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미덕인 독서방법론 안내서

고영성 작가님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었습니다. 5년 전쯤 읽었던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와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이후 세 번째로 읽은 독서방법론 책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입니다. 독서를 하면 무엇이 좋은가, 그리고 그 독서를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 책은 굉장히 성실한 태도로 길잡이 역할을 자처합니다. 길안내에서 나침반으로 삼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선별한 연구 결과와 각양각색의 일화들입니다.

대부분의 독서법 책들은 ‘나는 이렇게 독서를 해서 효과를 보았다. 역사적 위인과 여타 유명한 사람도 이렇게 독서를 하더라. 그러니 당신들도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라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저자 자신(혹은 유명인)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에게도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나에게도 좋은 것이 너에게도 좋다’는 ‘보편성’을 다루려면,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저자의 주장대로 실천했을 때, 저자가 보았다는 효과를 독자도 맛볼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말이다.

-서문에서

얼마나 자신만만하길래 서문에서부터 이런 수준의 선언을 하나 궁금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사실 잘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연구결과와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한 페이지 건너 한 번씩 나오긴 하지만, 그것들이 꽤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보니 ‘인용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162쪽에 가서야 저자가 이 책에 어느 정도로 큰 정성을 쏟아부었는지를 뚜렷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중반까지 오는 와중에 ‘독서’ 한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인 실험과 이야기의 범위가 아래처럼 광범위한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독1을 통해 내가 건진 콘텐츠

독아: 카페에서 연인들의 신체 접촉, 조지 피터 머독과 도널드 브라운의 인간의 보편성, 의사수족증, 펜필드의 뇌지도, 뇌의 가소성, 핫도그 먹기 대회, 드웩 교수의 아이들 실험, 칭찬의 역효과, 분홍색과 파랑색, 감옥 실험, 동전 던지기 실험

다독: 미엘린네이션, 오디세우스, 소칼의 엉터리 논문

남독: 서울대학교 이야기, 화난 원숭이 실험, 파일럿 지능 실험, 키티 제노비스 사건, 로 데 웨이드 판결, 공감각, 자유연상 실험, 간질 환자의 뇌, 다프니아의 생식, 탄소의 연결성,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력, 범주화, 천동설과 지동설, 자기 과대평가

만독: 엘리엇 이야기, 감정의 정보 인식, 리처드 코트의 예언

관독: 제니퍼 톰슨 강간 사건, 조이 보토 포볼 해프닝, 월터 개즈던 사진, 카그라스 증후군, 시각 경로, 안구구조, 스푸트니크 쇼크와 GPS, 관찰의 인문학, 플림프톤322, 피타고라스, 올리버 색스와 투렛 증후군

162~163쪽

이게 ‘독서와 직접적으로는 관련 없’지만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진전시키기 위해 끌어들인 인용의 규모입니다. 그것도 책 절반을 조금 넘은 순간까지요.

이제 한국에서도 영미권과 마찬가지로 독서 방법론에 관한 고전이 하나 탄생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미권에서는 독서 방법론의 고전으로 누구나 손꼽는 책이 있습니다. 모티머 애들러의 ‘How to Read a Book‘입니다. 1940년 초판으로, 1971년 개정판으로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독서 방법론계 불후의 명작입니다.

번역서는 두 종류가 있는데, 범우사판은 완역이 아니었고 멘토판은 완역이되 번역이 너무 부실한 책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고영성 작가님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정말 반가운 독서 방법론 서적입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이며, 근거가 다수 제시되고, 근거가 과학적으로 타당하며, 또 제시하는 태도가 굉장히 성실합니다. 읽다보면 저자에게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근거와 함께 독서에 관한 생각을 스스로 정립·교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 책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자기 취미에 대한 이론적 해설을 맛볼 수 있기에 즐거울 만한 책이고, 독서 입문자에겐 아주 효과적인 길잡이가 되어줄 책입니다. 그리고 독서 무용론자들 역시 마음을 열고 읽어보시면 생각이 바뀌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읽은 기간: 2016년 6월 7일
정리 날짜: 2016년 6월 8일

  1. 이게 무엇인지는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