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헌책방

지난 2015년 6월에 써놨던 기록입니다. 결국 이 서점은 2016년 4월 문을 닫았습니다. (기사)


BookBuyers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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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달 째 머물고 있는 도시인 마운틴뷰는 현재 전 세계 IT의 흐름을 좌우하는 ‘실리콘밸리’의 주요 도시다. 거리 어디에서나 ‘Google’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고, 중심가 도로에선 잠깐 사이에도 테슬라 모델S와 시험운행 중인 구글 무인차가 한두대씩 지나 다닌다.

하지만 마운틴뷰라고 해서 IT기업과 그 직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도 ‘동네 주민’이 있고 ‘동네 가게’가 있으며, 그 중에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어제 방문한 헌책방 ‘북바이어스'(BookBuyers)다.

누가 읽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되고 초라해 보이는 페이퍼백 책부터, 엄청나게 두꺼운 옥스포드 대영영사전까지 무척 많은 책을 진열해놓고 있었다.

그와중에 내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진열장 옆에 붙어있던 종이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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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바이어스 25주년..올해가 마지막일까요?

북바이어스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았습니다. 서점 운영을 항상 기쁘게 생각했지만, 이 일이 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인터넷과 전자책의 등장, 높아진 임대료와 최저임금 등의 이유로 북바이어스를 유지하는 것은 점점 치열한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운영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단계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늘어만 가는 어려움을 마주하며, 저희는 지난 2년간 가격을 낮추는 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희는 다른 중대한 변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지역 서점으로 앞으로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줄 변화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웹사이트를 개편했으며, 매장 내 거실 공간(Living Room area)를 새단장했습니다. 연중 계속되는 이벤트를 기획했고, 더욱 다양한 제품에 추가 할인을 적용하고 그 폭도 크게 잡았습니다. 또한 매장 내 인테리어도 가꿔 나가는 중입니다. 세 달 후에는 완전히 새로운 북바이어스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지역 공동체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다시 가치를 줄 수 있게 되어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상품을 매력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겠죠. 지역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에게도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드리려 합니다. 저희 서점에 방문해 책을 구입해주세요. 무료로 제공되는 다양한 이벤트를 함께해주세요. 큰 폭의 할인을 계속해서 누려주세요. 그렇게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친구, 이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찾아주세요. 마음에 들었던 점, 여러분의 지역 서점에게 바라는 점 모두 새겨 듣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을 보태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호트란사 어자야(Hotranatha Ajaya)

 

영어 작문과 영문법 서적을 둘러보다가 두 권을 골랐다. 내가 요즘 한국어판으로 읽고 있는 ‘먹고, 쏘고, 튄다’의 원서 ‘Eats, Shoots, Leaves’와 간결한 영어 글쓰기의 좋은 길잡이인 패트리샤 오코너의 ‘Woe is I’를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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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과 함께

계산대에는 글 맨 위에 올린 단체사진에서 왼쪽 아래에 나온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분에게 “한국에서 잠시 출장 왔고, 이 번역본의 원서를 사 간다. 앞으로도 쭉 이곳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분 역시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이 서점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타트업? IT? 테크? 이것들이 바꿔 나가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이 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낡은 것이 나쁜 것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왜 그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까. 대학에서 배운 게 읽고 쓰는 것뿐이라 이런 걸까. 일상 생활에서 기술 수용도는 또래보다도 빠른 편이고, 스타트업 하겠다고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는 두 달 만에 실리콘밸리에 오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걸까.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