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이 같은 일본어의 흔적이 한국어를 풍성하게 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서로 교류하면서 섞이고 스며들며 더욱 탄탄해지고 아름다워진다고 믿는다.
문법 표현
[1]
우리말에 대한 일본어의 간섭은 그 비율 면에서는 비록 어휘 부분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지만 문법적 표현들에도 미쳤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사 ‘-의’의 과도한 사용 문제이며, ‘-에 있어서, -에서의, -(으)로서의’ 등과 같이 조사를 중첩해서 사용하는 표현들도 일본식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다. 다음이 그러한 예문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새로운 도약에의 길/범죄와의 전쟁/앞으로의 할 일/한글만으로의 길/제 나름대로의 기준
[2]
문법 표현 중에 하나로서 접미사 ‘-적’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상도 지적할 만하다. 그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접미사 ‘적’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같은 백화문(白話文) 자료에서 사용되었던 예를 제외하고는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던 말이다. 이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은 일본으로부터 그대로 우리말에 들어와 국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특히 그 용법이나 의미 면에서 일본어와 차이가 나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적’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는 서재극(1970;95-6)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的(teki)「佛-tique, 英-tic」 -的
중국어의 ‘底’에 해당됨. 明治初에 柳川春三이 처음으로 -tic[note]요즘은 이 ‘-tic’ 자체를 한국어 언중이 쓰고 있기도 하다. ‘-틱하다’라는 형태가 주로 쓰인다. 나중에 다른 포스팅으로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자료[/note]에다가 的이라는 字를 갖다 붙었다(科學的, 社會的, 心理的, 目的的 등). -“角川外來語辭典”에서
‘的’字를 쓰게 된 것은 -tic과 的이 音이 닮았다는 것으로 하여 익살맞게(우스개 삼아) 말한 것일 따름. -大規文彦의 “復軒雜錄”에서
이 ‘-적’이 우리말에 유입되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서재극(1970;95)에서는 “상필 일본에 유학했던 자에 의해서일 것이며, 그것이 활발하게 사용된 것은 1908년에 발간 “소년”지에서부터”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 국어의 “왔다리 갔다리”외 ‘-다리’는 일본어 “行ったり來ったり”에 보이는 형태 ‘-たり’의 차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태의 차용은 매우 희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일 양어의 언어 접촉에서는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처 위와 같음
“…있을 수 있다(有り得る), …있어야 할(有るべき), …한(던) 것이다(…たのである)”
송민(1979/33)에서는 현대 국어의 통사 구조 중에 근대 국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적인 구문이 많음을 지적하고 “한편 현대 한국어의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할, -한 것이다’와 같은 통사 구조도 일본어 ‘ariuru(有り得る), arubeki(有るべき), -tano de’aru(-たのである)의 번역 차용이 거의 분명하며…….”이라 하여 이러한 표현이 일본어의 영향에 의하여 이루어진 구문임을 밝히고 있다.
(7)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8) (아이들이) 보아야 할 책이다.
(9)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해 이틀에 걸쳐 읽었습니다. 책에 관한 소개는 출판사의 소개글로 대신하며, 본문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옮겨적겠습니다. 몇몇 부분은 짧은 생각도 덧댔습니다.
출판사 책소개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프랑스어를 통해 그 말 속의 문화적 의미를 반추한 책이다. 단순히 프랑스어 낱말의 뜻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우리 문화와 비교하며 함께 돌아본다. 우리말 속에는 알게 모르게 프랑스어가 많이 숨어 있다. 이러한 단어들을 찾아내고 어원을 밝혀내는 과정은 언어를 통해서 문화적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프랑스에는 “두 가지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문화를 아는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 모르고 사용하면 그저 외래어일뿐이지만, 알고 사용하면 문화를 들여다보는 간편한 렌즈가 된다. <한겨레21>의 파리통신원으로 활동했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한 정치학 박사 최연구는, 이 책에서 낱말이라는 쉽고 친근한 매개체를 통해 프랑스문화와 우리 문화를 톺아보며 지금 여기에서 프랑스적 앎과 삶을 만날 것을 제안한다.
• 샹파뉴
우리나라에서는 샹파뉴를 샴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 어떤 기사를 보면 샹파뉴는 지방의 이름이고, 샴페인은 그 지방에서 나는 발포성 화이트와인의 이름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샴페인은 그저 샹파뉴의 영어식 발음일 뿐이다. (18쪽)
:프랑스어에 대한 필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
• 미슐랭
프랑스인들은 미슐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타이어 제작사이면서도 미식가의 성전으로 불리고 있는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를 발간하고 있기 때문이다. (42쪽)
: 타이어 제작사 미쉐린과 레스토랑 가이드북 이름 미슐랭은 이전에도 각각 알고 있던 것인데, 그 둘이 사실 같은 회사라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 아따블르의 오너
여기 프랑스 지역별로 대표적인 요리들을 소개해본다. 이 내용은 요리사이자 삼청동의 프렌치 레스토랑 ‘아따블르 A table‘의 오너인 필자의 아내 김수미가 월간 <쿠켄> 등 매체에 기고해온 내용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64쪽)
: 함께 프랑스에 정통한 부부라니, 조금 놀라웠습니다.
• 파티시에(르_
그런데 삼순이는 파티시에가 아니다. 프랑스어에서는 모든 명사가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별되는데 파티시에는 남성형으로 남성 제과사를 뜻한다. 삼순이의 겨우 여자이므로 파티시에르가 맞다. (78쪽)
:역시 프랑스어에 대한 필자의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
• 영어 문화권
‘마이웨이’도 마찬가지다. 앵글로색슨의 영어 문화권에만 길들여져 그 밖의 문화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지한 우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다. (89쪽)
: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 역시 프랑스문화와 프랑스어에 무지한 입장인지라, 마치 혼나는 느낌이라 읽으면서 썩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 요리와 과자
프랑스어로 사용되는 요리 이름은 너무나 많다. 메뉴menu 부터가 프랑스어다. 과자 상표에서도 프랑스어는 자주 사용된다. ‘몽쉘통통 mon cher tonton: 나의 친애하는 아저씨‘, ‘뽀또poteau: 단짝‘ 등이 있고, 제과 체인점인 ‘뚜레쥬르tous les jours‘는 ‘매일매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93쪽)
• 카바레, 살롱, 마담
생각해보면 프랑스어의 카바레, 살롱, 마담 등의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모두 향락산업과 관계가 있다. 이 단어들이 이역만리 한국에서 선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이상한 용어로 둔갑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엄청나게 다혈질인 프랑스인들은 격분할지도 모르겠다. 카바레, 살롱, 마담 같은 말은 프랑스에서는 한없이 문화적이고 고급스런 말이며 또한 역사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특히 살롱은 역사적 산물이며 지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114쪽)
• 세무와 샤무아
우리가 세무로 부르는 용어는 프랑스어 샤무아chamois의 일본식 발음이다. (141쪽)
• ‘데님’의 유래
청바지 소재의 명칭 ‘데님’도 프랑스어에서 유래한다. (…) 어원을 따져보면 프랑스어의 드님de Nimes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드de는 ‘~의’를 뜻하고 님은 프랑스 남쪽의 도시 이름으로 마르세유와 몽펠리에의 중간쯤에 있는 랑그독 지방의 도시다. 데님은 바로 이곳에서 난 질긴 옷감이다. (142쪽)
• 마Ma와 몬Mon
인기 걸그룹 씨스타의 노래 중에 ‘마보이Ma Boy‘란 노래도 잘못된 표현이다. 프랑스어의 여성 소유격 Ma와 영어 Boy가 국제적으로 결합하면서 K-Pop 인기가요의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문법적으로 따지면 매우 혼란스러운 제목이 아닐 수 없다. (163쪽)
: 이 부분은 나름 재미로 넣으신 것 같은데, 조금 부담스럽다고 해야하나…
• 벨로
바퀴가 직경 20인치 이하로 작은 자전거를 미니벨로라고 통칭하는데, 벨로velo는 프랑스어로 자전거를 뜻한다. (185쪽)
• 부케
프랑스어 ‘부케bouquet‘는 ‘꽃다발’을 의미한다. (201쪽)
• 샴페인
어떤 도시에서는 와인이나 고급 샴페인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207쪽)
: 원고에서도 “샴페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저자가 샹파뉴라고 쓴 것을 편집자가 샴페인이라고 고친 것일까요.
• 쿠데타
그러나 정작 쿠데타라는 용어의 본산지인 프랑스에서는 쿠데타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고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군부세력에 의한 불법적인 권력 장악을 표현할 때 ‘푸치putsch‘라는 독일어를 더 많이 쓴다. (241쪽)
• 외교 용어
그래서 지금도 외교 용어에는 프랑스어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외교에서 영어가 프랑스어를 밀어내고 새롭게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249쪽)
• 톨레랑스
톨레랑스는 동양적 의미의 너그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톨레랑스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 방어의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 개념이다. 이견이나 차이에 대한 의도적 용인에서 끝나지 않고, 이견과 차이의 존중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의무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톨레랑스가 있는가? 있다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톨레랑스가 주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색깔론만 봐도 톨레랑스의 사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좀 우스개 소리지만 회사의 단체회식으로 중국집에 가서 다들 짜장면을 시켰는데 누군가 볶음밥을 시키면 눈치주는 분위기나 부장이 “자, 다들 먹고 싶은대로 시켜! 근데 나는 짜장면.” 이라고 하면 모두 짜장면을 시키는 것도 톨레랑스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톨레랑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치열한 고민과 갈등을 거치면서 정착되는 성숙한 문화다. (254~255쪽)
읽은 기간: 2015년 2월 9일 ~ 2015년 2월 10일
정리 날짜: 2015년 2월 10일
물론 지난 4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헤라클레스 : 레전드 비긴즈‘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영화의 흥행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 ‘허큘리스’ 수입 배급사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어쨌거나 수십년간 ‘헤라클레스’였던 영웅은 이제 한국에서도 영어식 발음에 따라 ‘허큘리스’가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불릴지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닌자터틀’이 있습니다. 한국인 대다수에게 친숙한 이름인 ‘닌자 거북이’를 버리고 왜 굳이 ‘닌자터틀’이란 제목으로 개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급사 내부에서 나름의 논의 끝에 결정한 제목이겠지만…어색한 느낌은 가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실 영화뿐 아니라 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 전반에 영어식 제목이 대세를 이룬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언어 민족주의에 심취했던 4년~5년 전쯤엔 그런 변화들이 못마땅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대중의 언어 사용을 제약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시도를 더 반대합니다. 언어는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한국의 언어’생활’이 계층화될 가능성입니다. 이것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다뤄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이젠 위와 같이 영어식으로 바뀌어가는 각종 제목들을 볼 때면 그저 관찰을 합니다. 놀라워하기도 하고, 어색해하기도 하면서요. 뭐 가끔은 옛날 감수성이 되살아나서는 영어식 이름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합니다^^;
아마 저 말고는 별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아래 같은 신문기사도 잘 나오지 않으니까요.
일간스포츠 1999년 1월 16일 지면 기사. 예전에 어느 음식점 화장실에 걸려 있던 신문스크랩입니다. 그 식당이 소개된 지면이었지만, 저는 맛집소개 기사보다는 ‘뜻모를 외국영화 제목’이란 기사에 더 눈길이 갔지요.
*둘 다 지난해 한글날 즈음 페이스북에 작성했던 글인데, 평소 내 생각이 잘 드러났기에 페북 피드에 묻히게 방치해두고 싶지 않아서 옮긴다. 원문을 그대로 복사했기 때문에 평소 블로그 글의 어투와는 차이가 있다. 오타나 어색한 표현을 제거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정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썰 2번에서 말했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
[1]
한글날을 맞이해 온 언론이 들썩들썩..
딴지걸고 싶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애들이 말을 줄이든 말든 신경좀 꺼. 아주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 세대 간 언어차이는 단군 이래 항상 존재했던 현상. 반대로 생각좀 하면 어디가 덧나나?
‘애들이 쓰는 말을 어른이 못알아듣는다’만 때리지만, 사실 어른들이 쓰는 말도 애들은 못알아듣습니다. 이 글 보는 분들 중에 ‘후앙’이 뭔지 아는 사람?
2. 한글이랑 한국어좀 구분해서 썼으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한글은 맞지만, 한국어는 그냥 언어들 가운데 하나일 뿐. 다만 한국어는 언어 자체로 봤을 때 좀 특이한 구석이 있음– 도통 뿌리를 찾기가 힘듦: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게 일단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음. 물론 그 반론의 성격은 ‘알타이 어족’으로 보기 힘들다’는 정도지, 한국어의 뿌리를 다른 어딘가에서 찾아오지느 못하고 있음
3. 외래어는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그 의미가 나타내는 바를 현실 속에서 ‘우리화’하려고 노력해야할 대상이지 배척해야할 ‘찌꺼기’ 가 아니다.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이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새끼 재수없다’는 느낌을 들게 하거나 ‘ㅄ 뭔소리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무한정 늘어나기가 힘들다고 생각함.
4. 한국어/한글 지키기는 공교육 국어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으니 한국어단체 관계자분들은 쓸데없이 방송 나오거나 캠페인 벌이지 말고 교육부를 조지세요. 정갈하고 아름다운 한국어 시, 소설, 산문을 읽고 자란 학생은, 말하지 말라고 해도 매끄럽고 명확한 한국어 문장을 말하고 쓸 겁니다.
5. 그리고 글쓰기 교육좀…. 한 편의 글에 주어-술어 불일치는 기본이며 각종 비문이 넘쳐나는 경우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다. 학생들한테 글을 쓰게 시켜봤어야지… 영어랑 한국어를 비교하면 난 그래도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어를 더 좋아하지만, 적어도 글쓰기 문제에 관하자면 우리나라는 미국/영국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비록 유래가 서양일지언정, ‘섹스’는 한국 사회가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동안 꾸준히 한국어 사용자들의 어휘 목록에 자리잡았으며, ‘성행위’, ‘성관계’보다 훨씬 친숙한 일상어가 됐다.
그리고 인터넷의 확산과 자유분방한 사회 풍조에 따라 ‘섹스’는 여러 단어와 결합하며 한국어 사용자들의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것들이 음지에 한정돼있고, 대부분 음담패설과 관련돼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섹스’의 형용사형 단어 ‘섹시’는 이미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아주 일상적인 한국어다. ‘야하다’는 말에 담긴 천박함과 ‘성적 매력이 있다’는 말의 노골적임을 피할 수 있는 단어다. ‘섹시’를 한국어 어휘에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제거했을 때 우리 언어 생활은 불편해지면 불편해지지, 결코 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섹스’는 ‘드립’과 결합해 ‘섹드립’이라는 절묘한 조어까지 낳았다. 신동엽이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그건 낮에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거나, 사이먼디가 “다이어트 할 뻔 했는데”라고 말하는 모습을 두고 우리는, 그리고 각종 매체는, 아무렇지 않게 ‘섹드립’을 내뱉었다 칭한다.
‘야한 농담’과 ‘음담패설’이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섹드립’에서는 감지되지 않는다. 물론 몇몇 순진무구한 영혼들이나, 외국어 사용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일부 한국어 순혈주의자들은 ‘섹드립’이라는 단어가 2013년 일상 한국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사실이 불편하겠지만.
정리하자면, ‘섹스’는 자연스러운 한국어 단어다. 그것도 다른 단어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한국어 단어.
상황이 이럴진대, ‘섹스’를 ‘니디티’로 바꾸자는 노력은 헛수고에 수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특정 단어와 그에 얽힌 행위가 금기시되는 현상은 현실 세계의 노력으로 개혁해야지, S-E-X에 해당하는 한글 자판 ㄴ-ㄷ-ㅌ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개혁할 수는 없다.
마치 ‘왕따’를 대신할 말을 만든다고 해서 왕따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혹은 ‘병신’을 대신해 ‘장애인’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한국 장애인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것처럼.
3. 문제는 무엇인가? 일본식 한자 읽기와 한국식 한자 읽기가 다르다. 일본어에선 의미 이해에 방해되지 않을 한자 개념어들이 한국어에선 의미 이해를 방해한다.
예)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영문법 용어에 쓰이는 ‘부정’이라는 단어: 부정관사와 부정사.
한국어에서 ‘부정’이라고 말하면 보통은 1)’올바르지 않음'(不正) 2)’그렇지 않다'(否定)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유독 영문법에서만 ‘부정’이 3)’정해지지 않음'(不定) 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평소 언어 습관과 판이하게 다른 ‘부정’관사와 ‘부정’사의 뜻을 접하면서 혼동을 겪는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 영문법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결과다. 일본어에서는 세 단어의 발음이 모두 달라서 이런 혼동이 없다.
1)’不正'(올바르지 않음)은 ‘ふせい fusei’라고 읽는다.
2)’否定'(그렇지 않다)은 ‘ひてい hitei’라고 읽는다.
3)’不定'(정해지지 않음)은 ‘ふていfutei’라고 읽는다.
4. 극복 방안은?
지금껏 해왔듯 영어 수업시간에 매번 한자 뜻 풀이를 한다.
새로운 한국식 번역어를 만든다.
문법 용어를 그냥 영어로 쓴다.
…?
* 한자를 거의 모르고 일본어를 완전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일본 논문을 직접 찾아보면 도움이 될 텐데…
위키피디아 ‘Musketeers of the Guard’의 대표 인물 항목(바로 가기)에 따르면, 일단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들은 모두 ‘Musketeer’가 맞다.
그리고 위키피디아 ‘Musketeer’의 프랑스편 하위 항목(바로 가기)에 있는 이미지를 보면 그들은 언제나 총기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같은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프랑스의 Musketeers는 “1622년 루이 13세[note]루이 8세라고 잘못 썼던 부분입니다[/note]가 경기병(Light Cavalry) 중대에 머스킷을 공급하면서 창설”됐다는 설명이 있다.(They were created in 1622 when Louis XIII furnished a company of light cavalry with muskets)
그리고 “말, 총, 의복, 하인과 각종 장비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머스켓과 그들 고유의 파란 옷만 국왕에게서 제공받았다”라는 말도 나온다.(These included the provision of horses, swords, clothing, a servant and equipment. Only the muskets and the distinctive blue cassock were provided by the mon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