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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은 가짜 뉴스다

* 아래 글은 2014년 1월 최초로 작성된 후, 같은해 3월 ‘듀프리의 덧붙임 말’ 관련 내용이 보강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1월 15일 해당 부분의 이미지가 깨진 것을 파악해, 한 차례 더 수정되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보니 다시 써버리고 싶을 정도로 글 짜임새가 엉성합니다..)

위의 변경사항은 ㅍㅍㅅㅅ에 실린 같은 게시물 말머리의 “주의: 현재 이 글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부분이 지칭하는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ㅍㅍㅅㅅ 게재 이후, 듀프리의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해당 덧붙임 내용이 유실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루머는 인터넷을 타고… ‘미국 어느 대학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에서 [‘미국 경제학 교수의 오바마 복지정책 실험’은 가짜 뉴스다]로 변경됐습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정보의 생성과 전파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1]이젠 특정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만큼이나 눈앞에 펼쳐진 자료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2]또한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자료가 한국어로 금방 번역 후 소개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에 대한 경계도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자료를 봤다.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경제학을 가르쳐 오면서 단 한명에게도 F 학점을 줘 본일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번 학기에 수강생 전원이 F를 받았다고 한다.

학기초에 학생들은 오바마의 복지정책이 올바른 선택이고 국민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하거나 지나친 부자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한 부를 누릴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거지.

그러자 교수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 학기에 이런 실험을 해 보면 어떨까? 수강생 전원이 클래스 평균점수로 똑같은 점수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학생들은 모두 동의를 했고 그 학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얼마 후 첫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전체 평균점이 B 가 나와서 학생들은 모두 첫시험 점수로 B 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애들은 불평했고 놀기만 했던 애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번째 시험을 쳤다.
공부 안하던 애들은 계속 안했고 전에 열심히 하던 애들도 이제는 자기들도 공차를 타고싶어 시험공부를 적게 했다.
놀랍게도 전체평균이 D 학점이 나왔고 모든 학생이 이 점수를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모든 학생들이 학점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애들은 없었다.

그 결과 다음 3번째 시험은 모두가 F 를 받았으며 그후 학기말까지 모든 시험에서 F 학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불평했지만 아무도 남을 위해 더 공부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학기말 성적표에 F 를 받았다.

그제서야 교수가 말했다.

“이런 종류의 무상복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보상이 크면 노력도 많이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의 결실을 정부가 빼앗아서 놀고먹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이런 상황에서 성공을 위해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까

이 글을 본 페이지는 ‘헐ㅋ‘이라는 곳이고, 해당 포스팅 바로 가기는 이곳이다. 

논리구조의 황당함(‘복지=무상’ 등식, ‘오바마 복지=공산주의’ 등식)을 다루려는 게 아니다. 위 이야기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은 이미 차고 넘친다.

[1]

그보다 내가 더 흥미롭게 지켜본 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위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 현상이다. 나는 글을 여는 첫 단어인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 부분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허술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검색을 좀 해보니 스놉스닷컴에서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페이지 바로 가기 & 스놉스닷컴 관련 연합뉴스 기사 바로 가기)

이 이야기의 원형은 2009년 3월께 처음 만들어졌다. 2009년 3월판 이야기는 ‘텍사스테크대학 경제학 교수’가 ‘사회주의‘(socialism)를 언급하면서 저런 실험을 했다고 나온다.

텍사스테크대학교의 한 경제학 교수가 말하길, 그는 이제껏 학생을 낙제시킨 적이 없었지만 딱 한 번 수강 인원 전부를 낙제시킨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사회주의(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An economics professor at Texas Tech said he had never failed a single student before but had, once, failed an entire class.

The class had insisted that socialism worked and that no one would be poor and no one would be rich, a great equalizer.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텍사스테크대학교는 실존하는 대학이긴 하다)

2009년 3월이면 오바마가 임기에 들어선 직후이다. 결국 4개월이 지나자 이야기가 조금 윤색된다. ‘사회주의‘가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변한 것이다.

학생들은 오바마의 사회주의(Obama’s 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수는 말했다. “좋다. 이제 오바마의 계획으로 이 교실에서 실험을 진행해보자.”

That class had insisted that Obama’s socialism worked and that no one would be poor and no one would be rich, a great equalizer.

The professor then said, “OK, we will have an experiment in this class on Obama’s plan”.

(출처: 스놉스닷컴 해당 페이지 맨 마지막)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주제가 바뀐 이 이야기는 미국 인터넷을 휘저었다.

그리고 2013년 2월23일(현지시각), 웨인 듀프리라는 티파티 운동가의 홈페이지에 ‘이 선생 죽이는데! 오바마식 사회주의 실험 폭망, 수강생들도 전원 망함‘(THIS TEACHER ROCKS! Entire Class Fails when Obama’s Socialism Experiment Fails)이라는 식으로 또 게재됐다.

웨인 듀프리의 글은 지금까지 페이스북 공유 13만1000건을 돌파하는 등 미국 웹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14년 1월9일, 드디어 듀프리의 글이 한국 웹에 상륙했다.

일베 유저 ‘김승규’는  웨인 듀프리의 글을 “읽고 직접 번역”해 일베에 올렸다. 제목은 경제학과목에서 전수강생이 F 받은 이야기.ssul

이 번역본이 바로 맨 위에서 소개한 글이다.

좋든 싫든 일베가 한국 인터넷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구글과 네이버에다가 위 제목에서 .ssul을 뺀 다음 검색해보면 일베와 ‘헐ㅋ’ 페북 페이지 외에도

큰믿음교회 다음카페, 뮬 게시판, 딴지일보 독투불패, 여의도 경희윤동학한의원, Here I Coming이라는 개인블로그, 포모스 등 매우 많은 곳에서 이 게시물이 발견된다.

아마 제목을 바꿔 퍼간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이 목록은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

인터넷에는 값진 정보도 많지만, 근거 없는 ‘거짓’ 정보도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인터넷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토론하기 전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데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2]

그리고 듀프리의 글을 한국 웹으로 가져온 ‘김승규’는 잘못된 번역을 했다.

그는 원문에 쓰인 ‘Obama’s socialism’을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했다.

이는 원문이 포함한 ‘사회주의'(Socialism) 개념과 ‘공산주의'(Communism) 개념의 혼동에다가 새로운 혼란을 더한 꼴이 됐다.(원문과 번역문이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개념이다)

명백한 개념어인 ‘사회주의’를 두고, 어째서 번역문에다가 ‘복지’를 넣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한편 ‘김승규’는 듀프리의 덧붙임 말도 번역에서 제외했다. 듀프리는 원문 하단에 이런 말을 추가했다.

이 시나리오를 함께 접한 모든 분에게, 방문해주신 것과 이 이야기를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러분 대다수는 저와 생각이 비슷할 테고, 위 시나리오를 읽었을 테고, 그리고  이런 실험이 실제 교실에서 이뤄진다면 바로 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 낙제하겠죠. ‘만약’이나 ‘하지만’ 따위는 없습니다.

(…)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만 개념 자체는 사실입니다! 결과 역시 사실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면서, 사회주의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일깨워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For everyone that has joined into to this scenario, thanks for visiting and even reading it. Many of you are like-minded and have read through the story and know if this was enacted on a classroom this would be the outcome. Everyone would fail, no ifs, ands or buts.

(…)

This story is not TRUE but the idea is! The results are TRUE!

Thanks again for sharing this and keep doing so to people that can think clearly and understand that SOCIALISM DOESN’T WORK.

‘김승규’는 “This story is not TRUE”라는 원글 작성자의 말을 어째서 번역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걸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이런 누락은 그 자체로 심각한 ‘오역’이다. (*글 하단의 추가 사항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오바마의 사회주의’를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하고, 원작자의 덧붙임말을 떼어내 버리는 사람은 온전한 의미의 번역자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그가 생산해낸 오역은 아래 같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 2014년 3월 27일 추가 사항-2017년 1월 15일 이미지 파일 복구

오늘 확인해 보니 페이스북 페이지 ‘헐ㅋ’이 없어졌다.

그리고 듀프리의 홈페이지에서 덧붙임 말(This story is not TRUE 부분)과 1000개 넘던 댓글도 사라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댓글 1274개가 달렸던 흔적은 이곳 (혹은 스크린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듀프리가 남긴 글의 흔적은 이곳과 아래 스크린샷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
2017년 1월 15일 현재 위의 글은 다시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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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씁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신간 소개 기사는 눈에 띄는 대로 읽어보는 편이다. 지난 2013년이 저물어갈 때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접했다. 소개 첫 문장을 읽자마자 바로 흥미가 돋았다. 대학생들이 스스로 자행하는 학벌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드는 책이었다.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 (111쪽)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18쪽)

소재와 문제의식도 마음에 들었지만, 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인지라 깔끔한 논리 전개도 돋보였다.

저자는 현재 대학생들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과 공동체적 사고방식이 결여되고, 편견을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렸다고 진단한다.

괴물이 된 대학생은 대학 바깥 사회에 대해서도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대학 사회 내부에서도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다.

현재 대학생들에게 ‘수능 점수’는 만인의 기준을 나누는 진리요 빛이고, 전국의 대학과 그 재학생은 ‘배치표’에 따라 철저하게 세분화된다. 그리고 극도로 세밀화된 이러한 ‘학력위계’에서 자신보다 한 층이라도 아래에 있는 대학과 그 재학생은 맘 놓고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널리 알려진 용어인 스카이서성한중경외시… 는 이제 상식일 뿐이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세종대는 서경대를, 서경대는 안양대를, 안양대는 성결대를 ‘무시’한다.(125쪽)

거기에 지잡대, 수시충, 편입충, 원세대, 조려대, 성수공, 경수공 등 갖가지 차별의 언어를 보태야 현 이십대가 대학 서열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할 수 있다.

4년제는 다시 2년제를, 2년제는 또 같은 기준에 근거해서 자기들 내부를 쪼개고 줄세운다. 모두가 이렇게 같은 논리를 가지고 가해자 역할을 하며, 또 그래서 당연히 피해자 신분이 되는 상황에도 매우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125쪽)

이런 세계에서, 다른 대학이 쟐 되는 모습은 봐줄 래야 봐줄 수가 없다. 지난 4일 한 페이스북 유머 페이지성균관대의 위엄’이라는 제목을 달고 아래 사진을 올렸다.

성균관대 위엄 유머

이 아래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한 명(논의의 사실성을 위해 학교명을 밝힙니다)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ㅜㅜ 성대는 명륜 전문학교 전신 아닌가요? 그리고 성균관 국립교육기관의 부지를 구매한거고. 성균관 국립교육기관을 되물려받은 학교라면 왜 국립대가 아니라 사립대인거에요?..ㅠㅠ

아무 인연도 없는 다른 사람이 뭐라 뭐라 댓글을 달자, 위 학생은 다시 아래 댓글을 달았다.

감사합니당:) 성격을 계승한다는 점과 연관성이 높은 점은 이해가 가는데요 ㅜㅜ음.. 계승과 전신은 다른 얘기 아닌가요? 고려가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것은 맞지만 전신은 아니듯요. 고려의 역사와 고구려의 역사가 별개이듯 말이에요~~

그리고 키보드 배틀이 시작됐다. 지금 이 글에서 성균관대의 600년 전통이 타당한지, 이화여대와 성균관대의 관계, 이화여대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은 전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위에서 드러난 현상만 봤으면 좋겠다. 유머로라도 다른 대학이 좋게 소개되는 꼴을 참지 못하는 대학생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도 저렇게 정성을 들여 비아냥 섞인 댓글을 쓰면서까지.

글쓴이는 이런 사회 분위기의 원인으로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지목한다.

자기계발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점령했는지, 얼마나 잠식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내는 과정은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물론 이 논지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읽기 불편할 따름이겠지만…

앞서 말한 ‘깔끔한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 자기계발의 3가지 특징을 제시되는데, 그 특징 각각은 순환적으로 맞물려 서로를 강화한다.

이런 상호 강화 관계는 현 이십대가 ‘학력위계주의’와 자기계발 논리를 맹신하면서 빚어내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십대는 이렇게 자기통제형 자기계발에 부화뇌동하게 되었고, 그 자기계발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십대들이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학력위계주의에 대한 집착은 자기계발의 논리와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자기계발서를 찾는 동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 ‘사회적 문제’는 논의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184쪽)

‘사회적 문제’가 논의의 저편으로 사라진 사건을 불과 며칠 전에도 발생했다. 지난 15일 중앙대학교 총학생회는 “민주노총은 중앙대에서 철수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세한 내용은 노컷뉴스의 같은날 기사 ‘중앙대 손들어준 총학 “민주노총 나가라”‘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총학생회의 위 발언은 거센 역풍에 부닥치긴 했다. 기사1, 2)

이렇듯 책은 계속해서 현 이십대의 암울한 얼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학력위계주의가 묘사되는 부분은 ‘과잠의 사회학’ 등 현실감 넘치는 소재가 가득하다.

이쯤 되면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저자는 문제를 제기할 때 대안을 요구하는 태도가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안 제시보다,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는 공감의 확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덧붙인 내용이 바로 현실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입증할 통계 자료다.

한국 대학들의 서열은 단지 수능점수만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다. 경제적 지표로도 나뉘어진다. 각 대학에서 공시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학자금 대출현황을 확인해 보면 서울지역 주요 23개 대학의 학자금대출자 평균 비율이 재학생 대비 14.5%인데, 서울대와 연세대는 불과 5%대다. 하위 6개 대학은 상위 4개 대학보다 학자금대출자 비율이 11%가 더 높았다. (199쪽)

이렇게 문제는 대학교육을 받을 만한 경제력이 되느냐 마느냐를 이미 넘어서 있다. 대학등록금 자체도 비싼데다 어학연수나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사교육 그리고 고급문화를 즐길 수 있는 취향까지 이게 죄다 부모의 경제력에 달려 있는 일들인데 ‘기회는 공정했다. 그러나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결과만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208-209쪽)

그리고…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통계조사를 덧붙이며 마무리로 넘어가겠다. 아래 도표는 대구 지역 가난한 동네 초등학교와 부자 동네 초등학생들이 각자 경제 배경에 따라 장래희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는 213쪽에 실렸으며, 원 데이터로 지목된 기사는 오마이뉴스의 ‘“장래희망은?”… 대구 초등학교 설문조사 ‘경악’‘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 초등학생

책에서 갑자기 초등학생을 논의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처음엔 다소 튀는 느낌을 받았지만,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명제를 너무나 가슴 아프게 반박하는 자료였다. 그리고 이 현상은 이십대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분명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글쓴이가 학교 간 존재하는 일정한 차이와, 대학생들의 학력위계주의를 묘사하면서 다소 감정에 치우친 서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누구나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에게 ‘대학이름’이란 자신의 긴 인생에서 보면 한낱 최초의 자기계발 결과물일 뿐이다. (147쪽)

이런 강박감은 석준이의 ‘패션감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단지 ‘옷’에 불과한 학교 야구잠바를 입고 안 입는 문제에서도 학력위계주의 세대의 예민한 특징을 십분 보여준다. (159쪽)

한국 사회가 지독한 학력위계주의를 보이긴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 곳이라면 ‘대학이름’은 절대 ‘한낱’ 최초의 결과물일 수 없고, 대학 이름이 쓰인 옷은 ‘단지’ 옷일 수 없다. 이 소재들을 지나치게 격하할 때마다 다소 아쉬웠다.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무리한 대안 제기를 하지 않은 채 마무리해서 더욱 읽는 맛이 좋았던 책이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개인에 모든 책임을 덧씌우는 지금의 풍조에서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싹텄으면 좋겠다. 

 

읽은 기간: 2014.01.04 ~ 2014.01.08
정리 날짜:2014.01.19 (예약 발행일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