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번역

[번역]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짓말

스타트업에 관한 강연과 글로 활동하는 뮌헨 출신의 블로거 얀 지라드가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약간의 의역을 포함시켰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활방식, 문화에 대한 자아비판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디지털 노마드에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세 달 반 동안 나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동시에 업무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음.. 최소한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나는 내 소개를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물론 나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이 아니기도 하다. 어떤 게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디지털 노마드라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내가 거쳐간 곳은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였다. 이런 멋진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시간이 꽤 걸리는 새로운 작업들과 함께 다른 모든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무척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배운 것은, 여행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걸 창조하기란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도 원래 무척 힘든 작업이다. 뭐가 문제고 뭐가 방해가 되는지 잘 알고있는 환경에서도 그럴진대, 여행 기간에 뭔가를 만들어내기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모든 것이 더 버겁게 다가온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 꼭 해야할 일들, 꼭 관람해야할 것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이런저런 장벽들, 모르는 것들, 또는 각종 장애물까지. 모든 것이 매번 더 우리를 버겁게 한다.

그리고 당신이 인터넷에서 읽어봤음직한, 디지털 노마드가 얼마나 멋진 삶인지에 관한 글들은 일단 다 거짓말이다. 당신에게 뭔가 제품을 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혹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특정한 서비스, 그것도 아니면 코칭 세션 등을 팔기 위한..

그들은 당신에게 ‘꿈’을 팔아넘기려 애를 쓴다. 다른 말로 하면 ‘라이프스타일 패키지’일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유 패키지’, 하여간 온갖 이름을 갖다붙인 패키지들. 한 달 99달러에 모십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자유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나. 클릭 몇 번으로 자유를 산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자유에 대체 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자유(freedom)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 아닌가. 그것도 무료로(for free).

세상은 분명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걸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최근의 시간들을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간 경험하고 배운 것들 역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분명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저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간다는 게 대체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그림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 해변가에서 일하기

당신이 인터넷에서 봤음직한 해변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사진은 정확히 말하자면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에어컨이 없는 뙤약볕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시도해봐라. 몇 분 안 가서 죽을 것 같다고 느낄 것이다.

에어컨 없이 해변가에서 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그런 끝내주는 장소들은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다.

믿기 어렵다고? 그렇지 않을 거다.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름날 야외에서 한두시간 정도 업무를 해봐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업무와 여행

머무르는 지역을 바꿀 때마다 당신은 며칠의 시간을 손해 볼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있어도 일을 하는 데 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도시에 갔으면 그곳을 둘러봐야하지 않겠는가.

혹시 그런 쪽에 취미가 없다고 해도, 당신은 그 도시에서 간단한 생필품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지 등을 새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삼시세끼 다 맥도날드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2주에 한 번씩 지역을 바꾸면서 규칙적인 업무 패턴을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대충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나의 업무 스타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끔은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방문한 도시가 맘에 들지 않거나, 호스텔이 거지같을 때면..

이걸 생각해보면 쉬울 거다. 사무실이 아닌 곳들에서 ‘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그래, 때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집안이 완전히 통제된 환경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소한 몇 가지만 틀어져도 집중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 거주

거주지로서 괜찮으면서 일까지 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무지막지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여기에서 인터넷은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뭐 에어비앤비로 해결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엔 진짜 집이 거의 없다. 최소한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에선 그랬다. 대개는 호스텔의 도미토리 광고였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 괜찮은 실제 거주용 아파트가 올라왔다고 해도, 지낼만한 곳들은 예약이 꽉 차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잠은 호스텔에서 자고,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 역시 썩 괜찮은 대안이 아니었다. 시도는 해봤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스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또 호스텔에서 자는 경우엔 제대로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다. 다음날이면 일을 하기엔 너무 피곤하기 일쑤다. 귀마개를 끼고 잔다고 해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 다섯 잔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돈이 많다면 모르겠다만.. 매번 호텔에 투숙하는 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 고립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나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단기 렌트를 할 수 있는 아파트나 그 외 괜찮은 장소를 찾아서 100%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였다. 마치 지금처럼.

지난 이틀간은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려고 다가오는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다른 모두가 재밌게 놀고 있을 때, 모두들 술 한 잔 걸치고 파티를 즐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세 달 반 사이에 나는 파티에 겨우 두 번 갈 수 있었을 뿐이다.

결론은 이렇다:

뭔가를 해내고 싶다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다면(그저 관리하기 말고), 남들 하는 걸 똑같이 즐기면서 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냥 집에 있었어도 뭐…

# 외로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마치 꿈 속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개소리'(bullshit)라고 한다. 이런 삶의 방식, 진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무척 외롭기도 하다. 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이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데에 걸림돌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일 것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보낼 줄 모른다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절대 당신에가 맞는 방식이 아니다.

# 루틴

업무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는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다니는 동안에는 이런 루틴을 지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나에게 루틴을 지키는 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뭔가를 계속 하는 것! 개인적으로 효과를 본 방법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걸 발행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스 이동으로 써버렸는지, 그날 무슨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한 번 이걸 해내니까, 점차 다른 일들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루틴을 정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뭔가 제대로 해내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중요한 걸 살펴보자.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 이건 당신에게 꿈을 팔아서 지갑을 채우는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끝내주는 삶, 디지털 노마드라는 꿈!

디지털 노마드 현상에 버블이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한 명만 나에게 소개해달라. 단, 그 사람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하고 뭔가 팔려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자유 패키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인터넷 강의, 무슨무슨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티켓, 다 안 된다.

진짜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들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뽐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고, 그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다.

#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내가 보고들은 바로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프리랜서 활동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친 활동과 노력으로 당신의 이름값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고, 당장 내일 어느 섬나라에 가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 주위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세우고, 작업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채워야 한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자유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인터넷 강의 수강하는 시간보다는 훨씬 오래.

# 관리 vs 설립 (management vs. building)

디지털 노마드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도 있긴 하다. 이미 잘 돌아가는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로 변신하기에 앞서서 이미 설립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비즈니스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은, 그 시작을 여행과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는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상품화한다거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경우엔 얘기가 통한다. 실제로 시장에서 그런 상품이 팔리니까. 아마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비즈니스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소위 디지털 노마드들이 그 길로 들어선 이유다. 음..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니까. 또 나는 이처럼 돌아가는 것들을 진지하게 믿는 편이다.

난 그저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에 마음을 쏟기 전에 몇 가지를 알아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걸 믿게 되기 전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믿기에 앞서서 말이다.

Categories
번역

[번역] 샤오미가 설계하는 미래

대만 타이페이에 거주하는 독립 컨설턴트이자 블로거인 벤 톰슨이 2015년 1월 7일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당신의 블로그에만 게재할 수 있다”(it is limited to your blog)는 조건으로 번역을 허락받았습니다. 복사 후 다른 곳에 게재하기보단 링크 걸기를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을 위해 약간의 의역과 문단 변경, 그리고 제목 수정(원문은 ‘샤오미의 야망’ Xiaomi’s Ambition)이 있었습니다. 원문에 링크된 영어 콘텐츠는 같은 내용이 있을 경우 한국어 콘텐츠를 링크했습니다. 각주의 경우 별도 표시가 없다면 톰슨의 각주이며, [역자주] 표시된 것만 제가 작성한 각주입니다. 


지난달 450억달러(한화 약 49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로 11억달러(한화 약 1조2075억원)를 투자받은 중국 스마트폰 기업 샤오미는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Mi.com은 수천가지의 품목을 자랑하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그곳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AA건전지 충전기다. 그런 충전기를 파는 곳은 따로 있다. 애플이다.

Apple AA Battery Charger

이 황당한 물건이 출시된 시기를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특별히 매력적이라거나 혁신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 동료가 출시 바로 다음날 이걸 실제로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전력 효율, ‘뱀파이어 드로우’ 현상[note]콘센트에 연결만 되어 있어도 충전기가 전력을 소비하는 현상[역자주][/note](과 애플 충전기의 문제 해결)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대체 왜 그 충전기가 필요한지에 관해선 신기할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충전기가 애플 제품이라는 사실이 구매의 이유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샤오미?

샤오미에 관한 글에는 조금 뻔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 영상은 샤오미가 ‘중국의 애플’로 불린다고 소개한 뒤, 알고 보면 애플과 샤오미가 매우 다른 회사라는 설명을 한다. 아마존에 가까운, 혹은 구글과도 약간 비슷하다는 점을 샤오미 CEO 레이쥔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다. 그들은 스마트폰 단말기를 원가(에 가까운) 수준에 판매하고, 각종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낸다.

샤오미에 관한 이 같은 설명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대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기엔 부족함이 많다.[note]예외적으로 이런 좋은 글도 있다[/note] 뻔한 추측으로는 ‘전통적 인터넷 기업이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서비스다. 예를 들면 구글이 지원하는 앱 스토어나 온라인 포털,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 서비스들은 기업가치 450억달러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특히 중국 모바일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을 텐센트(메신저 위챗, 검색엔진 바이두)·알리바바(전자상거래)·애플(앱스토어)이 가져가고, 그 나머지를 몇몇 중국산 앱스토어가 가져가는 상황에선 말이다. (샤오미도 자체 앱스토어가 있지만, 5위에 머무르는 수준이다.[note]15년 11월 현재 4위[역자주][/note])

관점을 바꿔보자. 샤오미가 어떤 기업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는지를 이해하는 길은 CEO 레이쥔이 말한 “서비스”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샤오미가 어째서 애플과 같은 기업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수평 vs 수직(Horizontal Versus Vertical)

이 블로그 초창기에 나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수직적 비즈니스 모델'(예: 애플)과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예: 구글)의 차이점에 관해 서술했었다. 애플의 ‘서비스’들은 자사 하드웨어 차별화의 수단이고, 애플은 하드웨어에서 실제 수익을 낸다. 그러니까, 애플은 ‘독점적'(exclusive)이다. 반면 구글은 모든 사람들이 자사 서비스 이용자가 되길 바란다. iOS와 안드로이드 중 무엇을 쓰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note]The Android Detour에서 썼듯, 안드로이드라는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글의 각종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유지다.[/note]

두 방식 가운데 어느 쪽에 샤오미가 해당하는지는 즉각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우선, 샤오미의 다른 서비스들과 연동되게 하는 하나의 서비스이자 무료 안드로이드 롬(ROM)이라고 할 수 있는 MiUI[note]’미유아이’라고 읽습니다[역자주][/note]는 다른 제조사의 안드로이드 폰에서도 작동한다. 수평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샤오미의 수익은 스마트폰 단말기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점을 보면 수직적 모델에 가깝다. 수평과 수직 모델 가운데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기업인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애플의 배터리 충전기를 구매했던 그 동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샤오미의 ‘팬’

지난 2013년 샤오미는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TV(MiTV)를 공개했던 것이다. 인터넷 라우터를 발매했을 때는 그렇게 놀랍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엔 또 다른 충격을 세상에 선보였다. 공기청정기를 출시하고, 정수기 시판을 앞두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모두 MiUI에 연동된 기기들이었다. 미TV 출시 현장에에서 레이쥔의 발언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의 팬들이 사용할 첫 번째 TV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샤오미의 팬을 이해하는 것은 이 회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무척 중요한 지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샤오미를 조망하는 기사에서 팬들의 ‘열광’을 아주 잘 그려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생산업체로 출발해, 샤오미에 비해 재력을 갖춘 다소 높은 연령대의 고객을 타겟으로 하는 라이벌 기업 메이쥬(Meizu)의 부사장 리난은 샤오미 지지자들의 헌신적 태도를 종교적인 것에 비유한다.

“샤오미 팬들은 굉장한 수준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샤오미를 사랑하죠. 우상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원생 한 위(24)는 그러한 샤오미 열성 조직(idolator) 가운데 한 명이다. 수만명의 다른 이들과 함께 그는 샤오미의 유저 인터페이스(UI) 테스트에 참여해 버그를 잡고 개선 사항을 제안한다. 그는 샤오미 측 온라인 포럼의 몇몇 페이지를 관리도 맡고 있다. 포럼 전체에는 하루 평균 20만개의 포스트가 작성되며, 이곳은 회사와 팬(fan)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의 개인 생활은 상당 부분이 샤오미 생태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친구도 사귀게 됐다고 한 위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개인 비밀 갤러리’아이디어가 샤오미 스마트폰에 반영됐을 때가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참여감이 정말 즐겁습니다.”

한 위의 나이가 24세라고 했다. 이것은 지난해 여름 플러리가 발표한 자료에 꼭 들어맞는다.

샤오미 소비자 분포도는 13-17세, 18-24세, 25-34세 범위에서 우위를 보이고, 35-54세와 55세 이상 범위에선 낮게 나타난다. 이 자료는 샤오미 제품이 중국 내 젊은층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는 점, 특히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xiaomi_users_hires_v1-600x457

뉴욕타임스 기사에 한 위의 거주지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을 확률이 꽤 높다. 중국에선 일반적인 일(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중국에서 자녀들은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출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산다(전·월세[note]원문에선 renting[역자주][/note]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는 한 위와 같은 청년들을 아주 가치 있는 소비자 집단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다. 독립해 살고 있을 경우 전·월세와 각종 시설 및 관리비, 식비 등에 지출했을 비용을 소비에 쓸 수 있기 때문이며, 샤오미의 방대한 액세서리 제품군은 그 부분에서 이득을 올리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따로 있다. 한 위, 그리고 동년배의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해 ‘내 집’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 역시 TV를 살 것이고, 공기청정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의 제품까지 구매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보기엔 그들이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것 같은가? 애플이 내 동료에게 AA건전지 충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면, 단언컨대 샤오미 역시 한 위에게 공기청정기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며 언젠가 그가 자신의 집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제품 가운데 다수는 샤오미가 투자한 다른 회사들이 제조한다).

샤오미 라이프스타일

이것이야말로 샤오미라는 기업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스마트폰을 판매한다기보다,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그 라이프스타일의 연결고리는 MiUI다. 샤오미의 모든 제품군을 하나로 연결하는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사실상 샤오미야말로 최초의 사물인터넷(IoT) 기업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구글(네스트 보유), 애플(홈킷 지원), 혹은 삼성(스마트씽즈 인수)처럼 개방형 소프트웨어 개발 킷(open SDK)을 통해 기기들을 엮으려는 기업 입장에선 타겟 소비자들이 이미 각종 기기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 같은 SDK가 필수적이다. 반면, 샤오미는 모든 기기들을 직접 연결하고 있다. 또한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Mi.com에서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는 바로 샤오미의 팬들이고, 그들은 독립 생활 공간을 생애 처음으로 준비하게 될 것이다.

두말 할 것 없는 수직 전략이다. 이 회사는 무척이나 애플과 닮아 있다. 단지 제공하는 품목 범위가 진 먼스터의 상상[note]먼스터는 애플이 실제 TV를 만들 것이라고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note]보다도 훨씬 더 방대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레이쥔이 말하는 ‘서비스’들, 특히 MiUI와 Mi.com은 제품을 판매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는다. 하지만 그 ‘서비스’들은 결과적으로 샤오미의 제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샤오미의 팬층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위의 전략은 샤오미의 해외 진출 전략까지 설명한다. 인구수 세계 2위인 인도 시장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구수 4위인 인도네시아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5위인 브라질에도 곧 진출한다. 맞다. 인구수 3위인 미국 시장엔 당분간 진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 애플이 이미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모두가 각종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지식재산권(IP) 이슈도 문제긴 하다.

샤오미의 도전

내가 보기에 샤오미가 꿈꾸는 야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담대한 것이다. 스마트폰이라는 품목이 아주 방대하고 수익성 있는 아이템이긴 하지만,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되는 것 정도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집’ 그 자체다. 혹시 이것이 레이쥔의 야망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 앞엔 중대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상당수는 제품 디자인에 관한 것들이다.

단기적으로 보자면, 샤오미가 다소 지나치게 다른 디자인을 “칭찬”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note]애플 팬들만 화내는 것이 아니다. 공기 청정기 역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note] 지식재산권에 대한 진중한 태도는 서양 문화권이 오히려 독특하게 갖고 있는 태도다.

다른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선 발명과 순수한 창조 행위까지도 공동체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어느 박물관에서든 족자나 그림 작품의 가치는, 호의와 고평가를 뜻하는 도장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그 작품 위에 남겼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Tang_WhiteNightHorse
Art-Virtue.com

한 가지 더하자면, 내 개인적 관점에서 이건 그렇게 큰 도덕적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진실을 파헤쳐보면, 미국은 중국이 지금 하는 것과 똑같이 지식재산권에 대해 제멋대로 굴면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나는 서양 세계가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려는 와중인 현재 개발도상국들의 처지에 관해 무척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기엔 누구도 지금 그들이 하는 것처럼 환경오염, 지재권, 노동자 권리 등의 문제로 제동을 건 적이 없었다. 이건 “올바르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역사적 배경은)[note]이 괄호는 독해 편의를 위해 역자가 넣은 것입니다[역자주][/note] “샤오미는 표절꾼”이라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의 주장보다 더 “올바름”의 기준을 회색지대로 끌고 가는 문제다.

샤오미의 해외진출 전망을 살펴볼 때, 독창성(혹은 그것의 부족함)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에서 멀어질수록, 레이쥔의 인기나 락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신제품 발표회, 강력한 소셜 미디어 존재감 등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것들의 영향력은 더욱 작아진다. 더욱이, 가격 또한 올라갈 수밖에 없다. 갈수록 써드 파티 유통업체들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샤오미는 ‘온라인 온리'(Online only)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만약 샤오미가 중국에서 한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팬(‘샤오미 하우스’를 꾸밀 그런 팬)들을 만들어낼 작정이라면, 샤오미는 자신들의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땐 카피캣 제품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샤오미가 서양 국가에 당장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이다. 라이센스 비용이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note]다시, 이런 라이센스 비용은 스마트폰 업계에서 경쟁하지도 않는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특허가 정말 세상을 더 좋게, 그리고 발전적으로 만드는가?[/note] 서양 사회엔 이미 주택에 가구들이 꽉 차있고, 강력한 브랜드의 업체들도 가득하다. 기회는 다른 곳에 훨씬 더 크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서유럽 시장 진출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어떤 기업이 450억 달러의 가치(나중엔 더 커질 것이다)를 인정받는았다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말자.

샤오미 그리고 중국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샤오미의 영향력은,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안겨주느냐가 아니라, 보다 비물질적이지만 중요한 방향으로 입증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서도 대기업이 많이 나왔고, 일부는 글로벌 기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 바깥에까지 울림을 퍼뜨린 중국의 소비재 브랜드는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중국 내부에서도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샤오미 팬들의 연령대에 관해 생각해 볼 때,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 존재한다. 샤오미 제품 구매율이 낮은 30대 이상의 중국 고연령층은 자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 제품들을 쭉 무시해왔다. 저렴한 데다 2류 제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애플을 비롯한 서양의 고급 브랜드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 다시 말해 샤오미 세대는 다르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 매년 10% 가까운 성장률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성장해왔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마음 속에서 중국은 세계적인 강국이다. 이들이 중국산 브랜드를 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런 민족주의적 성향을 샤오미는 이용하고 있다. 샤오미 마스코트의 모자에 그려진 붉은 별을 그저 의미없는 장식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MIUIEs-Logo

오해하지 말자. 샤오미에게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중국인 그 자신들이었고, 샤오미는 능수능란하게 승리를 이어왔다. 그들의 잠재력을, 넓게 봐서는 중국의 잠재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그들이 진출하려는 개발도상국가들은 훨씬, 훨씬 광대한 세상이다—우리가 사는 서양 세계보다.

 

 

Categories
번역

[번역] 샤오미 바로알기 –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기업이 아니다”

모바일·사물인터넷(IoT) 비즈니스 전문 리서치업체 ‘비전모바일‘의 전략 디렉터인 마이클 바큘렌코가 지난해 12월 31일 미디엄링크드인에 올린 글입니다.

원작자인 바큘렌코의 동의를 얻어 번역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제목을 조금 바꾸고, 원문에 없는 표현과 사진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원문이 링크한 영어 기사의 경우 같은 내용을 다룬 게 있다면 한국어 기사를 링크했습니다.

샤오미가 국내에서 그저 ‘스마트폰 싸게 팔아 대박난 회사’ 정도로 통하는 상황에서 많은 분과 이 내용을 나누고 싶어 번역했습니다. 글 하단에는 더 읽어볼 만한 글을 첨부했습니다.


 

xiaomi 샤오미

“오직 팬들을 위해”(Only for fans)[note]샤오미의 영문 공식 슬로건은 ‘Just for fans‘이다. 원 저자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제목에서만 Only를 쓴 것 같다).[/note], 샤오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기업이 아니다. 

 

샤오미는 지난해 자금조달에서 11억달러(한화 약 1조2075억원)를 유치하고 기업가치 450억달러(한화 약 49조4000억원)를 인정받으면서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으로 올라섰다.

이에 관해 ‘리/코드'(Re/Code)가 작성한 기사는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보여준다.

이유는 분명하다: 신속한 혁신과 우수한 소프트웨어에 집중한 덕에 샤오미는 세계 3위의 단말기 제조업체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재무보고서를 보면 샤오미의 수익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2013년 순익은 5600만달러(한화 약 60억4500만원)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은 샤오미라는 기업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투자자들은 낮은 마진에 저렴한 스마트폰을 판매한다는 것 이상의 미래가 샤오미라는 기업에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

샤오미와 삼성전자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애플과 오렌지(이동통신기업)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두 기업은 어쩌다 보니 같은 산업분야에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따르고 있다. 애플과 삼성, 화웨이와 레노버에게 단말기는 곧 수익의 원천이다. 샤오미가 단말기를 판매하는 이유는 다르다. 이들이 스마트폰을 파는 것은 모바일이라는 분야를 초월해, 치열한 전자상거래 시장에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다.

샤오미라는 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이들의 슬로건인 “그저 팬들을 위해”(Just for fans)다. 샤오미는 인터넷 시대의 마케팅 활용과 단말기 온라인 판매를 통해 열성적 ‘팬’ 커뮤니티를 키워냈다. 팬들은 매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제공받고, 신제품 기능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할 기회를 얻고, 웨이보와 위챗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빈번하게 각종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플러리‘는 샤오미 이용자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쓴다고 발표했다.

(Flurry.com)
(Flurry.com)

평균적으로 샤오미 이용자들은 애플 이용자들보다 7% 이상의 시간을 스마트폰 앱에 쓴다

샤오미의 ‘팬’ 커뮤니티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 한 해 동안 스마트폰 판매량이 600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 판매목표는 1억대로 잡고 있다.[note]지난해 쓴 글이라 이렇다. 실제로 샤오미는 2014년에 스마트폰을 6110만대 팔았다[/note]

나는 샤오미를 3년 전쯤 처음 알게 됐다. 그때 이 회사는 막 기반을 다져나가는 단말기 제조사였다. 분명한 것은 그때도 샤오미가 단순한 저가 스마트폰 제조사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비전모바일은 지난 2012년 8월 ‘샤오미 부족'(The XiaomiTtribe)이라는 보고서에서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마케팅의 목적이 관심 없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억지로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마케팅의 진짜 목적은 특정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의 대표로 우뚝 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세스 고딘은 이러한 집단을 ‘부족'(tribe)[note]관련 TED 강연 바로가기[/note]이라고 불렀다. 일단 한 부족을 이끌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한테 기념품을 판매해도 된다고 당신에게 허락해줄 것이다.

스마트폰은 샤오미가 거대한 팬 커뮤니티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결과적으로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오늘날 샤오미는 중국 내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중 한 곳으로 성장하고 있다. 해리 맥크라켄은 얼마 전 이런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번역문과 링크로 대신함)

샤오미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연간 거래액은 100억달러(한화 10조7750억원)에 이른다. 다루는 물건은 1000 종류에 달한다.

해리 맥크라켄(@harrymccracken), 2014년 10월 28일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넘어 자사 제품 라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100개의 전문 하드웨어 제조사에 투자하고 브랜드 제휴로 만든 “기념품”을 열성적인 팬들에게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위해 와이파이 라우터스마트TV셋톱박스웹캠전구공기청정기에다 전원 플러그까지 갖췄다. 미 피트니스 밴드헤드폰혈압측정계 등 웨어러블과 건강 기기는 기본이다. 지난 2014년 12월 샤오미는 중국 가전제품 제조사 메이디 그룹에 2억300만달러(한화 약 2187억원)를 투자했다.

또한 지난 2014년 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담당부서를 신설했으며 앞으로 비디오콘텐츠 제작에 10억달러(한화 약 1조775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기업용 서비스 진출과 개발 생태계 구축의 신호로 볼 수 있는 움직임으로서, 샤오미는 킹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에 10억달러(한화 약 1조775억원)를 향후 3~5년에 걸쳐 투자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 감을 잡기 부족하다면 해줄 얘기가 더 있다. 샤오미는 2014년 9월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의 가상이동통신망(MVNO)[note]한국에선 ‘알뜰폰사업자’라는 용어가 정착했다[/note] 사업자 허가까지 따냈다.

샤오미 투자자 유리 밀너는 샤오미의 기업가치가 지금의 두배 이상, 최대 1000억달러(한화 약 107조750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note]인용문이 있는 부분이라 영어 기사를 링크했지만 이투데이가 같은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있어 링크한다.[/note] 페이스북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샤오미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샤오미의 진정한 기회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샤오미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는 상당히 많다.

‘샤오미 부족’ 보고서를 작성한 지 2년 반이 흐른 지금, 샤오미를 단순한 스마트폰 회사로 바라보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시선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샤오미는 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운용하고 있다. 2013년 8월 비전모바일 블로그에서 설명했듯 그 비즈니스모델에서 스마트폰은 수익을 내기 위한 상품이라기보다 유통 채널일 뿐이다.

얼마 전 벤 에반스는 ‘모바일, 다음 질문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아이폰 대 안드로이드’라는 상식적인 논쟁 이후의 지점을 바라봤다. 샤오미는 이 같은 “다음 질문” 가운데 몇 가지에 해답을 내놓고 있다. 또한 “모바일”을 타고 어떻게 다른 산업분야에서 경쟁력 있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업이다.

– 마이클

 

덧붙임1. (2015년 1월 5일)

레이 쥔 샤오미 CEO가 스마트폰 판매량(6112만대)과 매출(119억달러=한화 약 12조8222억원)에 관한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 해당 글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 팬 여러분, 아주 좋은 소식 하나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영어 번역본 바로가기.

 

덧붙임2. (2015년 1월 15일)

샤오미의 비즈니스 모델을 입증할 더 많은 증거다. 벤 톰슨이 샤오미 행사에서 라이브 리포팅한 내용이다.

(@monkbent)
(@monkbent)

<더 읽어볼 글>

XIAOMI’S AMBITION (stratechery) → 우마노 듣기도 가능합니다.
영어라는 제약점이 있습니다만 위 내용을 더욱 자세하고 심층적으로 보충해주는 글입니다. 강력추천.

샤오미, 안드로이드 그리고 불교 경전을 읊는 해커의 야망 (슬로우뉴스)
사업 측면에 관한 글이 아니라, 샤오미라는 회사가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점을 알려주는 글입니다. 역시 강력추천.

샤오미 ‘돌풍’의 빛과 그림자 (시사인)

샤오미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정보 (얼리어답터)

Categories
번역

[번역]항상 “바쁘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미국 뉴욕에서 젊은 직장인과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명상을 서비스하는 기업 ‘패스'(The Path)의 설립자 디나 카플란(Dina Kaplan)이 지난 2014년 11월 미디엄에 올린 글입니다.

원작자인 카플란의 동의를 구해 번역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수 있도록 제목을 바꾸고, 원문에 없는 표현과 사진을 추가하고 문단 구성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최근 어느 점심식사 자리에서 친구 한 명이 한탄을 했다. “너무 바빠서” 뭔가를 차분히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볍게 웃었다.

점심 자리는 1시간 30분 정도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는 며칠 후 있을 저녁 모임의 메뉴를 고르느라 근처 레스토랑 쪽에 잠시 들렀다. 그러고 나서 친구는 어느 컨퍼런스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다. 계획에 없던 참석이었다. 아참, 그는 꽤 잘나가는 사업가다. 자기 사무실에 돌아갔을 때 시간은 4시 30분이었다. 점심을 먹겠다고 사무실을 나선 지 4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이날 그는 하루 일정을 꽉 채워 소화했다. 그는 바빴다. 하지만 이 친구가 바빴던 것은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데 따른 결과였다. 뭔가를 읽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읽지 않기’였을 뿐이었다.

매일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관해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이런 선택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본인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 미리 한 가지만 말해두고 싶다. 어린 자녀가 있다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라면, 오늘 내가 말하려는 내용은 당신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로 바쁜 것이다.

반면, 내가 아는 여러 사업가와 직장인들이 자신이 바라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바쁘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진정으로 자기 삶에서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들이라면 말이다.

id-iom, Busy being lazy, CC BY-NC 2.0
id-iom, ‘Busy being lazy'(CC BY-NC 2.0)

그러나 “바쁘다”는 것은 어느새 우리가 늘상 하는 말이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일에 대한 합당한 변명이 되어버렸다. 인정할 만한, 때로는 자랑까지 할 만한 이유인 것이다. 점심식사를 함께한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불교승 소걀 린포체가 설파한 개념인 ‘분주한 게으름’(Active Laziness)을 떠올렸다.[note]링크 페이지의 1월 4일 내용. 출판 번역본이 active를 ‘활동하는’으로 썼지만 나는 ‘분주한’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원문에서 디나 카플란은 영어 콘텐츠를 링크했지만, 마침 같은 내용의 한국어 포스팅이 있어 그것으로 링크했다. [/note]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쌓아두고는 책임감에 짓눌리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린포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사실 ‘무책임감’이다.

첫 번째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나는 이 ‘무책임감’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점심식사에 참석해 1시간 30분씩 허비했다. 중요하지 않은 파트너 관계와 이사회에 참석해 수백여 시간을 낭비했다. 뭔가를 ‘하는’ 데에만 시간을 쏟느라, 무엇을 하고 그것을 왜 하는지에 관해 고민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떤 해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직원 수십 명의 의료보험 등록 서류를 직접 작성했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제대로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지 못해서였다.

지금 되돌아보니 분명히 보인다. 당시 나는 생각을 요구하고 전략이 필요한 일에 내 힘을 쏟기 보다, 시덥지 않은 일에 몰두하면서 나 자신을 “너무 바쁘게” 몰아갔다. 이런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 있다. ‘잡일’. 난 그저 잡일을 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이게 과연 자랑할만한 일일까?

이젠 ‘바쁘다’는 말에 대한 찬양을 멈출 때다.

바쁘다는 것은 삶의 기본 양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온갖 알림에 혹한다. 마치 어딘가에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당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과정은 도파민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진이 빠지게 하고 무척이나 공허한 일이다. ‘바쁨’의 매력은 위험하다. 당신 삶의 기본값이 ‘바쁨’이라면,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가다듬고 내면의 진정한 감정을 알아차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만일 모든 것이 ‘선택’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어떻게 시간을 쓰고, 누구에게 대답하고,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조금 글을 쓸지 모두 선택을 한다면? 하루 목표 달성과 그저 다른 사람의 요구 들어주기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한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줄 알게 된다면, 그것도 꽤 자주 그렇게 할 줄 알게 된다면?

타인의 부탁을 받게 되면 자존심이 올라가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만약 이런 종류의 ‘인정’을 필요로 하거나 그런 욕구를 느끼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대신, 시간과 여유를 따로 떼어내 어떻게든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생산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쁘지 않게’ 계속 유지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바쁨’과 ‘생산성’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리 브래프먼이 ‘카오스 명령'(The Chaos Imperative)에서 말했다시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부터 게임 동키 콩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위대한 발명들은 사실 자기 삶에서 공백을 확보한 사람들의 작품이었다.

당신이 아는 가장 잘나가는 사람한테, 아니, 엘론 머스크나 셰릴 샌드버그, 워런 버핏한테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봤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그 정도 ‘급’이 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바쁘죠.” 대다수 사람의 눈에 그들은 바쁘게만 보인다. 항상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도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들이 하는 일에서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들은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자신의 통제권 아래에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둘째, 그들은 실제로 그런 통제권을 갖고 있다. 훌륭한 직원을 고용하고 심혈을 기울여 업무를 조율한 뒤, 자신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만 시간을 쓴다. 따라서 노력해볼 만한 것 아닌가?

“바쁘다”는 말은 일종의 자백이 되어야 한다. 자랑거리여선 안 된다.

소걀 린포체 같은 불교승에게 ‘바쁨’이란 곧 ‘게으름’이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떤 버릇을 고칠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에 본인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해낼지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업무처리 속도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분산할지에 관해 투명해지고, 핵심이 아닌 것들에 “아니요”라고 말할 만큼 자신감을 갖춘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아마 매일 합리적인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을 통해 당신은 편안하고 전략적이며, 동시에 꼼꼼해진 기분을 느낄 것이다. 허둥지둥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삶이다.

당신이 어느 회사 혹은 부서의 책임자라면, 업무 과정이 덜 바빠지도록 고민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처사다. 아마 의사소통을 효율화하거나 이메일 전송이 가능한 시간 정해두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더 오랜 시간 일하기보다, 합리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 바쁘다고 말하는 것, 좋다. 그런데 만약 ‘바쁨’이라는 게 언덕길을 겨우겨우 올라가는 소형차와 같은 의미라면? ‘좋다’는 게 지하철역 계단에서 유모차 끌어올리는 걸 도와주는 정도라면? 혹은 그저 책 한 권을 읽는 것이라면?

나는 명상을 무척 즐겨 한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묻는다 “운동은 좀 하시나요?”

“그럼요.” 대부분 이렇게 답한다.

1시간짜리 스피닝 수업에 일주일에 3번씩 참여한다면, 샤워 시간과 이동 시간까지 합해 4시간은 더 들어가는 셈이다. 만약 하루 정도는 수업 대신 야외에서 실제 자전거를 30분가량 탄다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30분의 명상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른 게 아니라 결정의 문제다. 명상 대신 스피닝 수업에 참여하기는 곧 정신적 운동보다 신체적 운동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다. 괜찮다. 이건 능동적 결정이다.

늘상 “바쁘다”고 말하는 데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자. 하루 동안 모든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자. 모든 일들을 ‘선택’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지 혹은 하지 않아도 되거나 늘상 하는 습관인지 적극적으로 ‘결정’하자.

다음 단계로, “바쁘다”고 자랑하기를 멈추자. 그러고 나서, 그날 해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 뒤 그것을 행동에 옮기자. 시간과 에너지를 당신이 진정 원하는 곳에 쓰자는 것이다.

다들 명상을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온갖 것들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일 수 있다.

뭔가를 읽고 싶다면, 우선 이번 주에 하루 5분씩 시간을 확보해 보자. 다음 주엔 10분을 확보하자.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하면 되지만, 반드시 실제로 실행해야만 한다. 아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당신이 삶의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본다면, “바쁘다”가 아니라 “아주 좋다”고 대답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잠시 멈춰서는 미소를 지어 보일 수도 있다. 당신에겐 따로 떼어낼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계획한 사람이 당신이기 때문이다.

Categories
번역

대학 내 무분별한 영어 강의를 반대한다

(*2012년 2학기 교내 영어 에세이 대회에 제출했던 것을 1년 반만에 한국어로 번역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일부 내용이 보충, 편집됐다.)

 

매년 중앙일보가 발표하는 대학평가에서 영어강의 비율은 꽤 중요한 기준이다. 영문과 및 다른 외국어 전공학과를 제외한 전체 학부 전공과목 가운데 30% 이상이 영어로 이뤄질 경우 만점이 부여된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처럼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세상에서 영어 강의는 필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무분별한 영어 강의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도 교수도 모두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영어 강의다. 강의 언어로서 영어가 과연 효율적인지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영어 강의는 교육을 위해 좋은 수단이 되지 못한다. 물론 몇몇 학과나 과목에서는 영어가 핵심일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엔 영어 수업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라는 언어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과장하고, 모두에게 영어 사용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는 의문이 든다. 우선 학내 교강사 대다수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질문하길 꺼리는 한국 학생들은 영어 강의에선 질문을 극도로 자제한다. 결국 수업의 질과 효율성 모두 하락한다.

연세대학교의 한경희 책임연구원(공학교육혁신센터), 허준행 교수(토목환경공학과), 윤일구 교수(전기전자공학과)는 지난 2010년 발표한 ‘글로벌 공학인재 양성을 위한 영어강의의 역할과 과제‘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교수와 학생 모두는 영어강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강의에 투입되는 노력과 시간이 큼에도 불구하고 강의 만족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국어 수업에 비해 투자할 시간·노력과 수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자. 학부생은 영어 수업 준비에 2.63배의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았지만 만족도는 70% 선에 그쳤다. 같은 조사 항목에서 대학원생은 1.91배·77%, 교수는 2.11배·74%의 결과를 보였다.

이런 현상은 내가 학부 시절 들었던 수업에서도 일어났다. 참고로 나는 영어영문학과 학생이다. 우리 학과 학생들은 전공이 전공인지라 수업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다른 학과 학생들에 비해 가벼운 편이다. 문제는 수업 시간이다. 뭔가 불분명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나와도, 학생들은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가끔 주어지는 조별 토의 시간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해 답답해하는 장면들이 속출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학생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때 의견 교환의 언어는 물론 한국어다.

영어 강의에 발목 잡히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2009년 교수신문 기사에 의하면 현직 교수들은 ‘번역서+한국어’강의보다 ‘원서+영어’ 강의에서 수업 진도가 1/3수준으로 떨어진다고 공감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카이스트 교수들이 학내 전면 영어 강의 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관련 기사 1·기사2) 박승오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강의는 교수와 학생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며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강의에 집중할 수 없고, 동기 부여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역학’ 교과목을 예로 든다. 기초 응용수학 지식이 필요한 학문임에도, 학생들은 강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영어 실력을 탓하거나 영어를 잘하게 되면 해당 과목을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한국인 교수의 영어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꽤 많은 영어 강의를 수강했지만, 너무나 자주 들었던 말은 ‘You know’, ‘kind of’, ‘sort of’ 등의 표현이었다. 아마 다른 학과 사정은 더 심각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교수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대다수의 교수들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어 모국어 화자들이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이 영어 강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탓해야 할 것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제도’와 영어 강의를 둘러싼 ‘미신’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수업시간에 쓰면 영어 실력이 저절로 향상될 것이다’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 마치 2000년대 초반 한국을 강타했던 영어 공용어화 논리와 비슷하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우리의 영어 실력을 키워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면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라는 당시의 목소리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함께하기 위해 대학의 영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영어로 강의를 하면 될 것이다”라는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다.

이론이나 상상 속에서라면, 영어를 수업 시간에 많이 쓸수록 학생과 교수의 영어 실력은 분명 향상된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한국이 철저한 한국어 중심 언어공동체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순진무구한 기대에 불과하다. 국민 절대다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국어로 생활하고, 거의 대부분의 국내 정보는 한국어를 타고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쓰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생활 반경을 좁디좁은 ‘영어 화자들 속’에 한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영어 학습’과 ‘영어 이용’이 다른 층위에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익힌 외국어의 수준만큼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government, lawmaker, policy 등의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에 관해 영어로 얘기하기 힘들 테다. as well as, rather than, not so much A as B 등의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제아무리 많은 개별 단어를 알고 있어도 능숙하게 자기 생각을 펼치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표현할 만큼의 영어 실력을 미리 쌓았는가이다.

몇 해 전 수강했던 영어학 과목에서, 하루 수업의 핵심은 ‘표준편차’였다. 한국어로 설명했더라면 표준편차는 이해하기에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고등학교에서 배웠을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교수님은 ‘standard deviation’을 영어로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셨다. 학생들도 ‘standard deviation’이 무엇인지 몰라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날 강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에겐 통계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이해할 만한 영어 실력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로 된 통계학’을 몰랐다.

영어 강의가 낳은 것은 영어 실력도 잡고 전공 지식도 확충하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오해와 시간 낭비의 악순환이었다. ‘학술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 자체가 그에 맞는 수준으로 먼저 보장돼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턱대고 영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대학 수업에 걸맞은 수준으로 저절로 향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런 현재의 흐름 외에, 역사적 사실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조선 이래 한반도에서 전 세계가 공유하는 지식이나 철학이 만들어졌는가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뛰어난 학자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들이 당대 학문의 국제 흐름을 주도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중국이 정신적, 학술적 유산을 한자로 차곡차곡 기록하는 동안, 우리는 한자를 차용해 그들을 따라가기 바빴다. 심지어는 한국어에 가장 알맞은 문자인 한글 창제 이후에도 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따라잡는 데만도 여력이 모자랐다. 해방 이후 영어가 대세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60년째 우리의 아버지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따라가기 바쁘다.

이것은 단순히 영어(혹은 다른 외국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 못하기로는 한국 못지않은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1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 실적이 해당 국가의 학문 독창성과 국제 흐름 선도 여부를 100% 나타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대략적인 위상이나 분위기는 반영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독자적 철학이다. 극단적인 사례로는 일본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가 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노벨상 시상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어로 된 물리 용어는 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물리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영어보다는 자신의 본질적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개인의 실력과 독창성은 모국어와 함께 더욱 효과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수많은 사례가 증명한다. 칸트는 3대 비판서를 모두 모국어인 독일어로 저술했다. 이것은 독일어로 쓰인 최초의 철학서였다. 칸트는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남았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도 자기 모국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 결과적으로 영어는 독특한 생기를 부여받았고 셰익스피어는 영원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전자기학의 아버지’ 마이클 패러데이는 제본소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제본소에 들어온 우수한 책들이 “영어로 쓰인” 덕분이었다. 그는 훗날 ‘전자기유도의 법칙’을 알아냈다. 오늘날 대부분의 발전소가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법칙이다. 이렇게 칸트, 셰익스피어, 패러데이는 각자 모국어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일궈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 강의가 적합한지 아닌지를 묻는 목소리 자체가 매우 작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한국은 지금까지의 한국과 다를지도 모른다. 영어가 모두에게 친숙하고 쉬운 언어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통해 독창적인 학문 성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래 세계에서는 영어만큼이나 중국어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관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독창성을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은 모국어를 통해 더 쉽게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과 그 언어를 학술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적정 수준에 다다르지 못한 설익은 영어는 학문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어이없는 해프닝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창의성, 독창성, 그리고 우리의 학문 정체성 등을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할 때다. 얼마나 많은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는가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참고 문헌·기사·자료>

글로벌 공학인재 양성을 위한 영어강의의 역할과 과제 (한경희, 허준행, 윤일구)

‘무늬만’ 강의 늘어 … 교육 質 제고 시급하다 (교수신문 최성욱 기자)

“국제화가 아니라 미국화” KAIST 영어강의 논란 (헬로디디 임은희 기자)

KAIST 교수들 “영어강의는 국제화 아닌 미국화” (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노벨상 수상 마스카와 교수와 영어 (서울신문 박홍기 기자)

일본 노벨상 19명, 과학분야만 16명…비결은? (SBS 유영수 기자)

백종현 교수 “칸트와 함께 ‘이성의 한계’ 너머 희망 얘기할 때”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식민지도 아닌데 왜 영어로 수업하나” (한겨레21 이정훈 기자)

EBS 클립뱅크 :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