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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관해

‘삼총사’의 번역 타당성, 그리고 그 쓰임새

‘삼총사’에서 ‘총사’의 뜻이 ‘총을 사용하는 병사’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새로 알게된 사실을 기념하며(?) ‘musketeers->총사’ 번역에 관한 이야기와, 현대 한국어에서 삼총사라는 단어가 쓰이는 모습에 관해 다뤄볼까 한다.

영어판 제목(The Three Musketeers)과 프랑스어 원 제목(Les Trois Mousquetaires) 모두 ‘머스켓(총기의 일종) 병사 세 명’이라는 뜻이고, 일본어와 한국어판 번역 제목도 ‘삼총사’다.

그런데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칼로 싸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런 사정에 관해 한국 위키피디아의 ‘삼총사'(바로 가기) 항목에는 ‘유래를 알면 헷갈리지 않는 우리말 뉘앙스 사전'(박영수 저)의 설명이 인용돼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칼을 잡고 싸우며 작품 속에는 머스켓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뒤마의 시대에는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병사’라는 의미로도 쓰였는데 이를 모른 일본 번역자가 오역한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머스켓이라는 단어의 뜻이 총사가 아닌 일반 병사로도 통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박영수씨가 삼총사 번역에 관해 제시한 설명이 틀린 게 아닐까 싶다.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 ‘Musketeers of the Guard’의 대표 인물 항목(바로 가기)에 따르면, 일단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Musketeer’가 맞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Musketeer’의 프랑스편 하위 항목(바로 가기)에 있는 이미지를 보면 그들은 언제나 총기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같은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프랑스의 Musketeers는 “1622년 루이 13세[note]루이 8세라고 잘못 썼던 부분입니다[/note]가 경기병(Light Cavalry) 중대에 머스킷을 공급하면서 창설”됐다는 설명이 있다.(They were created in 1622 when Louis XIII furnished a company of light cavalry with muskets)

그리고 “말, 총, 의복, 하인과 각종 장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머스켓과 그들 고유의 파란 옷만 국왕에게서 제공받았다”라는 말도 나온다.(These included the provision of horses, swords, clothing, a servant and equipment. Only the muskets and the distinctive blue cassock were provided by the monarch)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위키미디아 커먼스, (CC BY 2.0)

영어권 질답 페이지들을 검색해본 결과,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머스켓보다 주로 칼을 이용해 싸우는 것은 당시까지 머스켓이 그리 간편한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참고 1, 2, 3)

프랑스 총사 방위대(Musketeers of the Guard) 소속이었을지라도, 병사들은 평소엔 총 대신 칼을 소지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머스켓은 장전도 느렸고 휴대하기에 무거운 총이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호신용 무기로는 머스켓보다 칼이 훨씬 유용했다는 말이다.

결국 ‘머스켓’이라는 단어가 당시엔 그냥 병사를 뜻했지만 그 사실을 몰라 ‘총사’라고 잘못 번역했다는 설명은,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믿을만한 얘기도 아닌 것 같다.

달타냥은 분명 머스켓을 지급받는 ‘총사’였다. 용어 번역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사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소설 2권 4장 ‘라로셸 포위전’에서 머스켓을 들고 싸우기도 한다.


번역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자.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간단한 인상이다.

‘삼총사’는 현대 한국어에서 사람 세 명이 모이면 어디에나 쓸 수 있는 말이 된 것 같다. 실제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삼총사의 두 번째 뜻으로 “친하게 지내는 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제시돼 있다.

일본에서 탄생한 번역어 ‘삼총사’는 한국에서 ‘총사’의 원래 의미를 거의 잃어버린 모양새다. 나만 해도 ‘총사’라는 말이 ‘총을 든 병사’라는 걸 최근에 알았으니까(나만 몰랐나?)

그냥 세 명이 몰려 다닌다면, 그들은 보통 삼총사라고 불리게 된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에서는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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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가 있고…(1991년 작)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는 하필 세 명인데다 그들이 각종 임무에 싸움까지 벌이니 미녀 ‘삼총사’가 됐고
(사실 ‘찰리의 천사들’보다 훨씬 괜찮은 제목 같다)

조선 미녀 삼총사

이런 영화 제목도 나오고…

빙속

이렇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한테도 쓰이는 말이 됐다.

또 흥미로운 건, 이렇게 세 명이 모였을 때를 설명하는 말로 ‘삼총사’가 워낙 많이 쓰이다 보니 네 명, 다섯 명이 모였을 경우에도 ‘사총사’나 ‘오총사’라는 말이 쓰인다는 사실이다.

‘총사’는 원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여러 명이 모인 경우라면 대부분 가져다 쓸 수 있는 접미사처럼 변해 버렸다.

quiz

KBS2 아침 프로그램 제목 ‘퀴즈쇼 사총사’.

오총사

한경닷컴 기사(바로 가기)

오총사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총사’ 검색 결과

검색해보면 육총사, 칠총사, 팔총사, 구총사 그리고 십총사까지도 그 쓰임새가 넓어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언어 변이는 정말 흥미로운 현상이다.
나중에 이 문제에 관해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땐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사정도 좀 알아봐야겠다.

* 혹시 위에서 언급한 ‘삼총사’ 번역 문제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아는 분이 계시다면… 트위터나 이메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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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위해 알아야 할 영단어의 4가지 결

*이 글은 가독성이 더 좋은 편집으로 슬로우뉴스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 ‘완벽한 공부법‘의 13장에도 포함되었으나, 해당 책의 영어 파트에 참여한 것은 2019년 현재의 저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급적 슬로우뉴스에서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영어는 전 세계 언어 가운데 어휘를 가장 많이 보유한 언어이다. 이번 포스팅은 그러한 영어의 특성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영어 학습자인 우리가 ‘말하기'(혹은 스피킹 혹은 프리 토킹)를 제대로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각종 영어 시험에서는 고득점을 올리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대화를 원활하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 영어의 역사 – 개방의 아이콘, 영어

이전에 작성했던 글에서 역사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는 판단이 들어, 역사 부분을 대폭 축소하고 원본을 다른 글로 옮겼다. (바로 가기)

영어는 발달과정에서 많은 어휘를 받아들여 ‘포섭’했다. 앵글로 색슨족의 고대 게르만어에서 시작한 영어는 브리튼섬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의 ‘켈트어’,  로마 지배 흔적이자 597년 잉글랜드의 기독교 개종 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라틴어’,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반 지속된 바이킹 침략으로 유입된 ‘스칸디나비아어’, 그리고 11세기 발생한 ‘노르만 정복’ 이후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영제국 시기의 영국 정부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들에 대해 정책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도 영어 어휘가 풍성해지는 데 한 몫을 했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의 국제 질서에서 사실상 가장 광범위한 공용어로서, 영어는 전 세계 언어들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그러한 언어들로부터 쉬지 않고 단어들을 흡수하고 있다.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영어 어휘의 출신 언어/국가별 분포도, wikimedia commons

[2] 영어의 ‘잡스러움’을 대하는 어휘책/대다수 영어 교육자들의 자세

그런데  이런 영어의 ‘잡스러움’을 두고 우리나라 시중 어휘 교재들과 국내 영어 공부 담론이 제시하는 대응책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

절대 다수의 어휘집과 영어 교육자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출신 단어들을 강조한다. 라틴어 기반 단어가 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분들은 ‘어근’과 ‘접사’를 떠올려 보시라. 어근과 접사로 분리가 가능한 단어는 십중팔구 라틴어 기반 단어다.  우리가 ‘시험’을 위해 암기한 대부분의 단어는 라틴어에 기반을 둔 단어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출신 성분을 수치로 봐도 ‘영어 시험’의 고득점을 위해서는 그런 단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이건 당연한 전략이다. 

그런데… 라틴어 출신 단어를 중점적으로 학습하는 이 전략은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 정말 필요한 단어를 놓치게 하는 심각한 원인이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분들은 아래 설명에 집중하시길 부탁한다.

[3] 영어 단어를 나누는 새로운 틀

이제부터 영어 단어의 종류를 나누는 틀을 하나 더 제시할까 한다. 내 독창적인 분류는 절대 아니다. 신촌 한겨레교욕문화센터에서 ‘레토리컬 라이팅'(번역/외국어->Rhetorical Writing)을 강의하시는 라성일 선생님에게서 배운 내용이다. (바로 가기)

영어 단어는 대략 4가지 층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4가지 분류는 영어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어에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1. 태어나서 유아기에 습득하는, 생존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 어휘’

– go, come, have 등이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 교육받더라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면 거의 익히게 된다.

2. 아동-청소년기를 거치며 습득하는,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기술(descriptive) 어휘’

– spurn, befuddled, itchy 등이 있다.

– 영미권 화자들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이 단어들을 습득한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단어는 바로 이 단어들. “너 어제 고백했는데 차였다며?”, “어제 폭탄주 왕창 마셨다가 완전 뻗었어”, “일본 여행 갈 생각에 벌써 발이 근질근질하다” 등의 말들을 하기 위한 단어가 바로 기술 어휘이다.

– 이런 단어들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출신이 아니라 고대 게르만어에 뿌리를 두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경우가 절대다수. 우리말의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다. ‘오늘’과 ‘금일(今日)’은 사전적으로 동의어지만, 일상 대화에서 훨씬 자연스러운 단어는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오늘’이다.

3. 지성을 갖춘 개인으로서, 수준 있는 글을 읽거나 쓸 때 혹은 진지한 토론을 할 때 꼭 필요한 ‘교양 어휘’

– conform, disambiguation, federation 등이 있다.

– 대체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간직하고 있는 단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고교 영단어집으로 유명한 능률 보카 어원편이 바로 이러한 어휘들을 수록한 교재다. 능률 보카뿐 아니라 시중 대부분의 영단어 교재들은 바로 이 교양 어휘를 표제어로 삼는다.

– 영미권 화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이 어휘들의 빈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이 역시 한국어의 상황과 유사하다. 우리의 평소 대화를 잘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대화에서 “엄격한 규칙을 준수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명확성을 보장하는 언어사용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과의 연합을 구성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대중적인 소설에도 저런 문장들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4. 각종 전문 분야에서 (혹은 오로지 해당 분야에서만) 쓰이는 ‘전문 어휘’

– hexameter, chiasmus, parallel 등이 있다.

– 내 전공인 영문학과 영어 문체에 관한 단어들이다. 전문 어휘 층은, 해당 분야 구성원이 아닐 경우는 알 필요조차 없는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혹은 평범한 단어지만 해당 분야에서만 특별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parallel의 경우, 대체로 ‘평행’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문체 분야에서는 ‘문장 구조의 의도적인 반복을 통해 길고 복잡한 내용의 원활한 전달을 달성한 글쓰기 기법’을 두고 parallel이라 지칭한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로서 토익 RC 450을 받아도 영어 소설은 버겁고, LC 450을 넘어도 미드는 안 들리고, 그 외 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려도 말하기(혹은 스피킹 혹은 프리토킹)이 여의치 않은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단어들의 성격 차이이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 대부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며 기본 어휘를 습득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해 ‘교육에 적합하도록 선별된’ 지문을 읽으며 영어 공부를 계속한다. 이러한 지문들은 대부분 약간의 기본 어휘와 다수의 교양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토익을 공부하느라 또 다른 교양 어휘와 약간의 비즈니스 분야 전문 어휘를 익히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영어공부 과정만을 소화한 평범한 한국인에게, 영미권의 대중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그들의 일상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기술 어휘’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 교양 어휘만을 공부해온 학습자라면, 듣도 보도 못한 기술 어휘가 대량으로 사용되는 보통의 영어 소설과 미국 드라마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이는 ‘미국 유치원생 수준’의 영어라는 것이 사실 한국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도 깨닫게 해 준다. 이에 대해서는 고수민님의 ‘뉴욕에서 의사하기’ 블로그의 글을 읽어보면 좋다. (바로 가기)

[4] 그럼 이제 남은 건?

영어 원서 읽기와 미국 드라마 시청을 방해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한 가지가 명확해졌다.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그 해결책도 함께 고민해보자.

1. 영미권의 영유아용 동화책과 청소년용 통속 소설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정리한다.

– 오랜 시간이 들고, 다소 금전적 지출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영미권 화자들이 기술 어휘를 습득하는 방법을 문자로나마 똑같이 따라 하는 과정이다. 어느 정도 단어를 확보하셨다면, 수준 있는 대중 소설로 천천히 옮겨가면 좋다.

2. 기술 어휘 단어집을 공부한다.

– ‘단어 교재 공부’이기 때문에 지겹다는 단점이 있으며, 시중에는 이러한 단어 교재도 거의 없다. 다행히도 괜찮은 기술 어휘 모음 단어집이 있다. 하나는 영국 케임브리지 출판사의 English Vocabulary in Use 시리즈이다. 워낙 유명한 출판사의 유명한 책이니 따로 설명을 곁들이지 않겠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이다. 박인수씨가 지은『한국어 꺼라 영어가 켜진다』(구판 제목: 『잉글리쉬 마인드 트레이닝』)이다. 본문은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록의 ‘알파벳 에센스 느끼기’에는 알짜배기 기술 어휘가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다소 불필요한 단어가 수록되기도 했지만, 국내 시중 어느 단어집보다도 ‘기술 어휘’를 중점적으로 모아놓은 교재다.

사실 위의 두 과정을 병행하는 게 가장 좋다. 우리는 단어 몇 개를 습득하기 위해서 쉬운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만큼 마냥 여유롭지 않으며, 어휘집 단순 암기는 맥락 없는 ‘영단어-한국어 뜻’의 나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어집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단어를 확보하고, 동시에 문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단어의 실제 사용 예시를 직접 느끼는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5] 끝

아무쪼록 이 글이 높은 영어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영어 원서를 읽거나 영어 회화를 할 때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13년 3월 2일 이전 블로그에 최초로 작성된 후 4월 20일 1차 수정됐다. 그리고 2014년 2월20일 2차 수정과 함께 많은 내용이 추가됐고 경어가 생략됐다.

* 2014년 3월 8일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으면서 세 번째로 수정됐다.

* 2015년 1월 4일 역사 부분을 축소하고, 기존 서술을 별도 글로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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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영어

글쓰기는 생각쓰기 – 영어에 관해 쓰자.

블로그를 만든 이유에 관해 거창하게 쓴 뒤로, 이곳에는 뭔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혹은 IT에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만 쓰는 게 좋겠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나 글쓰기란 곧 생각쓰기라는 평범한 진리(링크1)와, ‘멋진 글’을 쓰려는 노력은 대개 실제로 읽기 좋은 글보다는 글쓴이에게만 만족스러운 글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링크2) 마주했다.

일단 내가 아는 것들부터라도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와 한국어에 관해…

예전 블로그에 썼던 영어 공부 관련 글을 조금씩 다듬어서 이곳에 올리고, 톨레레게에 올렸던 강좌들을 다듬어서 그곳에도 업로드하고 여기에도 차례로 가져올 계획이다. 그리고 몇 달째 머릿속에만 머물고 있는 한국어와 영어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공손함을 위한 문법파괴’, 한국어와 영어의 역사적 변화를 통해 주장하고 싶은 언어규제 무용론 등을 차근차근 쓰고 싶다.

글의 흐름과 간결함은 놓치지 않되, 항상 기교보다는 내용에 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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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인종 차별에 대한 둔감함

개그콘서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가 ‘놈놈놈’이다. 매주 개콘 방송시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놈놈놈’이 시작하면 일단 TV 앞에 앉는다.

지난주 방송(2일)에서 “우리 소미는 아메리카노만 마시거든”이라는 송필근의 말에 유인석은 “원산지에서 직접 공수한 최고급 원두커피에요!”라며 자판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등장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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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무엇을 패러디하고자 했는지 바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다만 나는 공중파 방송이 이렇게나 인종 문제에 둔감하다는 사실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국내에서 많은 사람이 인종 차별 문제에 둔감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인기 개그 코너 중 하나는 ‘시커먼스’였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이 코너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덕분에 폐지됐다(누군가는 올림픽 ‘때문에’ 폐지됐다고 아쉬워했으리라).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국내 거주 혼혈인의 42.2%가 피부색 등으로 인한 교육, 고용, 혼인에 있어서의 지속적인 차별 등으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2013년 KBS 2TV ‘안녕하세요’에는 흑인 두 명이 각각 7월과 10월 출연해 한국에서 겪는 인종차별 경험을 토로했다.

'안녕' 외국인출연자, 흑인편견 지적… 어떻게 보셨나요?
‘안녕’ 외국인출연자, 흑인편견 지적… 어떻게 보셨나요?

 

'안녕하세요' 흑인 남편…"한국인, 날 인간 이하 취급"
‘안녕하세요’ 흑인 남편…”한국인, 날 인간 이하 취급”

2014년으로 넘어와서는 이태원 모 주점의 ‘흑형 치킨’ 사건과 KBS 정인영 아나운서의 ‘깜둥이’ 트윗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사람들은 ‘흑형’과 ‘깜둥이’라는 말이 왜 인종 차별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게는 “‘조센징’은 조선인을 뜻하는 의미인데 그럼 이것도 아무 문제 없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말에는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감정과 역사가 뒤얽혀 있다. 특정 단어가 사회에서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를 무시한 채 “피부가 검은색이니 깜둥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하는 태도는, 나로서는 쉽게 수용할 수 없다.

다시 개콘으로 돌아가 보자. 국내 방송에서 흑인을 따라 하기 위해 흑인 분장을 한 것이 왜 문제일까. 첫째. 인종 특성으로 웃음을 유발하려 한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다.

세 사람의 등장은 분명 ‘웃긴’ 상황이었다. 곽범, 홍예슬, 김정훈 세 사람은 인종적 특성을 개그콘서트라는 맥락에 녹여냈다. 다른 인종을 따라 하는 분장을 했을 때, 우리는 괜찮을 수 있지만 그들은 모욕을 느낄 수 있다.

2013년 2월 미국 뉴욕주 주의회 의원 도브 히킨드(Dov Hikind)는 유대교 부림절 파티에서 흑인 분장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공식 사과를 했다(관련 CNN 기사 바로 가기). 지난달에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미국 시트콤 ‘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How I Met Your Mother)가 중국 전통 의상을 ‘시트콤답게’ 따라 했다가 전 세계 팬들의 비판을 받고 역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관련 오마이뉴스 기사 바로 가기)

어떤 백인이 ‘웃기기 위해’ 한국인 분장을 하거나 (백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따라 한다면 과연 어떨까. 상상이 잘 안 가고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아래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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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홀리스터 매장 개점 기념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모델이 경복궁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대부분은 “동양인 혹은 한국인을 비하한다”며 홀리스터에 맹공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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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4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방송 직후 저 백인의 ‘동양인 비하’ 행동은 꽤 여러 번 기사화됐다. (enews24 기사 바로 가기)

웃음이 따라올 만한 상황에 다른 인종의 특성을 끌고 들어오는 행위는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잘못된 일이며,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차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이런 행위는 해당 인종 사람들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타난 흑인 분장이 위험한 것은 한국의 콘텐츠가 더는 한국에서만 소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내수용 한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https://twitter.com/AskAKorean/statuses/364480664898256897

지드래곤이 얼굴을 새까맣게 칠한 뒤 올린 인스타그램 셀카는 순식간에 해외 웹으로 퍼져 나갔고 대차게 욕을 먹어야만 했다. 흑형치킨 논란이 일었을 때, 한 외국인 네티즌은 어떻게 알았는지 네이버 뉴스에까지 찾아 들어와 영어로 한국의 인종차별을 꼬집는 댓글을 남겼다(다만, 그 네티즌이 남긴 트위터 계정으로 들어가 보자, 그는 기본적으로 한국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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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뱅‘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한국의 각종 소식을 재빠르게 영어로 번역해서 소개하는 곳인데, 특이한 점으로 이곳은 국내 인터넷에서 생성되는 각종 댓글까지도 영어로 번역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각종 막말은 지금 이 순간도 영어로 번역되고 있을 수 있다. 인터넷 막말 가운데 꽤 많은 경우는 백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비아냥, 조롱 등이다.

인종 차별은 반론의 여지 없이 옳지 못한 행위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민감함이 부족한 것 같다.

인종 차별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한국 사회 핵심 문제의 중앙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는 과연 성숙한 자세로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면 언제쯤 그 성숙함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물리적으로나 비물리적으로나 세계화된 세상을 살고 있다. 늘어나는 교류 속에서 다른 인종에게 상처 주지 않는 태도는 언제쯤 우리 내면에 충분히 정착될지 고민이다.

인종 차별에 대한 둔감함을 극복하는 날은 언제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