 짙다, 낙인을 찍다, 마각을 들어내다,
종지부를 찍다, 폭력을 휘두르다, 비밀이 새다, 낯가죽이 두껍다,
손에 땀을 쥐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순풍에 돛을 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note]일본어 원래 표현이 없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note]

 

같은 주제로 예전에 기록한 글: 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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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완결성을 갖춘 글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히겠다. 그리고 내 독창적 문제 제기도 아니다. 다음카페 ‘함께 영어를 배우자’의 ‘감각개념’이라는 분이 쓴 글이 시작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라며, ‘감각개념’님의 사실 언급에 몇 가지를 덧붙여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부분을 공유하기 위해 기록하는 글이다. 글의 흐름에 신경쓰기보다는 간단한 사실만 나열한다.

1. 학교에서 배우는 영문법 용어, 어디서 왔을까

– 거의 100% 일본제 한자어를 수입했을 것으로 추정.

예) 아래 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문법 용어랑 거의 다 일치하는 것 같다. 내가 한자에 워낙 약해서 조금 비교해 보다 말았다 ㅡㅡ

日本語 ふりがな ROMA-JI ENGLISH
品詞 ひんし hinshi part of speech / word class
名詞 めいし meishi noun
代名詞 だいめいし daimeishi pronoun
動詞 どうし doushi verb
他動詞 たどうし tadoushi transitive verb
自動詞 じどうし jidoushi intransitive verb
助動詞 じょどうし jodoushi auxiliary verb
形容詞 けいようし keiyoushi adjective

출처: English grammar terms in Japanese kanji, hiragana, and Roma-ji.

2.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현대 한국어에서 쓰이는 수많은 개념어는 대부분 일본제 한자어의 차용이다. 

예)

◦ 철학 용어: 관념(觀念), 시간(時間), 선천(先天), 원리(原理), 의무(義務), 이상(理想), 철학(哲學), 추상(抽象), 현상(現想), 후천(後天)

◦논리학 용어: 귀납법(歸納法), 긍정(肯定), 내포(內包), 명제(命題), 부정(否定), 연역법(演繹法), 외연(外延)

◦심리학 용어: 능력(能力), 본능(本能), 의식(意識), 정서(情緖), 직각(直覺)

◦기타: 과학(科學), 관능(官能), 관찰(觀察), 기술(技術), 예술(藝術), 인상(印象), 지질학(地質學), 충동(衝動)

출처: 근대어 성립에서 번역어의 역할―일본의 사례 (pdf 바로 가기 & 새국어생활 홈페이지 바로 가기)

3. 문제는 무엇인가? 일본식 한자 읽기와 한국식 한자 읽기가 다르다. 일본어에선 의미 이해에 방해되지 않을 한자 개념어들이 한국어에선 의미 이해를 방해한다.

예)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영문법 용어에 쓰이는 ‘부정’이라는 단어: 부정관사와 부정사.

한국어에서 ‘부정’이라고 말하면 보통은 1)’올바르지 않음'(不正) 2)’그렇지 않다'(否定)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유독 영문법에서만 ‘부정’이 3)’정해지지 않음'(不定) 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평소 언어 습관과 판이하게 다른 ‘부정’관사와 ‘부정’사의 뜻을 접하면서 혼동을 겪는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 영문법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결과다. 일본어에서는 세 단어의 발음이 모두 달라서 이런 혼동이 없다.

1)’不正'(올바르지 않음)은 ‘ふせい fusei’라고 읽는다.

2)’否定'(그렇지 않다)은 ‘ひてい hitei’라고 읽는다.

3)’不定'(정해지지 않음)은 ‘ふていfutei’라고 읽는다.

4. 극복 방안은?

지금껏 해왔듯 영어 수업시간에 매번 한자 뜻 풀이를 한다.

새로운 한국식 번역어를 만든다.

문법 용어를 그냥 영어로 쓴다.

…?

* 한자를 거의 모르고 일본어를 완전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일본 논문을 직접 찾아보면 도움이 될 텐데…

* 본문에 링크한 것 외에 지금까지 찾아본 자료:

Japanese English Education and Learning:   A History of Adapting Foreign Cultures

The First English Grammars of the Edo Period :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Parts of Speech

한국 영어 교육 학습서의 역사

지금 막 찾았으며 앞으로 읽어보고 싶은 자료:

English Language Education in Korea Under Japanese Colonial

한국의 영어교육사 : 19세기 이후 한·영·미·일 비교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