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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한국어 통사구조와 숙어 속 일본어 흔적

2009년쯤부터 언어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엔 (철지난) 언어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니 ‘순우리말’ 같은 관념에 골몰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된 언어’를 읽고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쓰고 있는 이 한국어라는 언어가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특히 서양의 관념과 제도, 문물이 일본어를 통해 한국에 정착한 과정에 흥미를 가장 많이 느꼈다.

오늘 또 다른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어휘 수준에서 한국어가 차용한 일본어뿐 아니라, 통사구조와 숙어 수준에서도 한국어가 받아들인 일본어 표현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아래는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에 실린 ‘조망-국어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이 같은 일본어의 흔적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면서 섞이고 스며들며 더욱 탄탄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문법 표현

[1]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그 비율 면에서는 비록 어휘 부분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지만 문법적 표현들에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사 ‘-의’의 과도한 사용 문제이며, ‘-에 있어서, -에서의, -(으)로서의’ 등과 같이 조사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일본식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음이 그러한 예문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새로운 도약에의 길/범죄와의 전쟁/앞으로의 할 일/한글만으로의 길/제 나름대로의 기준

[2]

문법 표현 중에 하나로서 접미사 ‘-적’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도 지적할 만하다. 그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접미사 ‘적’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같은 백화문(白話文) 자료에서 사용되었던 예를 제외하고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던 말이다. 이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은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그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본어와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적’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서재극(1970;95-6)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的(teki)「佛-tique, 英-tic」 -的
  중국어의 ‘底’에 해당됨. 明治初에 柳川春三이 처음으로 -tic[note]요즘은 이 ‘-tic’ 자체를 한국어 언중이 쓰고 있기도 하다. ‘-틱하다’라는 형태가 주로 쓰인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자료[/note]에다가 的이라는 字를 갖다 붙었다(科學的, 社會的, 心理的, 目的的 등). -“角川外來語辭典”에서
  ‘的’字를 쓰게 된 것은 -tic과 的이 音이 닮았다는 것으로 하여 익살맞게(우스개 삼아) 말한 것일 따름. -大規文彦의 “復軒雜錄”에서

  이 ‘-적’이 우리말에 유입되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서재극(1970;95)에서는 “상필 일본에 유학했던 자에 의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사용된 것은 1908년에 발간 “소년”지에서부터”라고 지적하고 있다.

통사 구조

[1] 출처: 새국어생활 제5권 2호(1995년 여름) ‘일본어투 문장 표현

현대 국어의 “왔다리 갔다리”외 ‘-다리’는 일본어 “行ったり來ったり”에 보이는 형태 ‘-たり’의 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의 차용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어의 언어 접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처 위와 같음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7)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8) (아이들이) 보아야 할 책이다.
(9)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숙어

[1]

애교가 넘친다-愛嬌が益れる / 달콤한 말-甘い言葉 / 숨을 죽이다-息を殺す / 종말을 고하다-終りを告げる / 어깨를 나란히 하다-肩を竝べる / 기억이 되살아나다-記憶が蘇る / 기가 막히다-氣が詰まる / 희망에 불타다-希望に燃える / 혀를 깨물다-舌をかむ / 패색이 짙다-敗色が濃い /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他の追隨を許さない / 눈을 의심하다-目を疑う / 귀를 기울이다-耳を傾ける / (국제적 마찰을) 불러일으키다-呼び起こす / (석간에) 사진이 실려 있다-寫眞がのっている / 빈축(頻蹙)을 사다-頻蹙を買う

[2] 출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옛이야기 사랑방’

⑧ 통사 층위의 관용적 비유의 차용

흥분의 도가니, 도토리 키재기, 새빨간 거짓말,
애교가 넘치다, 화를 풀다, 호감을 사다, 눈살을 찌뿌리다,
의기에 불타다, 콧대를 꺾다, 무릎을 치다, 손꼽아 기다리다,
종말을 고하다, 패색이 짙다, 낙인을 찍다, 마각을 들어내다,
종지부를 찍다, 폭력을 휘두르다, 비밀이 새다, 낯가죽이 두껍다,
손에 땀을 쥐다, 귀에 못이 박히다, 가슴에 손을 얹다, 순풍에 돛을 달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다, 이야기에 꽃이 피다, [note]일본어 원래 표현이 없기 때문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note]

 

같은 주제로 예전에 기록한 글: 부정사는 부정적이지 않다 : 한국 영문법의 일본어 흔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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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낙성대 헌책방 ‘흙서점’

취재차 신림동 근처에 갔다가, 예전에 자주 갔던 헌책방을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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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학기에 학점교류생으로 일주일에 이틀씩 서울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캠퍼스로 가는 마을버스에 타기 전 10분 정도씩 이 서점을 둘러본 적이 많았구요.

예전 글에서 언급한 ‘혼비 영문법’을 4000원에 산 곳이기도 합니다.

이날에도 영어 관련 책과 언어학 입문서를 한 권씩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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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영어의 허점과 오류’, 1991년 8월 20일 증보판으로 발행된 무척 오래된 책입니다. 그래도 내용은 꽤 튼실하고 흥미롭습니다. 이곳에서 샘플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언어-이론과 그 응용’, 대학에서 영어학 입문 강의 부교재로 처음 알게 됐던 책입니다. 당시 교수님께서 수업에 꼭 필요하진 않다고 하셔서 구입하지 않았지요. 그래도 사서 스스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항상 했던 만큼 이번 기회에 장만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막상 사긴 했지만 구입한 당일을 빼곤 제대로 들춰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 짤막한 글과 함께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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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 읽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Erin Bowman, 'Keep calm and carry on'
Erin Bowman, ‘Keep calm and carry on

영어 읽기·듣기·말하기·쓰기 각각에 관해 정리하려 한다. 한 번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생각도 다듬어질 것이고, 평소 영어 공부 방향을 묻는 친구들이 가끔 있기에 그런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기 – 듣기  – 말하기 – 쓰기[note]쓰기편은 아직 수정 중이다[/note] 순서로 전개될 이 작업의 목표는 ‘이걸 공부해라’가 아니다. 이 연재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대체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에 관해 같이 생각해보기를 제안하는 글이다. ‘해커스’, ‘시나공’, ‘토마토’, ‘그래머 인 유즈’ 가운데 무엇이 좋은지를 따지는 작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 그런 책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부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작업이다.

[1] 목표 독자와 핵심 전제

목표 독자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만 15세 이상의 한국인’이다.

이들은 영어 학습을 하면서 언제나 핵심 전제 하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한국어로 사고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며, 한국어로 세계를 인식한다. 이런 상황은 최소 10년 넘게 유지된 나의 ‘기본값’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사실은 우리가 영어를 학습하면서 꼭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언어 사용에 쓰는 시간을 돈으로 비유하자면 한국어로 의사소통해온 세월은 매몰 비용이다. 

매몰 비용은 합리적 선택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기본 사고방식은 ‘한국어의 기본값 위에 어떻게 영어의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가끔 영어 사교육계의 광고를 보다 보면 ‘아기가 언어를 습득할 때 문법을 공부하지 않는다’라며 자신들이 참된 외국어교육을 한다고 광고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아기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이다. 특정 언어의 간섭 없이 영어나 한국어라는 한 언어의 체계를 만드는 과정은, 이미 한국어 언어 체계를 단단하게 세운 한국인들이 영어라는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과 똑같을 수 없다.

그럼 위의 전제와 함께 ‘영어 읽기’에 관해 생각해보자.

[2] 영어 읽기를 위해 ‘공부’해야 할 것은?

영어 읽기를 잘하려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무조건 문법과 단어다. (‘공부’라고 특별히 강조한 것은 그 이후 필요한 과정이 더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 영어학습자들이 문법을 싫어하고, 교육 현장에는 ‘문법은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구식 영어교육의 병폐인 ‘문법 문제를 위한 문법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훌륭하다. 그러나 영어를 이해하는 데 문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문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오해를 풀어보자. 우리는 ‘한국어 문법을 배운 적이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언어 습득 원리는 아주 거칠게 나눴을 때 2가지 방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어란아이의 모국어 습득 방식인 ‘비자발적 습득’이다. 출생 직후부터 온종일 듣게 되는 말소리는 아기들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체계화된다. 모국어(제1언어) 습득 과저이 아직 100% 과학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기들이 부모 등 양육자로부터 장기간 특정 언어를 들으면서 그 언어를 자기 모국어로 습득한다는 현상 자체는 매우 자명하다.

만 3세 이상 아이들은 모국어 체계를 거의 완전히 확립하고, 그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며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은 ‘공부한다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듣기와 말하기를 배운다. 이런 과정은 학습자의 특별한 의도나 노력이 개입하지 않기에 ‘비자발적’ 습득이라 부를 수 있다.

둘째는 청소년기를 넘긴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우는 방식인 ‘자발적 습득’이다. 특히 20세가 넘은 성인들은 여러 이유로 ‘의도적 학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각종 사회활동을 하는 성인들은 (1)온종일 특정 외국어를 듣고 있을만한 여유가 없으며 (2)돈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그 외국어가 쓰이는 해외에 건너가 2~3년간 편히 살 수도 없고 (3)혹시 목표하는 외국어의 원어민들과 함께 생활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그 원어민들이 ‘부모-아이’ 관계처럼 우리에게 온종일 말을 건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세 번째 요인은 많은 사람들이 어학연수에 실패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자발적 습득’을 통해 한국어 체계를 완벽하게 익혔다. 한국어 특유의 복잡한 존댓말 체계와 다양한 어미 변화, 미세한 의미 변화는 우리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내재해 있다. 다만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가 동반되지 못했을 뿐이다. 책 한 권의 제목을 살펴보자.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지음, 이미선 옮김(홍성사)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지음, 이미선 옮김(홍성사)

한국어 대명사 ‘누구’와 ‘아무’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쓰임새가 조금 다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바로 가기) 설명을 보자.

아무(대명사):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르는 인칭 대명사. 흔히 부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하나, ‘나’, ‘라도’와 같은 조사와 함께 쓰일 때는 긍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하기도 한다.

누구(대명사): 특정한 사람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 / 가리키는 대상을 굳이 밝혀서 말하지 않을 때 쓰는 인칭 대명사.

‘누구’가 부정 의미 문장에 잘 쓰이지 않는 것과 달리 ‘아무’는 대체로 부정의 뜻을 가진 서술어와 호응하고, 특정한 경우에만 긍정 서술어와 같이 쓰인다.

이는 한국어 화자인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된 지식이다.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이 두 단어를 구별해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상을 ‘설명’할 능력도 없다. 한국어 체계를 꿰뚫고는 있지만, 그것을 사전처럼 설명해낼 ‘용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 같은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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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는 15년 넘게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그에 얽힌 미묘한 문법 규칙과 다양한 표현을 익혔다. 학술적 용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을 뿐, 우리는 한국어 문법을 평생 공부해왔으며 죽는 날까지 이는 계속될 것이다. 한국어처럼, 우리는 영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문법을 공부해야만 한다. 대신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3] 문법 공부는 어떻게?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가 ‘말이 되는 소리’가 되기 위해 어떤 규칙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겁주는 얘기 같아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앞서 말한 ‘전제’에 포함되는 분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겪었던 ‘문제 맞추기’식 문법 공부는 피해야 한다. 문제 맞추기식 공부는 필연적으로 ‘틀림’을 경험하게 되며 이는 적극적인 학습에 걸림돌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다. (1) 해당 문법 내용의 설명을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2) 관련 예문을 확실하게 암기하기.

문법 규칙을 이해하는 것은 실제 문법 학습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문법규칙 완벽 정복’은 영어학 전공자나 영어교사에게만 필요한 일이다. ‘문법 공부’의 90%를 이뤄야 하는 것은 예문 암기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이 ‘문법 공부’에서 효율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규칙 암기에만 몰두하면서 실제 규칙이 적용된 예문 암기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학습하기 가장 좋은 교재는 ‘좋은 예문’이 많은 책이다. (교재 추천은 글 말미에 덧붙임)

보통 영문법 교재에는 한 문법 규칙마다 적게는 1개부터 많게는 10개까지 예문이 제공된다. 똑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이런 예문들을 큰 소리로 10번씩 읽는 게 좋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예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암기하면 된다. 암기 지속시간은 그날 하루면 충분하다.

단, 하루면 충분하다는 조건은 이 공부를 꾸준히 할 때만이다. 꾸준히 예문 암기를 한 학습자라면 비록 암기했던 문장들이 의식적 기억에서 지워지더라도 그 흔적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영어의 기반이 단단하게 다져진다.

이렇게 문법과 연계된 예문 자원이 일정 정도를 넘어가면, 영문 읽기 과정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일정 정도’는 학습자의 기존 영어 성취도와 학습에 쏟는 시간·열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 경험상 4개월가량 매일 꾸준히 하면 자신이 느끼기에도 달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문법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4] 단어 공부가 필요한 이유

문법만큼이나 ‘어휘력’은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어떤 글을 읽을 때 한 페이지마다 모르는 단어가 10개씩 꼬박꼬박 등장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라. 그냥 짜증이 난다. 영어 글은 단어를 다 알 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계속 발목을 잡는다면 어떨까… 우선 이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단어를 많이 알아둬야 한다.

보통 제시되는 영어 읽기 팁 하나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지나쳐라’인데, 이것은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1~2개에 불과한 학습자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명심하자.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한 개나 두 개.

보통 영어로 쓰인 페이퍼백 소설은 한 쪽에 200~350개 정도의 단어가 포함된다. 한 페이지 단어 수가 200개고 한 문장이 평균 20단어라고 가정해보자. 어떤 학습자가 이 한 페이지를 읽으며 단어 10개를 모른다면, 그는 평균 한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 한 개를 마주치는 셈이다. 이 경우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지나치기’란 ‘무슨 말인지 읽으면서도 모르고 앞으로도 알게 될 가능성이 낮은’ 시간 보내기에 불과할 수 있다.

둘째, 단어를 알아야 문법 지식도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절대로 한 번에 한 단어만을 읽지 않는다. 사람의 눈은 끊임없이 초점을 조정한다. 이 과정은 부드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조정 간격이 1초라고 가정한다면, 1초마다 초점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간단한 실험을 해보면 된다. 강렬한 태양이라면 7~8초 정도, 방에 있는 전구라면 20~30초 정도 정면으로 쳐다보면 눈앞에 보랏빛 혹은 초록빛 잔상이 생긴다. 이 잔상은 우리 눈의 초점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실제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아마 ‘순간이동’ 하는 초록색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읽기’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게 계속 이뤄지는 한 번 한 번의 시선 이동에서, 우리가 명확하게 뜻을 알고 있는 단어들은 여러 개가 뭉쳐서 하나의 의미로 인식된다. ‘I love you’는 세 단어로 이뤄진 문장이 아니다. 너무나 자주 보아왔기에 그 자체로 자명한 한 덩어리의 의미단위일 뿐이다. 단어의 의미를 몰라서 초점이 멈추는 일아 발생하지 않을 때, 비로소 문법 지식은 단어들의 의미를 연결해주는 장치로 부드럽게 기능할 수 있다. 

단어 공부법은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도록 하자. (일부 영어 교육자분들께서는 다양한 근거를 들어 단어장 공부를 비판하지만, 기초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단어장을 통해 단기간에 많은 단어를 익히는 것도 때론 효과적인 방법이다)

[5] 마무리 – ‘공부’를 넘어서

읽기라는 행동은 단순히 ‘글을 읽는다’라고 규정하기엔 여러 사항이 얽힌 복잡한 과정이다. 읽기는 모국어로도 쉽게 하기 힘든 일이다. 이것을 외국어로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정확한 문법 지식과 끊임없는 단어 습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무조건 다독‘이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도 많은 사람의 고민거리일 텐데, ‘읽고 싶은 것’을 읽으면 된다. 이에 관해서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이창희 교수님의 글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전문 바로 가기)

우리의 언어생활이 외국어 환경에 얼마나 오래 드러나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 시작되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시작했고 너무 적게 노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은 딱 하나, 많이 읽는 것이다.

(…)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당장 향기 높은 문학작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좋다. 그런 데 우리의 과제는 “노출”이라는 데 착안해보자.

무슨 말인가 하면 같은 시간에 많은 페이지를 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이가 이청준이나 셰익스피어 말투부터 배우는가? 쉬운 글, 내 수준에 맞는 글이어야 하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내 취향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쉬운 글을 읽으라는 것이다. 대형서점 외국서적부에 가 보라. 다른 외국어는 모르지만 일어와 영어로 된 통속소설은 서가에서 넘쳐 복도에 쌓아놓을 지경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 얘기에 아직도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는 얘기는 문학이 아니고 “언어습득”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통속소설이 갖는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쉽게 쓰여졌다는 것, 그리고 따옴표 안에 들어간 대화체가 매우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건 그대로 “회화교재”가 될 수 있다.

끝으로 책 몇 권과 강의를 조금 추천한다.

· 정말 ‘쌩’기초부터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맞는 교재 :

‘영어기초확립'(안현필 저) :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정말 근본부터 시작하는 입문서

· 좀 알긴 아는데, 그래도 다시하번 쭉 공부해보고 싶으신 분들 :

박상효 강사의 그래머 인 유즈(Grammar in Use) 동영상 강의, 혹은 그가 쓴 ‘영문법 콘서트’ :  박상효 강사는 그래머 인 유즈 강의계에서 한때 가장 유명했던 분이다. ‘영문법 콘서트’에도 그 강의 내용이 충실히 담겼다.

· 수능 스타일이 좋으신 분들 :

이투스 김정호 강사(Tommy)를 강력 추천. 한국인으로서 문법을 공부할 때 어느 지점에 강조를 두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숨은 실력자로는 대성마이맥의 ‘유호석’ 강사가 있다. (지금 확인해보니 2006년에 비해서 정말 살을 많이 빼셨다…)[note]2014년 이 글을 쓰던 때는 몰랐으나 당시 선생님은 암 투병중이셨고, 2016년 3월 작고하셨다[/note]

· 문법 웬만큼 알고 있어서 또 문법책 공부하기는 싫으신 분들 :

1) ‘혼비 영문법'(A.S. Hornby 저, 김진만 번역) : 1980년에 출판된 오래된 책이다. 동사를 기준으로 문장의 형태를 25가지로 나누었다. 처음 볼 때는 내용도 생소하고 옛날 책이라 쭉 읽기도 불편하지만, 읽다 보면 ‘무릎을 치는’ 순간의 연속.

2) ‘굿바이 가정법'(최인호 저) : 시제와 가정법에 관해서라면 최고의 대중 영문법 교재.

· 나는 영어 잘하는데? :

이분들은 문법 교재가 아니라 ‘Usage’를 천천히 공부하면 좋다. 필자는 YBM에서 번역되어 나온 ‘실용어법사전’을 쓰고 있다. (원서명 Practical English Usage)

· 단어 확충을 위해 :

1) 기술 어휘에 관한 책은 지난번 글(바로 가기)에서 언급했다. ‘한국어 꺼라 영어가 켜진다’의 부록 ‘알파벳 에센스 느끼기’

2) 교양 어휘 확충을 위해 : ‘Word Power Made Easy’ (원서, 강주헌 번역본 모두 좋다)

3) 기술 어휘와 교양 어휘를 두루 다루며, 공부하기도 지겹지 않은 책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한호림 저)


* 이 글은 2013년 3월 1일 이전 블로그에 최초로 작성됐다. 2014년 3월2일 대폭 수정했으며 높임말 표기가 생략됐다.

* 전체 내용은 수많은 영어학습 방법론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진리’가 아니다. 글을 읽으신 분들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고려해주시기 바란다.

이어서:

영어 듣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영어 말하기를 잘하기 위해 생각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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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삼총사’의 번역 타당성, 그리고 그 쓰임새

‘삼총사’에서 ‘총사’의 뜻이 ‘총을 사용하는 병사’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새로 알게된 사실을 기념하며(?) ‘musketeers->총사’ 번역에 관한 이야기와, 현대 한국어에서 삼총사라는 단어가 쓰이는 모습에 관해 다뤄볼까 한다.

영어판 제목(The Three Musketeers)과 프랑스어 원 제목(Les Trois Mousquetaires) 모두 ‘머스켓(총기의 일종) 병사 세 명’이라는 뜻이고, 일본어와 한국어판 번역 제목도 ‘삼총사’다.

그런데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칼로 싸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런 사정에 관해 한국 위키피디아의 ‘삼총사'(바로 가기) 항목에는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우리말 뉘앙스 사전'(박영수 저)의 설명이 인용돼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칼을 잡고 싸우며 작품 속에는 머스켓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뒤마의 시대에는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병사’라는 의미로도 쓰였는데 이를 모른 일본 번역자가 오역한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머스켓이라는 단어의 뜻이 총사가 아닌 일반 병사로도 통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박영수씨가 삼총사 번역에 관해 제시한 설명이 틀린 게 아닐까 싶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Musketeers of the Guard’의 대표 인물 항목(바로 가기)에 따르면, 일단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Musketeer’가 맞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Musketeer’의 프랑스편 하위 항목(바로 가기)에 있는 이미지를 보면 그들은 언제나 총기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같은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프랑스의 Musketeers는 “1622년 루이 13세[note]루이 8세라고 잘못 썼던 부분입니다[/note]가 경기병(Light Cavalry) 중대에 머스킷을 공급하면서 창설”됐다는 설명이 있다.(They were created in 1622 when Louis XIII furnished a company of light cavalry with muskets)

그리고 “말, 총, 의복, 하인과 각종 장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머스켓과 그들 고유의 파란 옷만 국왕에게서 제공받았다”라는 말도 나온다.(These included the provision of horses, swords, clothing, a servant and equipment. Only the muskets and the distinctive blue cassock were provided by the monarch)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영어권 질답 페이지들을 검색해본 결과,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머스켓보다 주로 칼을 이용해 싸우는 것은 당시까지 머스켓이 그리 간편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참고 1, 2, 3)

프랑스 총사 방위대(Musketeers of the Guard) 소속이었을지라도, 병사들은 평소엔 총 대신 칼을 소지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머스켓은 장전도 느렸고 휴대하기에 무거운 총이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호신용 무기로는 머스켓보다 칼이 훨씬 유용했다는 말이다.

결국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당시엔 그냥 병사를 뜻했지만 그 사실을 몰라 ‘총사’라고 잘못 번역했다는 설명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믿을만한 얘기도 아닌 것 같다.

달타냥은 분명 머스켓을 지급받는 ‘총사’였다. 용어 번역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사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소설 2권 4장 ‘라로셸 포위전’에서 머스켓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번역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자.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간단한 인상이다.

‘삼총사’는 현대 한국어에서 사람 세 명이 모이면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말이 된 것 같다. 실제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삼총사의 두 번째 뜻으로 “친하게 지내는 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제시돼 있다.

일본에서 탄생한 번역어 ‘삼총사’는 한국에서 ‘총사’의 원래 의미를 거의 잃어버린 모양새다. 나만 해도 ‘총사’라는 말이 ‘총을 든 병사’라는 걸 최근에 알았으니까(나만 몰랐나?)

그냥 세 명이 몰려 다닌다면, 그들은 보통 삼총사라고 불리게 된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에서는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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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가 있고…(1991년 작)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는 하필 세 명인데다 그들이 각종 임무에 싸움까지 벌이니 미녀 ‘삼총사’가 됐고
(사실 ‘찰리의 천사들’보다 훨씬 괜찮은 제목 같다)

조선 미녀 삼총사

이런 영화 제목도 나오고…

빙속

이렇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한테도 쓰이는 말이 됐다.

또 흥미로운 건, 이렇게 세 명이 모였을 때를 설명하는 말로 ‘삼총사’가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네 명, 다섯 명이 모였을 경우에도 ‘사총사’나 ‘오총사’라는 말이 쓰인다는 사실이다.

‘총사’는 원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여러 명이 모인 경우라면 대부분 가져다 쓸 수 있는 접미사처럼 변해 버렸다.

quiz

KBS2 아침 프로그램 제목 ‘퀴즈쇼 사총사’.

오총사

한경닷컴 기사(바로 가기)

오총사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총사’ 검색 결과

검색해보면 육총사, 칠총사, 팔총사, 구총사 그리고 십총사까지도 그 쓰임새가 넓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언어 변이는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다.
나중에 이 문제에 관해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땐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사정도 좀 알아봐야겠다.

* 혹시 위에서 언급한 ‘삼총사’ 번역 문제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아는 분이 계시다면… 트위터나 이메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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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생각쓰기 – 영어에 관해 쓰자.

블로그를 만든 이유에 관해 거창하게 쓴 뒤로, 이곳에는 뭔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혹은 IT에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만 쓰는 게 좋겠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글쓰기란 곧 생각쓰기라는 평범한 진리(링크1)와, ‘멋진 글’을 쓰려는 노력은 대개 실제로 읽기 좋은 글보다는 글쓴이에게만 만족스러운 글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링크2) 마주했다.

일단 내가 아는 것들부터라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와 한국어에 관해…

예전 블로그에 썼던 영어 공부 관련 글을 조금씩 다듬어서 이곳에 올리고, 톨레레게에 올렸던 강좌들을 다듬어서 그곳에도 업로드하고 여기에도 차례로 가져올 계획이다. 그리고 몇 달째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는 한국어와 영어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공손함을 위한 문법파괴’, 한국어와 영어의 역사적 변화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언어규제 무용론 등을 차근차근 쓰고 싶다.

글의 흐름과 간결함은 놓치지 않되, 항상 기교보다는 내용에 충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