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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샤오미 바로알기 –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기업이 아니다”

모바일·사물인터넷(IoT) 비즈니스 전문 리서치업체 ‘비전모바일‘의 전략 디렉터인 마이클 바큘렌코가 지난해 12월 31일 미디엄링크드인에 올린 글입니다.

원작자인 바큘렌코의 동의를 얻어 번역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제목을 조금 바꾸고, 원문에 없는 표현과 사진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문이 링크한 영어 기사의 경우 같은 내용을 다룬 게 있다면 한국어 기사를 링크했습니다.

샤오미가 국내에서 그저 ‘스마트폰 싸게 팔아 대박난 회사’ 정도로 통하는 상황에서 많은 분과 이 내용을 나누고 싶어 번역했습니다. 글 하단에는 더 읽어볼 만한 글을 첨부했습니다.


 

xiaomi 샤오미

“오직 팬들을 위해”(Only for fans)[note]샤오미의 영문 공식 슬로건은 ‘Just for fans‘이다. 원 저자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제목에서만 Only를 쓴 것 같다).[/note], 샤오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기업이 아니다. 

 

샤오미는 지난해 자금조달에서 11억달러(한화 약 1조2075억원)를 유치하고 기업가치 450억달러(한화 약 49조4000억원)를 인정받으면서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올라섰다.

이에 관해 ‘리/코드'(Re/Code)가 작성한 기사는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보여준다.

이유는 분명하다: 신속한 혁신과 우수한 소프트웨어에 집중한 덕에 샤오미는 세계 3위의 단말기 제조업체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재무보고서를 보면 샤오미의 수익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13년 순익은 5600만달러(한화 약 60억4500만원)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은 샤오미라는 기업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투자자들은 낮은 마진에 저렴한 스마트폰을 판매한다는 것 이상의 미래가 샤오미라는 기업에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샤오미와 삼성전자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애플과 오렌지(이동통신기업)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두 기업은 어쩌다 보니 같은 산업분야에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따르고 있다. 애플과 삼성, 화웨이와 레노버에게 단말기는 곧 수익의 원천이다. 샤오미가 단말기를 판매하는 이유는 다르다. 이들이 스마트폰을 파는 것은 모바일이라는 분야를 초월해, 치열한 전자상거래 시장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다.

샤오미라는 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이들의 슬로건인 “그저 팬들을 위해”(Just for fans)다. 샤오미는 인터넷 시대의 마케팅 활용과 단말기 온라인 판매를 통해 열성적 ‘팬’ 커뮤니티를 키워냈다. 팬들은 매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받고, 신제품 기능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할 기회를 얻고, 웨이보와 위챗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빈번하게 각종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플러리‘는 샤오미 이용자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쓴다고 발표했다.

(Flurry.com)
(Flurry.com)

평균적으로 샤오미 이용자들은 애플 이용자들보다 7% 이상의 시간을 스마트폰 앱에 쓴다

샤오미의 ‘팬’ 커뮤니티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 한 해 동안 스마트폰 판매량이 60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 판매목표는 1억대로 잡고 있다.[note]지난해 쓴 글이라 이렇다. 실제로 샤오미는 2014년에 스마트폰을 6110만대 팔았다[/note]

나는 샤오미를 3년 전쯤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이 회사는 막 기반을 다져나가는 단말기 제조사였다. 분명한 것은 그때도 샤오미가 단순한 저가 스마트폰 제조사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비전모바일은 지난 2012년 8월 ‘샤오미 부족'(The XiaomiTtribe)이라는 보고서에서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마케팅의 목적이 관심 없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억지로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마케팅의 진짜 목적은 특정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의 대표로 우뚝 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세스 고딘은 이러한 집단을 ‘부족'(tribe)[note]관련 TED 강연 바로가기[/note]이라고 불렀다. 일단 한 부족을 이끌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한테 기념품을 판매해도 된다고 당신에게 허락해줄 것이다.

스마트폰은 샤오미가 거대한 팬 커뮤니티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결과적으로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오늘날 샤오미는 중국 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중 한 곳으로 성장하고 있다. 해리 맥크라켄은 얼마 전 이런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번역문과 링크로 대신함)

샤오미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연간 거래액은 100억달러(한화 10조7750억원)에 이른다. 다루는 물건은 1000 종류에 달한다.

해리 맥크라켄(@harrymccracken), 2014년 10월 28일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넘어 자사 제품 라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100개의 전문 하드웨어 제조사에 투자하고 브랜드 제휴로 만든 “기념품”을 열성적인 팬들에게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위해 와이파이 라우터스마트TV셋톱박스웹캠전구공기청정기에다 전원 플러그까지 갖췄다. 미 피트니스 밴드헤드폰혈압측정계 등 웨어러블과 건강 기기는 기본이다. 지난 2014년 12월 샤오미는 중국 가전제품 제조사 메이디 그룹에 2억300만달러(한화 약 2187억원)를 투자했다.

또한 지난 2014년 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담당부서를 신설했으며 앞으로 비디오콘텐츠 제작에 10억달러(한화 약 1조775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기업용 서비스 진출과 개발 생태계 구축의 신호로 볼 수 있는 움직임으로서, 샤오미는 킹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에 10억달러(한화 약 1조775억원)를 향후 3~5년에 걸쳐 투자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 감을 잡기 부족하다면 해줄 얘기가 더 있다. 샤오미는 2014년 9월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의 가상이동통신망(MVNO)[note]한국에선 ‘알뜰폰사업자’라는 용어가 정착했다[/note] 사업자 허가까지 따냈다.

샤오미 투자자 유리 밀너는 샤오미의 기업가치가 지금의 두배 이상, 최대 1000억달러(한화 약 107조75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note]인용문이 있는 부분이라 영어 기사를 링크했지만 이투데이가 같은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있어 링크한다.[/note] 페이스북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샤오미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샤오미의 진정한 기회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샤오미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는 상당히 많다.

‘샤오미 부족’ 보고서를 작성한 지 2년 반이 흐른 지금, 샤오미를 단순한 스마트폰 회사로 바라보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시선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샤오미는 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운용하고 있다. 2013년 8월 비전모바일 블로그에서 설명했듯 그 비즈니스모델에서 스마트폰은 수익을 내기 위한 상품이라기보다 유통 채널일 뿐이다.

얼마 전 벤 에반스는 ‘모바일, 다음 질문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아이폰 대 안드로이드’라는 상식적인 논쟁 이후의 지점을 바라봤다. 샤오미는 이 같은 “다음 질문” 가운데 몇 가지에 해답을 내놓고 있다. 또한 “모바일”을 타고 어떻게 다른 산업분야에서 경쟁력 있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업이다.

– 마이클

 

덧붙임1. (2015년 1월 5일)

레이 쥔 샤오미 CEO가 스마트폰 판매량(6112만대)과 매출(119억달러=한화 약 12조8222억원)에 관한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 해당 글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 팬 여러분, 아주 좋은 소식 하나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영어 번역본 바로가기.

 

덧붙임2. (2015년 1월 15일)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할 더 많은 증거다. 벤 톰슨이 샤오미 행사에서 라이브 리포팅한 내용이다.

(@monkbent)
(@monkbent)

<더 읽어볼 글>

XIAOMI’S AMBITION (stratechery) → 우마노 듣기도 가능합니다.
영어라는 제약점이 있습니다만 위 내용을 더욱 자세하고 심층적으로 보충해주는 글입니다. 강력추천.

샤오미, 안드로이드 그리고 불교 경전을 읊는 해커의 야망 (슬로우뉴스)
사업 측면에 관한 글이 아니라, 샤오미라는 회사가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점을 알려주는 글입니다. 역시 강력추천.

샤오미 ‘돌풍’의 빛과 그림자 (시사인)

샤오미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정보 (얼리어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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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항상 “바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미국 뉴욕에서 젊은 직장인과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명상을 서비스하는 기업 ‘패스'(The Path)의 설립자 디나 카플란(Dina Kaplan)이 지난 2014년 11월 미디엄에 올린 글입니다.

원작자인 카플란의 동의를 구해 번역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수 있도록 제목을 바꾸고, 원문에 없는 표현과 사진을 추가하고 문단 구성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최근 어느 점심식사 자리에서 친구 한 명이 한탄을 했다. “너무 바빠서” 뭔가를 차분히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볍게 웃었다.

점심 자리는 1시간 30분 정도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는 며칠 후 있을 저녁 모임의 메뉴를 고르느라 근처 레스토랑 쪽에 잠시 들렀다. 그러고 나서 친구는 어느 컨퍼런스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다. 계획에 없던 참석이었다. 아참, 그는 꽤 잘나가는 사업가다. 자기 사무실에 돌아갔을 때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점심을 먹겠다고 사무실을 나선 지 4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이날 그는 하루 일정을 꽉 채워 소화했다. 그는 바빴다. 하지만 이 친구가 바빴던 것은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데 따른 결과였다. 뭔가를 읽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읽지 않기’였을 뿐이었다.

매일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관해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이런 선택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본인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 미리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어린 자녀가 있다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라면, 오늘 내가 말하려는 내용은 당신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로 바쁜 것이다.

반면, 내가 아는 여러 사업가와 직장인들이 자신이 바라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바쁘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진정으로 자기 삶에서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들이라면 말이다.

id-iom, Busy being lazy, CC BY-NC 2.0
id-iom, ‘Busy being lazy'(CC BY-NC 2.0)

그러나 “바쁘다”는 것은 어느새 우리가 늘상 하는 말이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일에 대한 합당한 변명이 되어버렸다. 인정할 만한, 때로는 자랑까지 할 만한 이유인 것이다. 점심식사를 함께한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불교승 소걀 린포체가 설파한 개념인 ‘분주한 게으름’(Active Laziness)을 떠올렸다.[note]링크 페이지의 1월 4일 내용. 출판 번역본이 active를 ‘활동하는’으로 썼지만 나는 ‘분주한’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원문에서 디나 카플란은 영어 콘텐츠를 링크했지만, 마침 같은 내용의 한국어 포스팅이 있어 그것으로 링크했다. [/note]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쌓아두고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린포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사실 ‘무책임감’이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나는 이 ‘무책임감’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점심식사에 참석해 1시간 30분씩 허비했다. 중요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와 이사회에 참석해 수백여 시간을 낭비했다. 뭔가를 ‘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느라, 무엇을 하고 그것을 왜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떤 해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직원 수십 명의 의료보험 등록 서류를 직접 작성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제대로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지 못해서였다.

지금 되돌아보니 분명히 보인다. 당시 나는 생각을 요구하고 전략이 필요한 일에 내 힘을 쏟기 보다, 시덥지 않은 일에 몰두하면서 나 자신을 “너무 바쁘게” 몰아갔다. 이런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 있다. ‘잡일’. 난 그저 잡일을 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이게 과연 자랑할만한 일일까?

이젠 ‘바쁘다’는 말에 대한 찬양을 멈출 때다.

바쁘다는 것은 삶의 기본 양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온갖 알림에 혹한다. 마치 어딘가에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당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도파민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진이 빠지게 하고 무척이나 공허한 일이다. ‘바쁨’의 매력은 위험하다. 당신 삶의 기본값이 ‘바쁨’이라면,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가다듬고 내면의 진정한 감정을 알아차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만일 모든 것이 ‘선택’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시간을 쓰고, 누구에게 대답하고,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조금 글을 쓸지 모두 선택을 한다면? 하루 목표 달성과 그저 다른 사람의 요구 들어주기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한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줄 알게 된다면, 그것도 꽤 자주 그렇게 할 줄 알게 된다면?

타인의 부탁을 받게 되면 자존심이 올라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만약 이런 종류의 ‘인정’을 필요로 하거나 그런 욕구를 느끼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대신, 시간과 여유를 따로 떼어내 어떻게든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쁘지 않게’ 계속 유지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바쁨’과 ‘생산성’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리 브래프먼이 ‘카오스 명령'(The Chaos Imperative)에서 말했다시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부터 게임 동키 콩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위대한 발명들은 사실 자기 삶에서 공백을 확보한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당신이 아는 가장 잘나가는 사람한테, 아니, 엘론 머스크나 셰릴 샌드버그, 워런 버핏한테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봤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그 정도 ‘급’이 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바쁘죠.” 대다수 사람의 눈에 그들은 바쁘게만 보인다. 항상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도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들이 하는 일에서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들은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자신의 통제권 아래에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둘째, 그들은 실제로 그런 통제권을 갖고 있다. 훌륭한 직원을 고용하고 심혈을 기울여 업무를 조율한 뒤, 자신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만 시간을 쓴다. 따라서 노력해볼 만한 것 아닌가?

“바쁘다”는 말은 일종의 자백이 되어야 한다. 자랑거리여선 안 된다.

소걀 린포체 같은 불교승에게 ‘바쁨’이란 곧 ‘게으름’이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떤 버릇을 고칠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에 본인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지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업무처리 속도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분산할지에 관해 투명해지고, 핵심이 아닌 것들에 “아니요”라고 말할 만큼 자신감을 갖춘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아마 매일 합리적인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당신은 편안하고 전략적이며, 동시에 꼼꼼해진 기분을 느낄 것이다. 허둥지둥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삶이다.

당신이 어느 회사 혹은 부서의 책임자라면, 업무 과정이 덜 바빠지도록 고민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처사다. 아마 의사소통을 효율화하거나 이메일 전송이 가능한 시간 정해두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더 오랜 시간 일하기보다, 합리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 바쁘다고 말하는 것, 좋다. 그런데 만약 ‘바쁨’이라는 게 언덕길을 겨우겨우 올라가는 소형차와 같은 의미라면? ‘좋다’는 게 지하철역 계단에서 유모차 끌어올리는 걸 도와주는 정도라면? 혹은 그저 책 한 권을 읽는 것이라면?

나는 명상을 무척 즐겨 한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묻는다 “운동은 좀 하시나요?”

“그럼요.”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1시간짜리 스피닝 수업에 일주일에 3번씩 참여한다면, 샤워 시간과 이동 시간까지 합해 4시간은 더 들어가는 셈이다. 만약 하루 정도는 수업 대신 야외에서 실제 자전거를 30분가량 탄다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30분의 명상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른 게 아니라 결정의 문제다. 명상 대신 스피닝 수업에 참여하기는 곧 정신적 운동보다 신체적 운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다. 괜찮다. 이건 능동적 결정이다.

늘상 “바쁘다”고 말하는 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자. 하루 동안 모든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자. 모든 일들을 ‘선택’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혹은 하지 않아도 되거나 늘상 하는 습관인지 적극적으로 ‘결정’하자.

다음 단계로, “바쁘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자. 그러고 나서, 그날 해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 뒤 그것을 행동에 옮기자. 시간과 에너지를 당신이 진정 원하는 곳에 쓰자는 것이다.

다들 명상을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온갖 것들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

뭔가를 읽고 싶다면, 우선 이번 주에 하루 5분씩 시간을 확보해 보자. 다음 주엔 10분을 확보하자.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하면 되지만, 반드시 실제로 실행해야만 한다. 아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당신이 삶의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본다면, “바쁘다”가 아니라 “아주 좋다”고 대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잠시 멈춰서는 미소를 지어 보일 수도 있다. 당신에겐 따로 떼어낼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계획한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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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단어씩 혹은 하루에 1초씩

어느 사이트에서 발견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아래 영상을 보게 됐다. 캐나다에 사는 벤 슈미트(Ben Schmidt)라는 청년이 매일 ‘한 단어’씩 한 영상을 이어붙인 것인데, 화질은 그저 그렇지만 연출이나 대사나 꽤 흥미로웠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지난 2013년 2월 덴마크 오덴세에 교환학생으로 머물던 때 비슷한 TED 강연을 본 적이 있었다.

‘하루에 1초'(One second every day)라는 영상 프로젝트를 만든 케사르 쿠리야마(Cesar Kuriyama)의 강연으로, 위의 영상과 달리 하루 중 아무 순간이나 촬영한 뒤 그중 1초씩 잘라 이어붙인 것이다. (물론 기억에 남는 순간을 촬영했겠지만)

<TED강연_한글자막>
[ted id=1663 lang=ko]

<풀버전>

흥미가 생긴 김에 유튜브 검색을 조금 더 해봤다. 쿠리야마는 저 TED강연 이후에도 꾸준히 같은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제작한 ‘하루에 1초’ 영상들을 재생 목록으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쿠리야마의 '하루에 1초'(1 Second every day) 재생목록
쿠리야마의 ‘하루에 1초'(1 Second every day) 재생목록

관심이 생긴 분이라면 그의 유튜브 페이지를 방문해 보시길 🙂

삶의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매력적인 일이다. 그것이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영상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두 편을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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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역사 – 개방의 아이콘, 영어

 

일단 영어는 ‘게르만계'(German) 언어다. 영어는 독일어와 출생의 비밀(!)을 공유한다. 역사언어학 자료를 보다 보면 고대~중세 독일 지방에서 쓰였던 언어와 당시 영국 땅에서 쓰였던 언어를 비교하는 자료를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현대 독일어와 현대 영어는 같은 뿌리(고대 게르만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족과 색슨족은 머나먼 섬나라(켈트족이 살던 브리튼 섬)를 침략했다. 브리튼 섬은 본래 로마의 지배 덕분에 외부 침략을 막을 수 있었지만, 410년 로마군 철수 이후 게르만족의 침략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6세기쯤 브리튼 섬은 사실상 앵글로-색슨족의 터전이 됐다. 그들의 언어는 자연스럽게 유럽 대륙의 고대 게르만어와 달라졌다. ‘고대 영어’의 시작이다.

한편 브리튼 섬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이름(앵글로)에서 유래한 지명 ‘잉글랜드’까지 쓰기 시작했지만, 앵글로-색슨족도 계속 외부 영향을 받았다. 언어도 마찬가지였다. 영어는 크게 세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브리튼 섬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켈트어’, 로마 지배 흔적이자 597년 잉글랜드의 기독교 개종 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라틴어’,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지속된 바이킹 침략으로 유입된 ‘스칸디나비아어’다.

특히 라틴어와 스칸디나비아어의 영향이 중요했다. 라틴어는 유럽 문명권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고, 스칸디나비아어의 경우 잉글랜드가 덴마크 왕 크누트의 지배를 받기까지 했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로마 지배 시기와 관련해 잘못 서술됐던 내용이 수정됨 )

한편 가장 중요한 침략은 1066년 일어났다. 그 해 프랑스 지역의 한 공국(그땐 프랑스라는 단일국가의 개념도 모호했고, 프랑스 왕이라는 지위보다 각 공국의 왕이나 지방 영주들의 힘이 더 강했다)이었던 노르망디 공국이 잉글랜드 영토를 점령한 것이다. 이것을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고 부른다. 이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는 잉글랜드 영토와 노르망디 영토를 동시에 지배했다.

노르만 정복과 함께 잉글랜드 땅에는 프랑스어가 침투했다. 공국이니 뭐니 해도 어쨌든 노르망디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었으니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영어는 ‘프랑스어’를 대거 받아들였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언어가 겪은 일과 유사) 또한 프랑스어를 타고 들어온 라틴어를 다시 한 번 흡수하게 됐다.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천민의 언어’로 구박 받았지만(당시 영국 지배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영어는 하층민의 언어였다), 소멸하지는 않았다. 이는 13세기 초 잉글랜드 왕실이 프랑스 왕실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노르망디 영토를 잃어버린 것과 130여년 후 일어난 백년전쟁으로 ‘反프랑스 정서’ & ‘영국인이라는 자의식’이 생겨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겨우 제 정체성을 지켜낸 영어는 14세기 영문학의 아버지 초서와 16세기 셰익스피어의 재능에 힘입어 당당하게 단일 언어로 자리 잡았다.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영어로 문학 작품을 쓰던 당시, 영어는 결코 세련된 언어가 아니었다. 사실 영국 자체가 16세기 이전까지는 ‘변방의 섬나라’ 취급을 받는 삼류 국가였다.

초서와 셰익스피어는 모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기 위해 당시 일류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대학 시절 공부에 조금 게을렀던 터라 초서와 셰익스피어가 각각 이탈리아/프랑스에서 정확히 어떤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까지는 확실히 말하기가 힘들다. 다만 지금도 초서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문학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가 희곡 외에도 재능을 발휘했던 ‘소네트'(sonnet)는 장르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 ‘소네토'(sonetto)에서 왔다는 점만 밝혀두겠다.

게다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였다. 14세기 이후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꾸준히 접했고 그 과정에서 라틴어의 흔적도 계속 받아들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 세워지기 시작한 영국 ‘대학’ 등에서는 고전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학술적인 이유로 직접 수입하고 있었다. 

이렇듯 단일 언어라고 명함을 겨우 내밀 수 있게 되기까지 다른 언어의 영향(주로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영어는 제 힘이 강력해진 뒤에도 다른 나라 말을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국 땅으로 건너간 영어는 원주민 언어를 대거 차용했고, 호주 땅에 스며든 영어는 역시 그곳 원주민들의 말을 상당수 흡수했다. 물론 그곳에서 영어가 원주민의 언어를 거의 말살했다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만, 영어가 그 언어들의 어휘를 차용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영어는 외국어를 받아들였던 개방성만큼이나 자기 언어가 변하는 데 무심(?)했다. 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이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같이 자국 언어를 보호하면서 ‘바르고 고운말’을 권장하고, 동시에 그 힘이 상당한 국가적 언어 규범 기관이 영어권 국가엔 별로 없다. 다만 영국인과 미국인은 대중의 언어 습관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18세기 영국에선 사무엘 존슨의 사전이, 19세기 미국에선 노아 웹스터의 사전이 탄생했다.

그리고 영어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단어를 흡수하는 중이다. 영어는 무한증식하는 개방형 언어의 표본이다.

이상 평범한 영문학 학부생이 기억과 간단한 검색에 의존해서 쓴 영어의 역사다.  아무튼 위와 같은 역사를 지나온 결과 영어 어휘는 아래 그래프가 보이듯 다양한 출신 성분을 갖게 됐다.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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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혜화, 동대문

거의 1년여 만에 혜화역을 지나 동대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학교 다니던 시절 집에 가던 방향.

정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많지 않지만 괜히 아련한 감정만 마음속에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2년을 꼬박, 그리고 3년 걸러 1년을 다시 꼬박, 1년 걸러 한달 지나다녔던 이 통로.

사실 뒷쪽 시기는 그 앞 시기보다 현재와 가깝지만서도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 내 마음을 울리는 건 저기 멀리 떨어져있는 2007년과 2008년.

흔히 과거를 회상할 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뭔가 되고 싶은게 많거나 꿈이 크다거나… 그러진 않았었다. 그때도 나는 이틀 사흘에 한번씩 꼬박꼬박 술을 마시다 열두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갔고, 집에 가서도 굳이 컴퓨터를 켜서는 네이트온에서 새벽 두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저 그런 대학생이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땐 뭔가 마음 속 뜨거움이 있었던 것 같다. 큰 꿈은 없었지만서도, 그냥 막연히 뭔가 따뜻한 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개는 그저 즐거움이었고, 가끔은 행복함이었다. 어떤 때는 설렘이었고, 때로는 실망이었다. 연민과 동정심이 따뜻하게 자리할 때도 있었고 분노가 타오를 때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땐 나이드는 것, 삶을 설계하는 것, 나라는 인간의 정체를 찾아가는 것에서 아주 잠깐 면제되는 특권을 즐기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나름의 걱정과 나름의 혼란을 겪고는 있었다만 지금 대면하고 있는 것들에 비하면 깃털같은 무게감의 문제들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혜화역과 동대문역을 지나니까 괜히 그때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