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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서 ‘최우수’로 넘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특징

수능 외국어영역[note]지금은 영어 영역이라고 하는 그 시험[/note] 유호석 선생님의 2006년 인터넷 강의 내용 중 일부. 당시 고3이었던 나는 이 부분을 따로 떼어서 녹음해 mp3파일로 남겨두었었고, 그 파일을 얼마 전 외장하드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마주하게 되었지만 마찬가지로 뜨끔하게 되는 말씀이다.

인터넷 강의 하나를 들었을 뿐이지만, 나는 유호석 선생님을 영어 강의 실력으로나 인격적으로나 매우 훌륭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4년 쓴 영어 공부 글에서도 선생님의 강의를 추천했다.

선생님은 암 투병 끝에 2016년 3월 작고하셨다. 인터넷에선 그의 죽음에 황망해하고 애도하는 글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생전에 커뮤니티 겸 학습자료 공유용으로 쓰이던 카페에 가보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를 기리는 1주기 추모 예배가 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사교육 강사로서 실력과 인간으로서 그의 성품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 아닐까.


2006년 9월 14일, 메가스터디 외국어영역 유호석 선생님 강의 녹음

학생들 중에, 제가 가만히 보니, 머리는 똑똑하고 이해는 빠른데.. 최우수가 되지 못하고 우수에서 끝나는 많은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의 특징? 자기가 아는 게 나오잖아요, 그럼 다른 걸 봅니다.

(중략)

답을 부른 다음에 “2번 보자”라고 했는데, 자기는 2번은 맞춘 학생이 있죠. 그럼 2번 설명을 제가 하고 있는데, 자기가 틀린 7번을 보면서 그걸 먼저 풀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요.

이게 최우수로 가지 못하고 우수에서 끝나는 학생들의 특징입니다. 제가 12년째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항상 ‘1등’을 하지 못하고 바로 그 밑에 2등, 3등, 4등을 하는 학생들의 특징. 최우수 집단에 들지 못하는 학생들의 특징입니다. 아는 내용이다 싶으면, 머리가 바로 흐트러집니다.

이걸 심하게 말하면 ‘겉똑똑’한 겁니다. 주위 사람들한테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겠지만, 한계를 넘지 못하는 거죠. 정말 똑똑한 학생들이라면, 선생이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자기가 알더라도 한 번 더 듣습니다.

(후략)


지금은 이것이 공부에 대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웬만큼 똑똑하고 일처리 잘한다는 수준의 직원(혹은 프리랜서 혹은 리더)에서 탁월한 1인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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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책 추천 세 권

수정 안내 :

최초 발행시 포함되어 있던 어느 단어장 관련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 일대일 대응 암기는 가급적 지양해야 할 방법입니다. 아무리 초보자일지라도 권하지 않습니다.


사실 영어 공부에는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좀 알겠다 싶으면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등장하게 마련이지요. 단어부터 시작해서 문법 이해도, 독해 숙련도나 듣기 실력 등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름의 수단으로 ‘끝’을 예측합니다. 공부하는 책의 목차나, 수강하는 강의 및 과외에서 교·강사의 안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왔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를 가늠하는 것이죠.

간만에 블로그에 써보는 이 글에서는 영어 단어에 한정해서, 그러한 ‘끝’을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3권을 추천해볼까 합니다. 전반적으로, 영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교양 단어들에 관해 주로 다루는 책들입니다.

Barron’s 504 Absolutely Essential Words

504

1941년 설립된 미국의 교육전문 출판사 Barron’s에서 나온 단어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리 많이 알려진 출판사는 아닌데요,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인정하는 곳입니다^^

‘504’는 영어를 읽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하신 분들이 초·중급에서 중급으로 확실하게 넘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교재입니다. 영어 자체의 환경 속에서 단어를 익히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42개의 레슨에 각각 12개씩의 단어가 수록돼 있습니다. 단어마다 예문이 3개씩 함께 제공되고, 해당 단어를 제대로 익혔는지 훈련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와 여러 활동(activities)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른 책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단어장 같네요. 504의 핵심은 단순히 어휘를 나열하고 뜻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어휘를 근간으로 그것의 다양한 쓰임새와 적절한 배경지식까지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종합적인 접근방법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의 레슨에 겨우(?) 12개의 단어씩만 수록된 것입니다. 차근차근 학습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교보문고 어느 회원님의 리뷰에 보니 “나만 알고 싶은 단어책“이라는 말도 나오네요. 🙂

Word Power Made Easy

wpme이어서 추천하려고 하는 ‘Word Power Made Easy’는 앞서 소개한 504 Absolutely Essential Words의 아쉬운 점을 보강하면서, 중고급의 교양 있는 단어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504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어근과 접두사/접미사를 다루는 비중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부분입니다. 우리말에서도 한자를 알면 단어의 이해도와 활용성이 커지듯, 영어에서도 단어의 근간을 이루는 어근과 접두사/접미사를 알고 있으면 어휘력에 큰 도움이 됩니다.

Word Power Made Easy는 어근과 접사를 기반으로 어휘력을 강화해주는 아주 효과적인 단어집으로, 전체 44개의 강의와 3개의 테스트를 통해 48일 동안 공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미지는 한국어판을 가져왔지만, 저렴한 가격에 원서 페이퍼백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영어 실력과 영문에 대한 부담감(?) 정도에 따라 원서와 역서 가운데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단어책이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 내 읽으며 학습하기를 강조하는 설명과 단어에 대한 설명을 통해 들려주는 저자의 다양한 이야기였습니다.

1949년 출판된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데서 신뢰가 절로 생기는 단어집입니다. 지나간 세월이 꼭 책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단어책이 60년 넘게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Word Smart

WSMRT

이번에도 번역서 표지의 스크린샷을 첨부했습니다. 저 말을 그대로 믿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SAT 등의 시험을 준비하는 “미국인들의 필독서”.

초중급 학습자에겐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학습자가 수준 높은 영어 글을 확실하게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특히 정말 미국적인 상황을 잘 녹여낸 다양한 예문이 매력인 단어 교재입니다. 원서든 번역서든 예문을 꼭 챙겨서 공부할 것을 추천합니다.

굳이 설명을 더 쓰기보다, 워드스마트 매니아로 보이는 어느 분의 블로그를 인용하겠습니다:

한국의 어휘 교재를 살펴보면 단순히 한글 뜻만 달달 외우게끔 만드는 교재가 많은데, 그렇게 공부를 해버리면 실제로 그 단어를 나의 말(speaking)과 글(writing)에 사용하는 능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맥에서 그 단어가 쓰이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워드스마트는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까지 함께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죠.^^

다만, 교재에서 다루는 어휘의 수준 자체가 매우 높기 때문에 (현지 미국인들도 잘 모르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SAT/TOEFL/TEPS 고득점을 목표로 하는 분들에게 적합한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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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역사 – 개방의 아이콘, 영어

 

일단 영어는 ‘게르만계'(German) 언어다. 영어는 독일어와 출생의 비밀(!)을 공유한다. 역사언어학 자료를 보다 보면 고대~중세 독일 지방에서 쓰였던 언어와 당시 영국 땅에서 쓰였던 언어를 비교하는 자료를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대 독일어와 현대 영어는 같은 뿌리(고대 게르만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머나먼 섬나라(켈트족이 살던 브리튼 섬)를 침략했다. 브리튼 섬은 본래 로마의 지배 덕분에 외부 침략을 막을 수 있었지만, 410년 로마군 철수 이후 게르만족의 침략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6세기쯤 브리튼 섬은 사실상 앵글로-색슨족의 터전이 됐다. 그들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유럽 대륙의 고대 게르만어와 달라졌다. ‘고대 영어’의 시작이다.

한편 브리튼 섬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이름(앵글로)에서 유래한 지명 ‘잉글랜드’까지 쓰기 시작했지만, 앵글로-색슨족도 계속 외부 영향을 받았다.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는 크게 세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브리튼 섬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켈트어’, 로마 지배 흔적이자 597년 잉글랜드의 기독교 개종 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라틴어’,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지속된 바이킹 침략으로 유입된 ‘스칸디나비아어’다.

특히 라틴어와 스칸디나비아어의 영향이 중요했다. 라틴어는 유럽 문명권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고, 스칸디나비아어의 경우 잉글랜드가 덴마크 왕 크누트의 지배를 받기까지 했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마 지배 시기와 관련해 잘못 서술됐던 내용이 수정됨 )

한편 가장 중요한 침략은 1066년 일어났다. 그 해 프랑스 지역의 한 공국(그땐 프랑스라는 단일국가의 개념도 모호했고, 프랑스 왕이라는 지위보다 각 공국의 왕이나 지방 영주들의 힘이 더 강했다)이었던 노르망디 공국이 잉글랜드 영토를 점령한 것이다. 이것을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고 부른다. 이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는 잉글랜드 영토와 노르망디 영토를 동시에 지배했다.

노르만 정복과 함께 잉글랜드 땅에는 프랑스어가 침투했다. 공국이니 뭐니 해도 어쨌든 노르망디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었으니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영어는 ‘프랑스어’를 대거 받아들였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언어가 겪은 일과 유사) 또한 프랑스어를 타고 들어온 라틴어를 다시 한 번 흡수하게 됐다.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천민의 언어’로 구박 받았지만(당시 영국 지배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영어는 하층민의 언어였다), 소멸하지는 않았다. 이는 13세기 초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왕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노르망디 영토를 잃어버린 것과 130여년 후 일어난 백년전쟁으로 ‘反프랑스 정서’ & ‘영국인이라는 자의식’이 생겨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겨우 제 정체성을 지켜낸 영어는 14세기 영문학의 아버지 초서와 16세기 셰익스피어의 재능에 힘입어 당당하게 단일 언어로 자리 잡았다.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영어로 문학 작품을 쓰던 당시, 영어는 결코 세련된 언어가 아니었다. 사실 영국 자체가 16세기 이전까지는 ‘변방의 섬나라’ 취급을 받는 삼류 국가였다.

초서와 셰익스피어는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 당시 일류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 공부에 조금 게을렀던 터라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각각 이탈리아/프랑스에서 정확히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까지는 확실히 말하기가 힘들다. 다만 지금도 초서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학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가 희곡 외에도 재능을 발휘했던 ‘소네트'(sonnet)는 장르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 ‘소네토'(sonetto)에서 왔다는 점만 밝혀두겠다.

게다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였다. 14세기 이후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꾸준히 접했고 그 과정에서 라틴어의 흔적도 계속 받아들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 세워지기 시작한 영국 ‘대학’ 등에서는 고전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학술적인 이유로 직접 수입하고 있었다. 

이렇듯 단일 언어라고 명함을 겨우 내밀 수 있게 되기까지 다른 언어의 영향(주로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영어는 제 힘이 강력해진 뒤에도 다른 나라 말을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국 땅으로 건너간 영어는 원주민 언어를 대거 차용했고, 호주 땅에 스며든 영어는 역시 그곳 원주민들의 말을 상당수 흡수했다. 물론 그곳에서 영어가 원주민의 언어를 거의 말살했다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만, 영어가 그 언어들의 어휘를 차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영어는 외국어를 받아들였던 개방성만큼이나 자기 언어가 변하는 데 무심(?)했다. 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이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같이 자국 언어를 보호하면서 ‘바르고 고운말’을 권장하고, 동시에 그 힘이 상당한 국가적 언어 규범 기관이 영어권 국가엔 별로 없다. 다만 영국인과 미국인은 대중의 언어 습관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18세기 영국에선 사무엘 존슨의 사전이, 19세기 미국에선 노아 웹스터의 사전이 탄생했다.

그리고 영어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단어를 흡수하는 중이다. 영어는 무한증식하는 개방형 언어의 표본이다.

이상 평범한 영문학 학부생이 기억과 간단한 검색에 의존해서 쓴 영어의 역사다.  아무튼 위와 같은 역사를 지나온 결과 영어 어휘는 아래 그래프가 보이듯 다양한 출신 성분을 갖게 됐다.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함께 읽을 글: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위해 알아야 할 영단어의 4가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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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허큘리스와 닌자터틀: 역시 대세는 영어식 표현?

지난 4월에 한 기사를 읽고 나서 페북에 짧은 생각을 좀 끄적거린 적이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monious51/posts/701817703210785:0

네 달이 지난 지금 둘러보니, 셀피가 셀카를 몰아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셀피가 셀카와 같은 뜻이라는 사실 정도가 많이 퍼진 듯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은 비슷한 변화에 관한 다른 관찰을 간단하게 기록할까 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두편의 제목과 함께요.

허큘리스

우선 ‘허큘리스’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간판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엄청난 괴력의 전사’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네요.

아무튼, 처음 이 영화 포스터를 보고는 꽤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헤라클레스 영화의 제목이 영어식 발음인 ‘허큘리스’ 였다는 데 놀란 것입니다.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방식이라는 게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수십년간 ‘헤라클레스’였던 이 영웅의 이름이 갑자기 영어식 발음으로 적힌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찾아보니 1965년 경향신문 기사에도 ‘헤라클레스’라는 표기가 나오네요.

오른쪽 맨 끝에 '헤라클레스'가 보입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오른쪽 맨 끝에 ‘헤라클레스’가 보입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물론 지난 4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헤라클레스 : 레전드 비긴즈‘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영화의 흥행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 ‘허큘리스’ 수입 배급사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어쨌거나 수십년간 ‘헤라클레스’였던 영웅은 이제 한국에서도 영어식 발음에 따라 ‘허큘리스’가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불릴지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ninjaturtle

다음으로는 ‘닌자터틀’이 있습니다. 한국인 대다수에게 친숙한 이름인 ‘닌자 거북이’를 버리고 왜 굳이 ‘닌자터틀’이란 제목으로 개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급사 내부에서 나름의 논의 끝에 결정한 제목이겠지만…어색한 느낌은 가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실 영화뿐 아니라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영어식 제목이 대세를 이룬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언어 민족주의에 심취했던 4년~5년 전쯤엔 그런 변화들이 못마땅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대중의 언어 사용을 제약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시도를 더 반대합니다. 언어는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한국의 언어’생활’이 계층화될 가능성입니다. 이것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다뤄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이젠 위와 같이 영어식으로 바뀌어가는 각종 제목들을 볼 때면 그저 관찰을 합니다. 놀라워하기도 하고, 어색해하기도 하면서요. 뭐 가끔은 옛날 감수성이 되살아나서는 영어식 이름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합니다^^;

아마 저 말고는 별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아래 같은 신문기사도 잘 나오지 않으니까요.

일간스포츠 1999년 1월 16일 지면 기사. 예전에 어느 음식점 화장실에 걸려 있던 신문스크랩입니다. 그 식당이 소개된 지면이었지만, 저는 맛집소개 기사보다는 '뜻모를 외국영화 제목'이란 기사에 더 눈길이 갔지요.
일간스포츠 1999년 1월 16일 지면 기사. 예전에 어느 음식점 화장실에 걸려 있던 신문스크랩입니다. 그 식당이 소개된 지면이었지만, 저는 맛집소개 기사보다는 ‘뜻모를 외국영화 제목’이란 기사에 더 눈길이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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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대학 내 무분별한 영어 강의를 반대한다

(*2012년 2학기 교내 영어 에세이 대회에 제출했던 것을 1년 반만에 한국어로 번역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일부 내용이 보충, 편집됐다.)

 

매년 중앙일보가 발표하는 대학평가에서 영어강의 비율은 꽤 중요한 기준이다. 영문과 및 다른 외국어 전공학과를 제외한 전체 학부 전공과목 가운데 30% 이상이 영어로 이뤄질 경우 만점이 부여된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처럼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세상에서 영어 강의는 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무분별한 영어 강의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교수도 모두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영어 강의다. 강의 언어로서 영어가 과연 효율적인지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영어 강의는 교육을 위해 좋은 수단이 되지 못한다. 물론 몇몇 학과나 과목에서는 영어가 핵심일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엔 영어 수업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라는 언어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과장하고, 모두에게 영어 사용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 우선 학내 교강사 대다수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질문하길 꺼리는 한국 학생들은 영어 강의에선 질문을 극도로 자제한다. 결국 수업의 질과 효율성 모두 하락한다.

연세대학교의 한경희 책임연구원(공학교육혁신센터), 허준행 교수(토목환경공학과), 윤일구 교수(전기전자공학과)는 지난 2010년 발표한 ‘글로벌 공학인재 양성을 위한 영어강의의 역할과 과제‘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교수와 학생 모두는 영어강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강의에 투입되는 노력과 시간이 큼에도 불구하고 강의 만족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어 수업에 비해 투자할 시간·노력과 수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자. 학부생은 영어 수업 준비에 2.63배의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았지만 만족도는 70% 선에 그쳤다. 같은 조사 항목에서 대학원생은 1.91배·77%, 교수는 2.11배·74%의 결과를 보였다.

이런 현상은 내가 학부 시절 들었던 수업에서도 일어났다. 참고로 나는 영어영문학과 학생이다. 우리 학과 학생들은 전공이 전공인지라 수업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다른 학과 학생들에 비해 가벼운 편이다. 문제는 수업 시간이다. 뭔가 불분명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나와도, 학생들은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가끔 주어지는 조별 토의 시간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해 답답해하는 장면들이 속출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때 의견 교환의 언어는 물론 한국어다.

영어 강의에 발목 잡히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2009년 교수신문 기사에 의하면 현직 교수들은 ‘번역서+한국어’강의보다 ‘원서+영어’ 강의에서 수업 진도가 1/3수준으로 떨어진다고 공감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카이스트 교수들이 학내 전면 영어 강의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관련 기사 1·기사2) 박승오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강의는 교수와 학생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며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강의에 집중할 수 없고, 동기 부여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역학’ 교과목을 예로 든다. 기초 응용수학 지식이 필요한 학문임에도, 학생들은 강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영어 실력을 탓하거나 영어를 잘하게 되면 해당 과목을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한국인 교수의 영어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영어 강의를 수강했지만, 너무나 자주 들었던 말은 ‘You know’, ‘kind of’, ‘sort of’ 등의 표현이었다. 아마 다른 학과 사정은 더 심각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교수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대다수의 교수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어 모국어 화자들이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이 영어 강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탓해야 할 것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제도’와 영어 강의를 둘러싼 ‘미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수업시간에 쓰면 영어 실력이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2000년대 초반 한국을 강타했던 영어 공용어화 논리와 비슷하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영어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면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라는 당시의 목소리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함께하기 위해 대학의 영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영어로 강의를 하면 될 것이다”라는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다.

이론이나 상상 속에서라면, 영어를 수업 시간에 많이 쓸수록 학생과 교수의 영어 실력은 분명 향상된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한국이 철저한 한국어 중심 언어공동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순진무구한 기대에 불과하다. 국민 절대다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어로 생활하고, 거의 대부분의 국내 정보는 한국어를 타고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쓰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생활 반경을 좁디좁은 ‘영어 화자들 속’에 한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영어 학습’과 ‘영어 이용’이 다른 층위에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익힌 외국어의 수준만큼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government, lawmaker, policy 등의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에 관해 영어로 얘기하기 힘들 테다. as well as, rather than, not so much A as B 등의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많은 개별 단어를 알고 있어도 능숙하게 자기 생각을 펼치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표현할 만큼의 영어 실력을 미리 쌓았는가이다.

몇 해 전 수강했던 영어학 과목에서, 하루 수업의 핵심은 ‘표준편차’였다. 한국어로 설명했더라면 표준편차는 이해하기에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고등학교에서 배웠을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교수님은 ‘standard deviation’을 영어로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셨다. 학생들도 ‘standard deviation’이 무엇인지 몰라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날 강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에겐 통계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할 만한 영어 실력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로 된 통계학’을 몰랐다.

영어 강의가 낳은 것은 영어 실력도 잡고 전공 지식도 확충하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오해와 시간 낭비의 악순환이었다. ‘학술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 자체가 그에 맞는 수준으로 먼저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턱대고 영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대학 수업에 걸맞은 수준으로 저절로 향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런 현재의 흐름 외에, 역사적 사실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조선 이래 한반도에서 전 세계가 공유하는 지식이나 철학이 만들어졌는가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뛰어난 학자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들이 당대 학문의 국제 흐름을 주도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중국이 정신적, 학술적 유산을 한자로 차곡차곡 기록하는 동안, 우리는 한자를 차용해 그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심지어는 한국어에 가장 알맞은 문자인 한글 창제 이후에도 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따라잡는 데만도 여력이 모자랐다. 해방 이후 영어가 대세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60년째 우리의 아버지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따라가기 바쁘다.

이것은 단순히 영어(혹은 다른 외국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 못하기로는 한국 못지않은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1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 실적이 해당 국가의 학문 독창성과 국제 흐름 선도 여부를 100% 나타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대략적인 위상이나 분위기는 반영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독자적 철학이다. 극단적인 사례로는 일본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가 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노벨상 시상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어로 된 물리 용어는 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물리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영어보다는 자신의 본질적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인의 실력과 독창성은 모국어와 함께 더욱 효과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수많은 사례가 증명한다. 칸트는 3대 비판서를 모두 모국어인 독일어로 저술했다. 이것은 독일어로 쓰인 최초의 철학서였다. 칸트는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았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자기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영어는 독특한 생기를 부여받았고 셰익스피어는 영원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전자기학의 아버지’ 마이클 패러데이는 제본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제본소에 들어온 우수한 책들이 “영어로 쓰인” 덕분이었다. 그는 훗날 ‘전자기유도의 법칙’을 알아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발전소가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법칙이다. 이렇게 칸트, 셰익스피어, 패러데이는 각자 모국어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일궈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 강의가 적합한지 아닌지를 묻는 목소리 자체가 매우 작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한국은 지금까지의 한국과 다를지도 모른다. 영어가 모두에게 친숙하고 쉬운 언어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통해 독창적인 학문 성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래 세계에서는 영어만큼이나 중국어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관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독창성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은 모국어를 통해 더 쉽게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과 그 언어를 학술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적정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설익은 영어는 학문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어이없는 해프닝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창의성, 독창성, 그리고 우리의 학문 정체성 등을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 얼마나 많은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가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참고 문헌·기사·자료>

글로벌 공학인재 양성을 위한 영어강의의 역할과 과제 (한경희, 허준행, 윤일구)

‘무늬만’ 강의 늘어 … 교육 質 제고 시급하다 (교수신문 최성욱 기자)

“국제화가 아니라 미국화” KAIST 영어강의 논란 (헬로디디 임은희 기자)

KAIST 교수들 “영어강의는 국제화 아닌 미국화” (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노벨상 수상 마스카와 교수와 영어 (서울신문 박홍기 기자)

일본 노벨상 19명, 과학분야만 16명…비결은? (SBS 유영수 기자)

백종현 교수 “칸트와 함께 ‘이성의 한계’ 너머 희망 얘기할 때”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식민지도 아닌데 왜 영어로 수업하나” (한겨레21 이정훈 기자)

EBS 클립뱅크 :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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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공부해도 안 되는 영어”라는 미신

일단 광고 한 편을 보고 시작하자.

대개 우리나라 영어 사교육 광고에서, 영어 못하는 사람은 저렇게 ‘답답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 영어 사교육 광고 대다수의 주된 메시지는 ‘영어 못하는 당신은 바보’다.

‘너 바보’라는 메세지를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단골 멘트가 있다. 바로 ’10년 넘게 공부해도’로 시작하는 몇 가지 전형적 문장들이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말 한마디 못 한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외국에 나가면 쓸모가 없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원어민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정말 10년 넘게 영어공부를 해왔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 ’10년 넘게’의 미신을 물리쳐야 한다.

10년 넘게’라는 말은 단지 우리가 영어를 접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뜻일 뿐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동떨어진 표현이다.

현재 20대 중반이신 분들을 기준으로 하자면, 영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하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다. 그들이 10년 넘게 영어를 ‘접한’ 것은 사실이 된다.

그럼 실제로 영어를 학습한 시간을 생각해 보자. 역시 현재 20대 중반인 분들의 학창시절 10년을 기준으로 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공교육에서 영어 수업은 모두 합해서 1000시수 정도 진행된다.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7차 교육과정 총론‘을 참고함. 고등학교 2,3학년 시수를 160으로 계산) 그나마도 실제 정규 수업은 초등학생의 경우 40분, 중학생 45분, 고등학생 50분이다. 한 시수가 60분에 미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주 후하게 쳐서 60분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우리는 공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 영 사교육의 뜨거운 열기를 반영해, 공교육의 2배를 배정해 보자. 주먹구구식의 근거 없는 계산이지만 내 경험과 관찰에 근거해 생각해보자면 아주 무리수도 아니다. 그러면 사교육에서 받는 영어 수업은 2000시수가 된다. 이것 역시 1시간이라 가정하고, 공교육과 사교육 수업 시간을 합친 뒤 평균을 내보자.

10년에 3000시간

1년에 300시간

1주에 5.76시간

하루에 0.82시간 = 약 50분

아무리 후하게 쳐서 계산해도, 평균적인 공교육과 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20대 청년은 학창시절 10년간 하루 평균 50분씩 영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엄밀히 따졌을 때 ‘공부’라기보다는 수동적인 ‘수강’에 가까웠을 것이다.

주말과 방학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했기에 엉성한 결과다. 그러나 주말과 방학을 고려한다고 해서, 결과가 그리 희망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자발적 공부 시간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자습 시간’은 곧 ‘숙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국어 화자가 영어를 쉽게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많다. 그 이유의 폭은 언어 구조의 근본적 차이부터 시작해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강력한 단일언어 공동체라는 사실에까지 걸쳐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차치하고,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간단하다.

 

영어를 안 해서 그렇다.

하긴 했는데, 수업 조금 들은게 고작이라서 그렇다.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똑같은 수사 표현을 다른 과목에 적용해서 말해 보자.

“10년 넘게 수학을 배웠는데, 당신은 아직도 간단한 공식 증명을 못 한다”

“10년 넘게 음악을 배웠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작곡을 못 하시네요”

’10년 넘게 미술을 배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현대 미술의 흐름을 몰라”

 

이제 이 글의 주제가 확실히 와닿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순히 10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우리가 영어 공부를 10년째 했다는 말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영어 강박증을 심하게 앓고 있고, 그것을 이용한 사교육 업자들이 공포 마케팅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흐름에 떠밀려서 대다수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다. “10년 넘게 공부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 걸까ㅜ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자학에 빠진 한국의 성인들은 영어 사교육 업자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10년을 해도 안 되었다면, 당신이 잘못 배운 것은 아닐까요? 여기 새로운 방법이 있습니다!

저희만 믿고 따라오세요! 이 방법과 함께라면 10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광고에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알면서 속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래 같은 책이 유통되는 것이다.

1

불안감을 조성하고 열등감을 부추기는 저런 영어 장사꾼들에게 가는 관심은 줄어들어야 한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당신, 당신은 초보자다. 잘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는 초보자일 뿐이다.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아직도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바보가 아니다.

영어 공부에 왕도는 없다. 제대로된 내용을 차분히 학습한 후, 그에 이어지는 꾸준한 연습만이 유일한 길이다. 과장된 광고 속 공부방법들은 대체로 ‘꼼수’에 불과하다. 쉬운 내용부터 시작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된다.

내 취미는 달리기인데,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삶의 지혜가 하나 있다. ‘천천히 가야 오래 간다. 오래 가야 멀리 간다.’ 아마 영어 공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아직도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자. 부정적인 생각은 무얼 하든지 도움이 안 된다. “10년 넘게 공부했어도 안 되는 영어”라는 미신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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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으며,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Jeffrey James Pacres, Writing (CC BY-NC-ND 2.0)
Jeffrey James Pacres, Writing (CC BY-NC-ND 2.0)

드디어 단어/읽기/듣기/말하기편에 이어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쓰기는 일반적인 언어습득에서도 가장 나중에 도달하는 지점이고, 외국어 학습자들에겐 당연히 제일 어려운 과정이다. 나의 경우에도 친구들의 영문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에세이 등을 교정해준 적이 많지만, 여전히 영어 글쓰기는 무척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영어로 ‘문장 쓰기’ 자체가 아니라,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할 것들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문장 수준의 영작문이 어느 정도 가능하신 분들이 목표 독자인 셈이다.

사실 글쓰기는 한두가지의 방법 소개나 강좌로 제대로 배우기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달해야 할 내용이 방대하고, 또 그 내용이 학습자의 머리속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글은 영어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몇 가지 내용을 알려드리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밀한 설명보다는 ‘이런 내용이 있다’라는걸 드러내는 정도의 글이 될 것이고, 이런 내용에 관해 진지하게 공부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마지막에 책과 강의 추천을 덧붙였다.

목차:

[1] 영어 문장의 힘은 뒷부분에. 문미비중과 문미초점의 원리(End-weight & End-focus)

[2] 문장의 정보 배열을 조절하라. 구정보-신정보 배열 (Given-New Contract)

[3] 읽기 쉬운 글의 미덕. 글의 응집성(Cohesion)과 통일성(Coherence)

[4] 수동태

[5] 독자의 독해 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하자. 문장부호의 사용 (Punctuation)

[6] 글을 쓰는 절차

[7] 마무리. 책 & 강의 추천


[1] 영어 문장의 힘은 뒷부분에. 문미비중과 문미초점의 원리(End-weight & End-focus)

영어 문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먼저 소개하고 시작하겠다.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문장을 분석할 때, 동사를 기준으로 그 앞부분의 모든 내용은 주제부(Topic Position)라고 부른다. 같은 기준으로 그 다음부분은 강조부(Stress Position)다. 이 구분은 앞으로 계속 유효하다.

(1) 길고 복잡한 정보를 문장의 뒤로 보내자. 문미비중의 원리 (End-weight)

우선은 문장 하나를 살펴보는 단계에서 출발한다. 영어로 글을 쓸 때, ‘길고 복잡한 내용’은 문장(혹은 절)의 뒷부분으로 보내야 한다. 무거운 정보(weight)를 뒷부분(end), 즉 강조부(Stress Position) 쪽으로 보내라는 의미다.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차이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복잡하고 긴 정보를 어디에 배치하는가에 있어 아주 극명한 차이가 있다. 문장(혹은 절) 수준에서, 한국어는 복잡하고 긴 정보를 주로 앞에, 영어는 복잡하고 긴 정보를 주로 뒤에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은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이한정 교수님의 수업 자료를 발췌한 것이며, 앨빈 토플러의 글 한토막을 한국인 학생 A가 한국어로 번역한 뒤 그것을 다시 학생 B가 영어로 번역한 결과물이다. 밑줄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자.

1. 앨빈 토플러의 원문(출처: ‘Revolutionary Wealth’)

The economic ascent of China, India and, less noticeably, Brazil helped derive oil prices to record levels in 2005; prices were twice as high as in 2002. That makes alternatives to oil more competitive. It also calls into question how long present oil reserves can last. No one can predict when the last barrel of crude will be pumped.

2. A의 한국어 번역

중국과 인도 그리고 부분적으로 브라질의 경제적 성장으로 2005년 유가는 2002년에 비해 유례없는 상승을 경험했다. 그 결과 석유 대체 자원들이 더욱 경쟁력을 얻고, 현재 지구상에 얼마나 원유가 남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마지막 한 방울의 원유가 채취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소 오역이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이다.)

3. B의 영어 번역

Due to the economical growth of China, India and some parts of Brazil, the oil price of the year 2005 has increased compared to the price of it in the year 2002. As a result of it, the resources that substitute oil has gained more competition, and the question of how much oil has left on earth has emerged. When the last drop of oil will be found cannot be predicted by anyone.

밑줄 친 부분이 각각의 문장과 절 내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다시 살펴보자. 길고 복잡한 정보가 문장(혹은 절)의 뒷 부분(강조부)에 위치해야하는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길고 복잡한 정보를 문장의 앞부분에 배치한다.

A학생은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한국인 B학생이 그러한 한국어의 정보 배치 방식을 영어 문장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문미비중의 원칙을 위배한 결과, ‘문법적으로 틀린 점은 없지만 영어답지 않은’ 영어 문장이 나왔다.

(2) 중요한 정보를 문장의 뒤로 보내자. 문미초점의 원리(End-focus)

길고 복잡한 정보는 대개 의미적으로도 ‘중요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 문미비중의 원리를 지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요한 정보’를 뒷부분으로 보내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미비중의 원리와 구분해서 생각해야할 또 다른 규칙이다. 영어 문장에서 ‘중요한 정보’일수록 문장의 뒷부분에 위치해야 한다는, 문미초점의 원리(End-focus)이다.

A1) In America I studied linguistics.
B1) I studied linguistics in America.

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위의 두 문장은 완전히 쓰임새가 다르다. 두 문장의 강조점이 ‘공부한 학문’과 ‘공부한 장소’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각각의 문장은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A2) What did you study in America?
B2) Where did you study linguistics?

문미초점(End-Focus) 구문에 관하여'(한양대 영어영문학과 이기정 교수)

대체로 문미비중과 문미초점이 원리는 걸음걸이의 왼발과 오른발처럼 한쪽을 맞추면 다른 한쪽이 저절로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길고 복잡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익숙해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일 수 있고, 짧은 한두 단어일지라도 상대적으로 생소한 정보일 수 있다. 또한 길이가 비슷하더라도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다를 수 있다. 이런 경우 두 원칙 가운데 우선적으로 따라야할 것은 문미초점의 원칙이다. ‘생소하거나 중요한’ 정보일수록 문장의 뒷편으로 가야 한다. 예문을 살펴보자.

A) Although they were not completely happy with it, the committee members adopted her wording of the resolution.

B) The committee members adopted her wording of the resolution, although they were not completely happy with it.

An Introduction to English Grammar (3rd ed.), p.149

although 절의 위치를 조절했을 뿐이지만, 두 문장은 서로 초점이 다른 문장이 되었다. A문장이 위원회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B문장은 그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문장이다.

이러한 문미비중/문미초점의 원칙이 적용되는 또 다른 부분이 바로 가주어/가목적어 그리고 도치 등 각종 특수구문이다. 보통 중고등학생 시절 ‘영어는 주어가 긴 걸 싫어한다’고 단순하게 배우고 넘어가지만, 이 같은 가주어/가목적어 사용 등에는 길고 복잡한 정보가 문장 뒷부분에 있어야 한다는 문미비중과 문미초점의 원칙이이 숨어 있다. 예문과 함께 보자.

The fact that many doctors who came to Finland in the 1960’s had to start their medical studies over from the beginning in order to be licensed to practice here is unfortunate.

It is unfortunate that many doctors who came to Finland in the 1960’s had to start their medical studies over from the beginning in order to be licensed to practice here.

[2] 문장의 정보 배열을 조절하라. 구정보-신정보 배열 (Given-New Contract)

영어든 한국어든, 글에 쓰이는 하나의 문장은 ‘독자에게 친숙한 정보’에서 시작해, ‘생소한 혹은 새로운 정보’로 끝맺음하는 것이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가능케 한다. 이제부터는 문장 하나의 수준이 아니라, 그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도 생각해야하는 단계다.

하나의 문장을 쓸 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나 이전에 언급했던 정보라면 굳이 신경써서 소개할 필요가 없다. 이런 내용·정보는 이미 드러난 정보라는 점에서, ‘구정보(Given, Old Information)’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구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는 △정황상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만한 사실 △직접적으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말하기 △앞서 말했던 진술상 누구든지 추론 가능할만한 내용 등이 있으며, 가급적 문장의 앞부분(주제부)에 위치해야 한다.

구정보에 이어 ‘동사’를 지난 후, 문장 후반부(강조부)에 ‘신정보(New Information)’을 배치해야 한다. 독자들이 알고 있지 못할 법한 내용이야말로 글쓰는 사람이 진정 전달해야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실질적으로 문장을 이끌어나가는 ‘힘’ 있는 내용이다. 독자로 하여금 ‘이미 친숙한 것들’에서 읽기를 시작해, ‘새로운 사실’에 도달하게 이끄는 것은 글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 아닐까.

다시 한 번, 앨빈 토플러의 글과 한국인 학생 B의 문장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문장의 앞 부분(주제부)에 구정보를 배치했는지, 신정보를 배치했는지 함께 살펴보자.

1. 앨빈 토플러의 원문

The economic ascent of China, India and, less noticeably, Brazil helped derive oil prices to record levels in 2005; prices(1) were twice as high as in 2002. That(2) makes alternatives to oil more competitive. It(3) also calls into question how long present oil reserves can last. No one can predict when the last barrel of crude will be pumped.

(1) 앞 절에서 언급된 prices를 그대로 반복하며 새로운 절을 시작했다.
(2) 앞서 소개된 내용을 대명사 That으로 지칭하며 새로운 문장을 시작했다.
(3) 앞서 언급된 내용을 다시 한 번 대명사 It으로 받아 새로운 문장을 시작했다.

2. B의 영어 번역

Due to the economical growth of China, India and some parts of Brazil, the oil price of the year 2005(1) has increased compared to the price of it in the year 2002. As a result of it(2), the resources(3) that substitute oil has gained more competition, and the question of how much oil has left on earth has emerged. When the last drop of oil will be found cannot be predicted by anyone.

(1) Due to~부분은 전치사구로서, 영어 독자는 이 같은 전치사구를 비교적 덜 중요한 내용으로 인식한다. 그에 이어지는 the oil prices가 해당 문장을 실질적으로 여는 부분인데, 전혀 언급된 바 없는 ‘유가’로 절을 시작했다.
(2) 앞서 소개된 내용을 처리하는 대명사 it이 As a result of라는 전치사구 뒤로 밀려났다.
(3) ‘prices’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운 절을 갑작스레 ‘resources’로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자. 독자가 알 법한 내용(구정보)은 문장의 앞에! 독자가 알지 못할 법한 내용(신정보)은 문장의 뒤에!

이것을 앞서 배운 문미비중, 문미초점의 원리와 함께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앞부분엔 짧고 단순하고 친숙한 정보를 / 뒷부분엔 길고 복잡하고 새로운 정보를 담아야 한다.

[3] 글의 응집성(Cohesion)과 통일성(Coherence)

cohesion과 coherence의 한국어 번역어가 아직 통일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 글에선 각각 ‘응집성’과 ‘통일성’으로 표기하겠다.

(1) ‘응집성’,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밀한 결합

Patrik Nygren, Raindrop on a leaf (CC BY-SA 2.0)
Patrik Nygren, Raindrop on a leaf (CC BY-SA 2.0)

‘응집성’이라는 단어는 화학 용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위 그림에서 보이듯 동일한 분자끼리 단단하게 결합하는 성질이 응집성이다. 힘으로 표현하자면 ‘응집력’일 것이다.

‘글의 응집성’도 이와 유사한 개념이다. 하나의 문장과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의미상 긴밀하면 긴밀할수록 글의 응집성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 영어 글에서 응집성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펴보자.

A) Light rock-and-roll can be as comforting to a college student as classical music can be to a professor. Most radio stations play light rock-and-roll. Themes about sex, alcohol, and violence come up in the lyrics of light rock-and-roll. But country music deals with sex, alcohol, and violence too.

B) Light rock-and-roll can be as comforting to a college student as classical music can be to a professor. Light rock-and-roll(1) is played by most radio stations. The lyrics of light rock-and-roll(2) bring up themes about sex, alcohol, and violence. But these themes(3) come up in country music too.

출처: 루이빌 대학교

글 A의 경우, 모든 문장이 그 앞의 문장과 무관한 단어로 시작한다. 응집성이 크게 떨어지는 구조인 셈이다. 반명 글 B의 경우 모든 문장이 앞선 문장의 내용과 매우 밀접한 단어로 시작한다.

(1)부분에서 ‘Light rock-and-roll’이라는 소재를 반복하고, (2)에선 록큰롤의 당연한 구성 요소인 ‘가사’라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3)에선 앞서 나열한 것들을 감싸안는 ‘these themes’라는 단어로 새 문장을 시작한다.

눈치채신 분도 있을 것 같다. 글의 응집성은 앞서 다룬 ‘구정보-신정보 배열’과 사실상 비슷한 내용이다. 하나의 문장을 시작할 때, 이전 문장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글의 응집성이 높아진다. 이전 문장과 관련 있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구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모든 문장을 구정보로 시작한다고 해서 글이 깔끔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살펴야 할 개념이 바로 ‘통일성’이다.

(2)’통일성’, 여러 문장을 하나의 주제로 꿰는 힘

글의 통일성이란, 하나의 문단을 구성하는 모든 문장이 그 문단의 핵심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문장과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된다는 점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글이라면, 하나의 문단은 철저하게 하나의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주제를 다루며 여러 문장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장들의 주제부(Topic Position)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극단적인 사례를 함께 보고 넘어가겠다. 한국어 문장인데다 글의 전체적인 어조에 맞지 않는 사례지만(현아 덕분에 더욱…) ‘통일성이 없는’ 문장을 이해하기에는 꽤 유용하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응집성을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통일성은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동요 가사다. 응집성 자체는 아주 훌륭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문장이 서로 전혀 관련없는 주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 문장으로 돌아가, 응집성과 더불어 통일성까지 지키는 글에 대해 알아보겠다. 조셉 윌리엄스의 명저 ‘스타일’의 한 부분이다.

A. Consistent ideas toward the beginnings of sentences, especially in their subjects, help readers understand what a passage is generally about. A sense of coherence(1) arises when a sequence of topics comprises a narrow set of related ideas. But the context of each sentence(2) is lost by seemingly random shifts of topics. Unfocused, even disorganized paragraphs(3) result when that happens.

B. Readers understand what a passage is generally about when they see consistent ideas toward the beginnings of sentences, especially in their subjects. They feel a passage is coherent when they read a sequence of topics that focuses on a narrow set of related ideas. But when topics seem to shift randomly, readers lose the context of each sentence. When that happens, they feel they are reading paragraphs that are unfocused and even disorganized.

‘Style : Lessons in Clarity and Grace'(11th ed.), p.83~84.

글 A의 경우, 문장들의 주제부를 봤을 때 응집성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다. (1)은 그 전 문장의 consistent ideas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며, (2)의 경우 역시 글과 문장에 대해 말하고 있는 문단이기 때문에 친숙한 내용일 수 있다. (3)의 경우는 다소 응집성이 떨어지는 경우다. 그러나 글 A는 통일성이 형편없는 글이다. 주제부에 들어간 내용들이 제각각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 글 B는 후반부의 topics와 that을 제외하면, 모든 문장의 주제부가 같은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도입부를 평이한 단어로 시작해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까지 한다. 문단을 이렇게 구성할 경우, 응집성이 높아 독자가 글을 읽기도 편하며, 통일성이 높아 독자는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을 명확하게 인지하며 따라갈 수 있다.

응집성과 통일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래 두 문단 또한 ‘스타일’에서 발췌한 글이다. 글 A와 B 가운데 어떤 글이 더 읽기 수월한지, 판단을 여러분에게 맡겨보겠다.

A) The basis of our American democracy—equal opportunity for all— is being threatened by college costs that have been rising fast for the last several years. Increases in family income have been significantly outpaced by increases in tuition at our colleges and universities during that period. Only the children of the wealthiest families in our society will be able to afford a college education if this trend continues. Knowledge and intellectual skills, in addition to wealth, will divide us as a people, when that happens. Equal opportunity and the egalitarian basis of our democratic society could be eroded by such a divide.

B) In the last several years, college costs have been rising so fast that they are now threatening the basis of our American democracy—equal opportunity for all. During that period, tuition has significantly outpaced increases in family income. If this trend continues, a college education will soon be affordable only by the children of the wealthiest families in our society. When that happens, we will be divided as a people not only by wealth, but by knowledge and intellectual skills. Such a divide will erode equal opportunity and the egalitarian basis of our democratic society.

‘Style : Lessons in Clarity and Grace'(11th ed), p.77

[4] 수동태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토대로 한국에서 너무나 무성의하게 교육되는 내용 하나를 바로잡으려 한다. 바로 수동태의 ‘기능’이다

보통 중고등학교과 대부분 영어학원에서는 수동태를 ‘능동태의 변환’ 형태로 가르치는 동시에 ‘행동주체가 중요하지 않을 때’ 정도의 사용 이유만을 가르친다. 또한 ‘영작문’ 수업에선 “가급적 능동태를 쓸 것”이라는 원칙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수동태의 진정한 쓰임새는 문장의 흐름을 부드럽게 조절하는 데 있다. ‘구정보/신정보’에 따라, ‘문미초점’에 따라, ‘응집성과 통일성’에 따라 문장을 다듬을 때 능동태와 수동태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문으로 살펴보자,

Almost all entrants to teaching in maintained and special schools in England and Wales complete a recognised course of initial teacher training.
→이 문장 다음에 올 것으로 자연스러운 문장 아래에서 A와 B 가운데 무엇일까?

A) Such courses are offered by university departments of education as well as by many polytechnics and colleges.

B) University departments of education as well as many polytechnics and colleges offer such courses.

랭카스터대학 리처드 샤오 교수의 강의자료

정답은 A이다. 앞선 문장에 나온 정보인 ‘course’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고 있으며(구정보/신정보), 복잡하고 길고 중요한 정보가 뒤에 나온다는 문미비중/문미초점 원리까지 충족하고 있다. 대부분 영작문 수업이 피하라고 강조하는 수동태가 여기에선 능동태보다 글의 흐름을 훨씬 부드럽게 한다.

아래의 경우는 능동태와 수동태 사용에 따라 달라지는 ‘통일성’이다.

A) The town is a major centre for the timber industry and <the town> is surrounded by large industrial and shipping complexes in the river Dvina, <the town> stretching away to the White Sea about thirty kilometers to the north.

B) The town is a major centre for the timber industry and large industrial and shipping complexes in the river Dvina surrounded it, <the town> stretching away to the White Sea about thirty kilometers to the north.

랭카스터대학 ‘리처드 샤오’ 교수 강의자료

A에선 the town이라는 주제의 통일성이 지켜졌지만, B의 경우 ‘능동태’를 사용한 탓에 그 통일성이 깨져버렸다.

[5] 독자의 읽기 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하자. 문장부호의 사용 (Punctuation)

우리는 말로 대화를 할 때, 특정한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억양 조절을 하거나 말의 속도를 조절한다. 소리 언어의 그러한 기능을 글자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해답은 바로 문장 부호이다.

한국어의 경우 글쓰기에서 문장 부호의 체계적인 사용 방법이 아직 일반 대중의 언어생활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영어 글쓰기의 경우 문장 부호의 기능과 규칙이 상당히 규칙적으로 정립돼 있다.

여기선 문장 부호에도 규칙이 있다는 사실과 예시 두 가지만 보여드리고 마무리하겠다. 문장부호의 자세한 쓰임새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글 하단의 추천 목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우선 문장 부호들이 각기 다른 기능을 내포하고 있으며, 상호간의 ‘위계질서’ 혹은 ‘서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음은 문장 부호의 기능과 상호간의 위계를 설명하는 도표다. 클릭해서 크게 볼 수 있다.

문장부호
(보이시주립대 라이팅 센터 자료 번역)

문장을 완전히 마무리짓는 . ? ! 세 종류의 부호는 의미 단절(Seperation)을 가장 크게 가져오며, 이는 문장 부호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그 아래로는 점차 단절의 효과가 줄어들고,앞선 부호들보다 서열이 낮은 부호가 된다.

길고 복잡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 문장 부호의 조절은 필수적이다. 사례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시카고 스타일가이드에서 발췌한 문장부호 쓰임새의 오류와 그 해결책이다.

The defendant, in an attempt to mitigate his sentence, pleaded that he had recently, and quite unexpectedly, lost his job, that his landlady—whom, incidentally, he had once saved from attack—had threatened him with eviction, and that he had not eaten for several days.

(The Chicago Manual of Style, 15th E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세 개의 that절을 모두 콤마(,)로 나열했다. 이것 자체만으로는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개의 that절을 쉼표로 나열하는 것은 아주 흔한 경우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문장 부호 사이의 ‘위계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이 문제다.

두 번째 that절 안에서 landlady를 강조하기 위해 대시(—)를 사용했는데, 대시는 쉽표보다 위계 질서가 높은 부호다. 쉼표로 나열되는 절 내부에 쉼표보다 위계질서가 높은 대시가 들어가면 어색한 구조가 되어버린다. 한국인인 우리가 읽을 때는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영어 원어민 혹은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비원어민이 읽었을 때는 독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윗글의 밑줄 친 부분에서 쉽표는 ‘The defendant pleaded’ 사이에 들어간 삽입구 표시다. 그 결과, 위의 글은 ‘삽입구를 위한 쉼표’와 ‘that절 나열을 위한 쉽표’가 산재된 엉성한 글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 있다.

The defendant, in an attempt to mitigate his sentence, pleaded that he had recently, and quite unexpectedly, lost his job; that his landlady—whom, incidentally, he had once saved from attack—had threatened him with eviction; and that he had not eaten for several days.

that절을 나열하는 문장부호를 세미콜론으로 교체했다. 그 결과 대시(—)와 위계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삽입구를 위한 쉼표와도 혼동을 야기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례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버밍엄 감옥에서의 편지’ 일부분이다. 세미콜론을 이용한 when 절의 나열, 나열하는 when절의 내용들이 일상적인 것에서 점차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점증적 구조, 그렇게 쌓아올린 긴장을 ‘대시’를 통해 강렬하게 매듭짓는 기교 등이 극적으로 나타나는 스타일이다. 다소 긴 분량이지만, 아름다운 영어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꼭 정독해봐야 할 글이다.

USINFO Photo Gallery
USINFO Photo Gallery

Perhaps it is easy for those who have never felt the stinging darts of segregation to say, “Wait.” But when you have seen vicious mobs lynch your mothers and fathers at will and drown your sisters and brothers at whim; when you have seen hate filled policemen curse, kick and even kill your black brothers and sisters; when you see the vast majority of your twenty million Negro brothers smothering in an airtight cage of poverty in the midst of an affluent society; when you suddenly find your tongue twisted and your speech stammering as you seek to explain to your six year old daughter why she can’t go to the public amusement park that has just been advertised on television, and see tears welling up in her eyes when she is told that Funtown is closed to colored children, and see ominous clouds of inferiority beginning to form in her little mental sky, and see her beginning to distort her personality by developing an unconscious bitterness toward white people; when you have to concoct an answer for a five year old son who is asking: “Daddy, why do white people treat colored people so mean?”; when you take a cross county drive and find it necessary to sleep night after night in the uncomfortable corners of your automobile because no motel will accept you; when you are humiliated day in and day out by nagging signs reading “white” and “colored”; when your first name becomes “nigger,” your middle name becomes “boy” (however old you are) and your last name becomes “John,” and your wife and mother are never given the respected title “Mrs.”; when you are harried by day and haunted by night by the fact that you are a Negro, living constantly at tiptoe stance, never quite knowing what to expect next, and are plagued with inner fears and outer resentments; when you are forever fighting a degenerating sense of “nobodiness”then you will understand why we find it difficult to wait.

(펜실베이니아 대학 아프리카학 홈페이지)

[6] 글을 쓰는 절차

지금까지 문장 하나를 쓰는 방법과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방법을 다루었다면, 글 한 편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글쓰기의 ‘절차적 지식’에 관한 부분인 셈이다. 다만 여기에서 그 모든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절차적 지식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에 소개해드릴 책과 강의에서 배울 수 있다. 여기선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1) 글을 쓰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먼저 꺼내어 써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는 영어 문장을 효율적으로 작성하는 방식에 위배된다.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 머릿속 ‘사고의 흐름’은 효율적인 글의 정보 배열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글 고치기’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초고를 쓰는 동안 중요한 정보들이 문장의 앞부분에 계속해서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그것들을 차후 편집 과정에서 다시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초안이 어느 정도 잡힌 이후에는, 끊임없는 고치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2) 오류를 기록한 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틀리는 문제는 꼭 다시 틀린다’는 것은 학창시절 누구에게나 상식이었을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인지과정의 산물인 ‘글’은 각자 자신의 두뇌 사용 패턴에 따라 특징과 실수가 비슷하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 글 전체가 의도하는 내용과 관련된 특정 부사를 남발하는 글쓰기 버릇이 있다. ‘여전히 ~한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글을 쓸 때는 ‘still’을 지나치게 많이 쓴다. 자신이 작성한 초고에서 나타난 오류의 종류와 해결책을 따로 기록해 보관하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참고하기 아주 좋은 자료가 된다.

[7] 마무리. 책 & 강의 추천

Style: Lessons in Clarity and Grace (11th Edition)
Style: Lessons in Clarity and Grace (11th Edition)

영어 글쓰기에 이러이러한 원칙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효과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번 글을 썼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명확한 도구다. 뛰어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글쓰기에서 만큼은 자신의 연장을 계속해서 갈고 닦아야 하며 한 편의 글을 쓴 후에도 끊임없이 보살피고 어디 흠결은 없나 신경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다만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분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아니다.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정상의 절경을 선사해주는 높은 산과 같다. 영어로 하는 작업은 그 산의 높이가 조금 더 높을 뿐이다. 이상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약간의 책과 강의 추천을 덧붙이겠다.

1. 베이직 잉글리쉬 라이팅 Basic English Writing-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써지는 (하명옥)

아직 기초적인 영작 수준에서 문제를 느끼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은 이 책으로 첫 걸음을 떼길 추천한다. 시중의 기초 영작문 안내서들 가운데 가장 알찬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2. 원서 잡아먹는 영작문 (최용섭)

위의 경우보다는 영어 문장을 잘 만들어내지만, 그래도 문장 구성력이 약하신 분들을 위한 책이다. 한국어와 영어 문장 간의 대조 분석을 통한 자기 교정이 가능하다. 아주 효율적인 방식의 영작 교재라고 생각한다.

3. Style: Lessons in Clarity and Grace (Joseph Williams, Joseph Bizup)

영어 문장 작성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명저. 인생의 목표로 영어를 공부하던 시절, 평생을 두고 계속해서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책이다. 한국어 번역본도 있다: [STYLE(문체) 명확하고 우아한 영어글쓰기의 원칙]

그러나 영어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만한 영어 실력을 갖추신 분들이 굳이 한국어 번역본이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다. 국어 문체를 다듬기 위해 영어 문체 이론서를 탐구하는 용도로 더 적절하지 않을까.

4. On Writing Well (William Zinsser)
번역서: 『글쓰기 생각쓰기』 이한중 역.

여타 다른 문체, 스타일 안내서와는 달리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정말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쓴 글쓰기 안내서로 유명하다.

5. Writing for Social Scientists (Howard Becker)
번역서: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이성용 역.

글쓰기의 절차적 지식에 관해 자세하게 안내한 책이다. 신변잡기적 글쓰기가 아닌, 논증을 구성하는 ‘제대로 된’ 글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6. 먹고, 쏘고, 튄다 (린 트러스 지음, 장경렬 역)

문장부호의 사용에 관해 아주 자세하게 다룬 책이다. 원서보다 번역본을 추천한다. 영어 모국어 화자로서 알지 못하는 비원어민의 어려움을 번역자가 아주 성실한 각주로 메꿨기 때문이다.

7. 강의 추천

한겨레 신촌 교육문화센터의 Rhetorical Writing & Academic Writing. (라성일 선생님)

이 글 자체가 라성일 선생님 강의의 일부를 토대로 하여 재구성한 글이다. 10주 정도에 걸친 수업을 듣고 나면, 영어 문장을 바라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예전에 썼던 단어 관련 글도 사실상 라성일 선생님의 수업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글이었다.

*사족.

‘글의 응집성’은 한국어 글쓰기에 곧바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원리이다.

1. 나는 대학생이다. 영문과 학생이다. 다양한 것들을 영문과에서 배울 수 있다. 소설이 그것들 가운데 가장 좋다. 단어나 문장의 수준을 보면, 소설가들은 정말 대단하다.

2. 나는 대학생이다. 전공은 영문학이다. 영문학과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 그 중에서 나는 특히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 작가들은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두 글은 정확하게 똑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글에 비해 첫 번째 글은 대학생의 글이라기보단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보인다.


이 글은 2013년 5월 4일 예전 블로그에 처음 작성됐으며, 2014년 3월 15일 수정을 시작해 2015년 1월 25일 다시 공개됐다. 영어 공부법에 관한 글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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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1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1] 들어가며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사실을 먼저 복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한국어로 사고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며, 한국어로 세계를 인식한다. 이런 상황은 최소 10년 넘게 유지된 나의 ‘기본값’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사실은 우리가 영어를 학습하면서 꼭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언어 사용에 쓰는 시간을 돈으로 비유하자면 한국어로 의사소통해온 세월은 매몰 비용이다.

매몰 비용은 합리적 선택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기본 사고방식은 ‘한국어의 기본값 위에 어떻게 영어의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영어 말하기 편은 먼저 발음, 연음, 강세와 억양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다룰 것이다. ‘발음’이라면 개별 소리의 발음이고, 연음은 그 소리들이 이어질 때의 현상이고, 강세는 어느 음절에 힘을 주는가 문제고, 억양은 그러면서 발생하는 말의 흐름과 높낮이다. 본문에서는 간결함을 위해 ‘발음’으로 통칭하겠다.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발음’은 이 4가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어서 ‘대화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하고 한국어 화자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 말할 수 있는지를 얘기한 다음, 울타리 표현(hedge expressions)에 관한 설명 후 약간의 추천과 함께 마무리하겠다. 참고로 이번 편에서는 기존 글과 조금 다르게 특정 공부 방법을 설명할 예정이다.

[2] 발음 고민 해결 1. 심리적으로

많은 한국인 영어 학습자가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의 ‘원어민다운’ 발음을 추구한다. 미국식 발음이라는 이상향과 한국인 발음이라는 현실의 간극에서 그들은 자신의 영어 발음을 부끄러워한다. 이에 대한 심리적 해결책을 먼저 알아보자.

영어 발음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편안하게 바꿔야 한다. ‘원어민처럼’ 발음하기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100% 원어민 같은 발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15년 넘게 한국어 화자로 살면서 우리의 ‘발성 기관’은 음성 한국어에 최적화했다. 발성 기관은 우리 신체가 다 그렇듯 운동 기관이다. 말하기에 근육이 관여한다는 뜻이다. 최소 15년 이상 음성 한국어에 맞게 발달한 근육 구성을 단기간에 음성 영어에 맞도록 고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이어트나 몸 키우기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평범한 생활인이 자기 신체를 완전히 바꿔 몸짱이 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식생활 조절을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면 충분하다. 근육에 빗대 설명하다 보니 [한국어 사용:영어 = 평소 몸:몸짱] 관계가 성립했는데, 영어가 한국어보다 권장 상태라고 오해될까 걱정이다. ‘근육 변화’에만 초점을 맞춰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일반인에겐 근육 운동이 ‘적당한 만큼’ 필요하듯 영어 발음도 보통 대부분 한국인에겐 ‘적정 수준’으로만 다듬으면 된다. 그 수준이란 영어 의사소통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몇 가지 난점만 바로잡는 정도다. 각각 반년 정도씩 거주해본 호주와 덴마크에서 영어로 대화할 때, 발음이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경우보다 표현력 자체의 부실함이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인 A와 B는 둘 다 영어 발음이 어눌했다. 하지만 대화 수준은 달랐다. A는 또박또박 자기 할 말을 다 했지만 B는 종종 프랑스어-영어 사전 앱을 확인해야만 했다. 

Marginal_Utility
x축 = 발음이 좋아지는 정도 / y축(Utility) = 대화에서의 실제 이득
(클릭하면 원본 페이지로 이동)

물론 발음이 좋을수록(1) 영어 말하기에는 이득(2)이다. 그러나 (1)이 (2)에 주는 영향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 갈증을 해소하는 물 한잔은 꿀맛이지만 두 잔 세 잔으로 넘어가면서 그만큼의 상쾌함을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이 심각하게 곤란한 수준을 해결하는 발음 교정은 영어 말하기에 바로 이익이지만 일정 정도를 지나면 영어 발음 향상 자체로는 영어 말하기에 큰 이득이 되지 못한다. 

결론은 ‘한국식 발음’을 너무 교정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콩글리시 발음’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텐데, 이것을 완전히 없애기는 사실상 불가능이며(근육!) 100%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발음 얘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다룰 테지만, 대화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주고받는 내용이 어떤가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익히지 않은 세계 각지 사람들은 각각 자기 모국어가 반영된 영어 발음을 구사한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2분 40초부터 보기)

이 동영상은 세계 각지에서 말해지는 ‘실제 영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다. 과장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이 정도면 대체로 각 언어 사용자들의 특징을 잘 잡아낸 편이다. (한국인 영어는 사실과 조금 다르지만, /th/ 발음에 약하다는 특징은 잘 잡아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영어 발음에 조금 더 관대해지길 바란다.

[3] 발음 고민 해결 2. 실질적으로

언어 학습의 중요한 이치를 하나 다뤄보자. 바로 ‘귀납’과 ‘연역’이다. 사례를 통해 일반적 원리를 도출하는 ‘귀납 과정’과 일반적 원리를 통해 사례에 적용해나가는 ‘연역 과정’은 논리학 교과서에만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 문법이나 발음 원리 등의 ‘공부’는 일반적 원리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연역의 기반을 다지면 영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연역 과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면, 다양한 영어 문장을 경험하는 귀납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학습자는 자신의 익힌 원리를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연역과 귀납의 상호작용이야말로 영어를 제대로 익히는 방법이다. 가장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학습자에게 그런 원리들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사실’, ‘당연한 사실’이 될 것이다.

영어 발음 학습에서는 의사소통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몇 가지 난점들만 바로잡기까지만 연역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번 듣기 편에서 소개했던 영상들(따로 모아 놓은 포스트 바로 가기) 정도까지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음 가운데 /r/과 /l/, /th/, /f/, /v/를 주로 연습하길 추천한다. 이것들은 특히나 한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발음이다. 모음의 경우 많은 분이 간과하는 장모음-단모음 차이를 더 신경 쓰면 좋다.

Feel과 Phil(남자 이름)….

장/단음도 가끔 의사소통의 오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맨 처음에 말했듯 지금까지 ‘발음’이라고 통칭해온 내용에는 발음뿐만 아니라 연음, 강세와 억양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연역적으로 해결할 대상은 ‘발음’ 자체라고 생각한다.

연음과 강세, 억양은 귀납적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이것들은 연역적으로 접근해 그 내용을 학습하기엔 규칙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든 우린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 연음과 강세, 억양을 개선하기 위한 귀납적 접근은 잠시 후 ‘서사 구성력’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몇 가지 자음 발음을 신경 쓰고, 장/단음의 차이를 이해하는 등 발음을 위한 연역 기반을 다졌다면, 발음 자체를 교정하겠다는 학습 목표는 내려놓는 게 좋다.

[4] 대화 자체의 본질에 관해

외국인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 회화’나 ‘프리 토킹’이라고 불리는 행위는 결국 ‘대화’라는 사실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 같다.

‘대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일정한 내용을 주고받는 행위다. 대화를 다른 말로 하면 의사소통일 텐데, 소통에 앞서 우리에게는 특정한 의사, 즉 ‘뜻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때, 그 어색함은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개팅에서 상대와 처음 마주했을 때 뻘쭘한 상황, 나이 많은 선배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 혹은 반대로 한참 어린 후배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 뻔하디뻔한 인생 교훈 말고는 해줄 말이 없는 경우 등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상대가 한국인일지라도 ‘대화’는 이처럼 어려운 행위다.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없을 때,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다시 영어 말하기로 돌아오자. 외국인과 하는 영어 대화가 어려운 건 단지 상대가 외국인이고 내가 영어를 수월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외국인 앞에서 말이 막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나와 그가 공유하는 기억 자체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파악했으니 해결책을 탐구해 보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친숙한 소재로는 유럽 축구와 할리우드 가십이 있다. 이런 대중문화부터 시작해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역사 지식을 조금씩 넓혀야 한다.

tvN '꽃보다 할배'(왼쪽), EBS 세계테마기행(오른쪽 위), KBS1 '걸어서 세계속으로(오른쪽 아래).
tvN ‘꽃보다 할배’(왼쪽), EBS 세계테마기행(오른쪽 위), KBS1 ‘걸어서 세계속으로(오른쪽 아래).

여행 프로그램 시청하기도 좋은 방법이다. 친숙하게는 tvN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있고, EBS ‘세계테마기행’과 KBS1 ‘걸어서 세계속으로’도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꽃할배 시리즈야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일반인들이 절대 가볼 일이 없을 만한 여행지도 소개하지만, 보통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고 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곳을 많이 다룬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세계 각국 도시와 자연환경,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까지 제대로 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세계 각국 문화와 역사를 폭넓게 공부할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학생은 학생대로 바쁘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바쁘다. 도서관에 앉아서 세계사 책을 천천히 읽기도 어렵고, 아무 때나 여행 프로그램을 느긋하게 시청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너’에 관한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다면, ‘나’를 표현할 내용을 생각해볼 차례다. 자신의 취미나 추억부터 시작하면 좋다. 재미있게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무슨 이유로 그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런 내용은 오픽에만 써먹는 내용이 아니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누구나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을 영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도 추천 방법이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로 한국을 해외에 알리긴 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특히 심한데, 이에 관해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두면 좋다. 아래 같은 대화는 내가 유럽 배낭여행때 몇 차례 경험한 평범한 일이다. 

“Hi, so… are you from China?”

“No.”

“Oh, then, Japan?”

“No but I’m from Korea, South Korea”

“Oh, Korea!!!!”

느낌표 세 개의 놀라움 뒤에는 (1) 중국, 일본을 먼저 꺼내서 살짝 미안한 마음과 (2) 이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걱정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나름의 능력이다. “동양인들이 다 비슷하게 보이는 거 이해한다. 나도 사실 네덜란드인이나 이탈리아인이나 뭐 그게 그거 같다” 등 이해한다는 식의 말도 좋고, 분위기 봐서는 한/중/일 3국을 비교하는 적당한 농담도 좋다.(수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잘못 하면 민족주의자로 욕먹거나 싸움날 수 있다)

너무 서양인들과의 대화만 가정한 것 같다. 사실 외국 나가면 동양인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 아시아권 여자들은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한다. 자아도취가 아니라 정말이다. 한국인도 모르는 드라마를 줄줄 꿰고 있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과 재밌게 대화하고 싶다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관해 알아두면 꽤 도움이 된다. 중국이나 대만 친구들은 상황에 맞는 한자를 한두 글자 써주면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들은 우리가 한자를 배운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한국에서는 당연히 한글만 쓰는 줄 아는 경우가 많다.

동양인을 만나든 서양인을 만나든, 그들과 대화하려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여행 등 누구라도 흥미로워할 만한 것들을 갖춰 보자. 대화 초반의 어색함은 이렇게 자신의 이야깃거리로 풀어야 한다. 이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나야 친밀감이 생기고, 그 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가능해진다.

[5]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1. 자원 확보

이제 실질적으로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하면서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

원활한 영어 말하기를 위해서는 다양한 문장 암기와 상황에 맞는 표현을 빠르게 선택하고 말할 수 있는 순발력,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 구성력 등 3가지가 중요하다. 우선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 선택부터 알아보자.

영어 대화에서, 상황에 맞는 표현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택 후보군 자체를 머릿속에 갖춰야 한다. 다양한 단어와 관용어 그리고 문장을 암기해 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암기를 이제부터는 ‘자원 확보’라고 부르자.

영어 회화를 학습하는 분 가운데 상당수는 교과서에서 흔히 보기 힘들었던 ‘구어, 관용어’에 신경을 쏟는 경향이 있다. ‘have it in for ~’가 ‘누군가를 싫어하다’라는 뜻이라고 확인한 뒤, 언젠가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에 ‘have it in for ~ = 싫어하다’ 이런 식으로 암기하는 경우다. 관용어 표현은 분명 중요한 학습 목표다. 하지만 영어 말하기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암기해야 할 대상은 바로 ‘문장’이다. 우리는 문장 자원을 확보해야만 한다.

많은 영어 학습자가 문장 암기를 등한시한다. 일단 이 작업이 부담스러운 게 일차 원인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입이 트이는 순간’이 오면 저절로 자기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침 일찍 회화 학원에 다니거나 영어 회화 스터디에 참여하는 등 말이다. 모두 영어 사용 환경에 자신을 많이 노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수업과 스터디 참여만으로 영어 실력을 늘리기는 무척 힘들다.

영어 말하기 환경에서 쓸 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 후보군 자체가 얼마 없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 종류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쉽게 말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만 문장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업 과제든 프레젠테이션 대회든 여러 사람 앞에서 뭔가를 발표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발표에 앞서 내용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그 발표는 알고 있는 내용을 청중에게 설명해 주거나 보여 주는 시간이 된다. 말을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머릿속에 중요한 표현과 내가 해야 할 말이 정리돼 있기에 눈앞의 사람들과 호흡하며 발표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을 때는 어떤가? 우리는 계속해서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에서 고민해야 한다. 청중들과의 교류는 당연히 뒷전이다. 혹은 미리 작성해둔 발표문에 의존해 발표를 진행하게 된다. 심한 경우 발표 시간은 발표문 ‘읽기’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발표에 앞서 내용을 숙지하듯, 영어 말하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문장을 많이 암기해야 한다. 단어 두세 개의 관용어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대화를 구성할 수 있는 ‘문장’을 많이 암기해서 머릿속에 사용 가능한 자원을 풍부하게 확보해야 한다. 이는 회화 학원 수강이나 스터디 참여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혼자서 치열하게 암기해야 하고 직접 입으로 내뱉어 봐야 한다.

이어서 읽기: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2
통합 링크: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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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2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6]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2-1. 멘털리즈 개념의 간략한 이해

그런데 문제가 있다. 영어 문장을 아무리 외운다고 해도, 우리의 사고 과정은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통해’ 이뤄진다. 통한다는 표현을 강조한 것은 ‘멘털리즈’라는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세계적 언어 인지학자 스티븐 핑커 등의 연구를 보면 사람의 생각 자체는 특정 모국어가 아니라 생각 나름의 언어로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이고, 다른 말로 ‘멘털리즈'(Mentalese)라고 한다. 멘털리즈는 모든 언어 행위에 관여하지만, 이 글에서는 말하기에만 집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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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털리즈 개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위 그림 같은 모형을 상상할 수 있다. ‘위장이 비어있다는 신호를 뇌가 보내고, 실제로 위장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상황일 때, 멘털리즈는 한국어 단어인 ‘배고프다’를 통해 현실 세계로 전달된다. “야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냐” 라는 말이 나온다.

위와 같이 한국어 회로가 튼튼한 한국인이 영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그 머릿속에서 아래와 같은 과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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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이 비어있다는 신호를 뇌가 보내고, 실제로 위장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상황일 때, 멘털리즈는 한국어 단어인 ‘배고프다’를 통해 먼저 구체화된다. 그다음에야 한국인 영어 학습자는 ‘배고프다’를 ‘I’m hungry’로 변환한다. “야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없냐”가 “Hey, I feel hungry… Have you got anything to eat?”로 전환되어 현실 세계로 전달된다.

영어 읽기 편부터 계속 주장했던 ‘한국어로 사고한다’는 말은 바로 멘털리즈가 일차적으로 한국어로 변환된다는 뜻이다. 이는 웬만큼 열심히 영어를 연습하지 않고서는 넘어서기 몹시 어려운 현상이다. 멘털리즈에서 한국어로 넘어가는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것을 아예 바꾸겠다는 것은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다.

대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림에서 빨간 화살표로 표시된 과정이다. 이 과정이 바로 한국어 화자인 우리가 영어를 바로바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큰 원인이다.

멘털리즈가 한국어를 통과한 뒤, 우리가 그 한국어에 맞는 영어 표현을 탐색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자원을 아무리 많이 확보했어도, ‘멘털리즈→한국어’ 연결이 밀착돼 있다면 영어 문장은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혹은 생각해낸 영어 문장이 겉모양만 영어지 사실상 표현 방식은 한국어의 방식일 수 있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는다고 상상해 보자. ‘낯선 사람이 내 옆에 마치 나를 안다는 듯이 다가와 앉았다. 불편하다’라는 멘털리즈가 한국어에선 “저를 아세요?”라고 표현되지만, 영어에선 “Do I know you?”라고 표현된다. 만약 한국인 영어 학습자가 영어식 표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다면, 그의 멘털리즈는 “저를 아세요?”를 거쳐 빨간 화살표를 지나 “Do you know me?”로 출력될 수 있다.

[7]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2-2. 빨간 화살표 과정을 위한 순발력을 키우고, 정교함을 더하자

멘털리즈 개념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영어 말하기 문제를 다뤘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아보자.

멘털리즈와 한국어의 밀착 관계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가 집중할 부분은 ‘한국어영어’ 과정이다. 이 부분에서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한국어 문장을 눈으로 보고 재빠르게 영어로 바꿔 말하는 훈련을 해보길 바란다. 

한국어 문장을 눈으로 읽는 것은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멘털리즈→한국어’ 변환을 대체해서 실제 대화에서처럼 말해야 할 내용을 떠올리는 과정이다. 이 훈련의 목표는 그다음 이뤄지는 ‘한국어영어’ 과정을 의도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먼저 한국어 문장을 눈으로 읽고 곧장 영어로 말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해봐야 한다. 문장 5~10개 정도를 연달아 바꿔본 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2~3번 반복한다. 그러면 자신이 만들어낸 영어 문장이 대충 머릿속에 입력된다.

이어 교재에 쓰인 ‘올바른’ 영어 문장과 비교해 보자. 아마 자신이 말했던 문장과 꽤 다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올바른 영어 문장을 암기하자. 지독하게 암기해야 한다. 반드시 소리 내 말하면서 암기해야 한다. 다시 한국어 문장으로 돌아가자. 이젠 한국어 문장을 눈으로 보자마자 올바른 영어 문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빨간 화살표 과정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한 결과다.

이 방법은 순발력과 정교함을 모두 다듬을 수 있는 학습법이다. 본인이 만들어낸 영어 문장과 올바른 영어 문장의 차이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교정하면서, 겉모양만 영어가 아닌 표현 방식도 영어다운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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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책(위쪽)과 트레이닝북 구성-편집된 이미지. (출처=알라딘)

이런 훈련을 하려면 영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이 따로 인쇄된 책이 필요하다. 다양한 교재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책 중에선 2012년 나온 ‘New English 900’ 시리즈가 이 학습법에 가장 알맞다.

표현의 정교함에 관해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하겠다.

“Do you know me?” 식의 오류는 사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칠 수 있는 문제다. 그렇게 말하는 원어민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에 사는 한국인 영어 학습자다.

아무리 원어민 회화 학원을 등록해도, 강의실을 벗어나면 우리 일상 언어는 철저하게 한국어다. “Do you know me?” 오류를 개선하기 위해선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정확하게 아는 강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이보영, 이근철, 문단열, 아이작 등이 단연 돋보인다.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한국인 영어 학습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아는 분들이다.

위의 네 명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어 지식이 해박한 미국인 강사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맞다)

무료 영어 강의를 공유하는 미국인 강사 마이클 엘리엇이다. 유튜브페이스북, 트위터에 강의를 공유한다. 영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팔로우·구독 추천한다.

이런 한국어-영어 변환 연습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래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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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털리즈가 화자의 의도에 따라 한국어 혹은 영어를 통해 현실 세계로 출력되는 모형이다. 나도 아직 위의 단계로 완벽하게 들어서지 못했다. 여전히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 나를 당황케 하고, 대체 영어로 뭐라 말해야 할지 금방 떠오르지 않아 머릿속에서 미리 문장을 만들어보고 입을 여는 경우도 많다. 괜한 겸손 아니다. 진짜다.

순발력과 정교함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8]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3. 이야기를 만드는 서사 구성력

영어 문장을 상황에 맞게 재빠르게 말해보기를 3달 이상 꾸준히 훈련하면 영어 말하기 실력이 확실히 달라진다. 그런데 이 훈련에도 한계는 있다. 웬만큼 하고 싶은 말을 신속하게 영어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영어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만한 능력이 조금 부족한 상태다.

한국어로 이뤄지는 생각의 단편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은 영어 자체로 이야기의 구조를 짜는 것과 다른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만으로 이뤄진’ 이야기 덩어리를 많이 접하고, 그 이야기 전체를 실제 소리 내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서도 다시 암기가 중요하다. 부드러운 영어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충분한 자원 확보이기 때문이다. 자원 확보 측면에서, 이제는 영어 문장 단위가 아니라 영어 이야기를 축적해야 한다.

대개 많이 떠올리는 외국 뉴스나, 이전에 영어 듣기 편에서 소개한 국내 영어방송 그리고 TED와 각종 오디오북 등 기본적이고 올바른 소재가 많다. 그런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소재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자들이다. 유튜브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Smosh부터 시작해서 Shimmy, Nigahiga, TheFineBros, Charlieissocoollike 등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제작자가 정말 많다. (스티브 잡스, 오바마가 말하는 것만 스피치가 아니다. 우리에게 쉽게 와 닿는 화법의 스피치가 유튜브에는 더 많다.)

TED에서든 유튜브에서든 마음에 드는 3~5분 분량의 영상이나 음성 자료를 선택하자. 스크립트가 없는 경우 자신이 직접 듣고 스크립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오로지 영어 공부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스크립트 혹은 자막이 준비된 자료를 고르도록 하자.

스크립트와 영상 혹은 음성 자료가 준비됐다면, 쉐도잉(따라 말하기)을 하면서 3~5분짜리 스피치를 외워 보자. 그들이 말하는 방식과 똑같이 말할 수 있도록 따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했던  /r/과 /l/, /th/, /f/, /v/ 등의 발음을 특히 주의하고, 연음/강세/억양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하도록 노력하자.

영어로만 구성된 이야기를 갖추기 위한 이런 연습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발음/연음/강세/억양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말하기 1편에서 언급한 발음 문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뉴스, TED, 유튜브 영상 속 원어민의 말하기 방식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영어 소리의 개별 발음과 연음, 강세, 억양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서 말한 발음 교정을 위한 귀납적 접근이다. 음성영어 특유의 연음과 억양은 그것만을 위해 따로 규칙을 공부하기보다, 이렇게 실제 문장을 따라 말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익히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영어 문장을 어떻게 해야 잘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세 가지 중심축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 보기 바란다. (자원 확보 필요성, ‘한국어영어’에서의 순발력과 정교함,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 구성력)

[9] 울타리 표현(hedge expressions)에 대해

‘울타리 표현’이란 대화에서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 사용을 피하려고 쓰는 각종 표현이다. 쉽게 말해 빠져나갈 구석을 미리 만들어 두는 말하기 방법이다. 우리말에서도 “돈 좀 줘”라고 말하기보다 “진짜 미안한데(1), 혹시(2) 돈 좀 빌려줄 수 있어(3)?”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언어학자 레이코프(Lakoff)의 주장을 살펴보면 영어에서 actually, almost, basically, essentially, exceptionally, for the most part, in a manner of speaking, in a real sense, in a way, kind of, largely, literally, more or less, mostly, often, particularly, pretty much, principally, rather, really, relatively, roughly, so to say, somewhat, sort of, technically, typically, very, virtually 등은 모두 울타리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대화를 원활하게 풀어가는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몇몇 울타리 표현은 괜히 자주 쓸 경우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매력적’인 것은 그런 말을 사용했을 때 마치 유창한 영어를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고,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말하는 내용을 잘 들어보면 사실 알맹이 없는 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표현은 ‘sort of(sorta)’와 ‘kind of(kinda)’, ‘like’와 ‘you know’다.

영어 회화 모임이나 학원에 가 보면, 발음도 괜찮고 나름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사실 별 내용이 없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That is ___”나 “I think that is ___” 정도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그런 분들은 굳이 이렇게 표현한다. “Well… I thought that was kind of ____.” 여기에 ‘you know’와 ‘like’를 적당히 넣어 주면 전형적인 빛 좋은 개살구 문장이 만만들어 진다. “Well… you know… I thought that was, like, kind of ____.”

다만 일상 회화에서 ‘like’의 쓰임새가 조금 특별하기에 이것에 관해서는 간략히 알아보자.

like의 구어적 용법은 세 가지다.

1. 인용 용법 – He’s like why did you do that? : 그가 “why did you do that?” 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2. 울타리 용법 – My parents like hate you. : 설명 생략

3. 구어체 보조어(청자의 관심 유도) – I’m like really struggling with this assignment. : 내가 “struggling with this assignment”했다는 사실을 강조.

사실 원어민다운 구어체 영어를 말하려면 위의 like 용법들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비격식 구어체’ 영어에 한정된다.

2000년 발표된 한 논문을 보면 위의 사례처럼 ‘like’를 자주 사용하는 화자는 긍정적 인상과 부정적 인상을 모두 풍긴다. 긍정적 인상으로는 ‘친근하다'(friendly), ‘출세한 사람 같다'(successful), ‘활발하다'(cheerful) 등이 있지만, 부정적 인상에는 ‘지적이지 않은 것 같다'(less intelligent),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 같다'(less interesting)가 대다수였다.

일상의 편안한 언어생활에서는 울타리 표현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영어를 말하는 우리는 울타리 표현을 되도록 자제하는 게 좋다. 다양한 영어 표현들 사이의 세밀한 결을 감지할 때, 그럴 때 적절히 사용해도 늦지 않는다.

[10] 마무리, 추천

작년에 썼던 글을 수정하는 작업이기에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이게 웬걸 편집하다 보니 글의 짜임이 엉성한 곳이 보이고, 맘에 들지 않는 표현도 많아 수정하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예전 블로그에선 한 게시물에 모든 내용을 담았었지만, ‘스크롤 압박’이 심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두 편으로 나눴다.

이 글에서는 발음과 대화 자체의 본질을, 그리고 한국어 화자인 우리가 영어 문장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말할 수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울타리 표현을 다뤘다. 아래는 추천하는 책 목록이다. 

·발음 교정을 위해:

듣기 편에서도 언급했던 AAT(American Accent Training)를 추천한다.

 

·우리 문화를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

『우리나라 우리문화 영어로 소개하기』(민창기/넥서스)

『PR Korea, 우리문화 영어로 표현하기 』(김경훈, 류미정, 이미림/ 원타임즈)

 

·자원 축적을 위한 교재: New English 900 외에, ‘체험 영어회화 1000장면’이라는 교재의 편집이 우리 학습 방향과 맞다. 그 외에도 서점에 나가보시면 정말 많은 교재가 있으니 서점 나들이를 한 번…

만약 한국어 문장을 모두 타이핑할 여력이 있다면, ‘이보영의 영어회화사전’을 추천하다. 내가 직접 공부해본 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어 선생님이 이 책을 항상 강력 추천하신다.

·혹시 언어학에 관심이 생겼다면:

고종석의 저서들은 비록 본격 언어학 서적이 아니지만 언어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한국어의 풍경’, ‘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세 권이 좋다. 본격 언어학 개론서로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을 추천한다.

* 이 글은 2013년 3월 31일 처음 작성됐으며, 2014년 3월 10일 1차 수정됐으며 높임말 표기가 생략됐다.

* 전체 내용은 수많은 영어학습 방법론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진리’가 아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고려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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