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네 권, 그리고

최근 한 달 조금 넘는 사이에 이런 책들을 읽었습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사실 그 이전 11월 중순께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마무리한 게 12월 중순이니 이것까지 포함했습니다.

한 권 한 권 서평을 쓰면 좋겠지만, 시간과 여유가 많지 않아서 네 권의 책에 관해 짧게짧게 기록만 해둘까 합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꼭 이 네 가지를 한 번에 읽겠다고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는 2012년부터 읽겠다고 벼르던 것인데, 개인 사정으로 11월에 시간이 좀 나면서 읽기 시작했던 책입니다.

문자의 발명과 문자문화의 성립, 그리고 인쇄문화의 성립이 인간의 기억 방식, 지식 운영의 방식, 세계 인식의 틀, 추상적 사고의 발달 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품입니다. 책 곳곳에 플라톤의 저작이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뒷세이아, 몇몇 소포클레스 비극 등 등 고대 그리스 작품이 많이 언급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나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읽기 다소 버거울 수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무래도 루리아(A. R. Luria)가 1931년 구소련 어느 오지 마을에서 수행했던 연구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오지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문맹으로, 평생 글자를 쓰거나 읽어본 적이 없으며 모든 정보전달은 음성언어로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추상’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머·톱·나무·손도끼 등을 보여주며 공통점을 말하라고 했더니, 그 마을의 사람들은 ‘연장’의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다. 대신에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톱은 나무를 썰고, 손도끼는 통나무를 가르죠. 굳이 내게 어느 한쪽을 버리라고 하면, 손도끼가 될까? 톱은 여러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사물을 ‘정의’하는 것도 구술문화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무’가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어째서 그래야 하죠? 나무가 어떤 것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거든요. 누구도 나한테서 그런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거든요.” 나무를 두 단어로 ‘정의’해보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두 단어로요? 에, 사과나무·느릅나무·포플러나무가 되려나?”

인터넷 시대 ‘말과 글’의 기묘한 동거(진중권, 주간동아)

진중권 교수가 지난 2005년 주간동아에 기고한 이 책의 서평 중 일부입니다. 이처럼 ‘문자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문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것 외에도 흥미로운 사례와 주장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책입니다. 책이 중요한 문화자산이라거나,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읽기라는 행위가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생각의 지평이 굉장히 넓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유리감옥

디지털 문화 어그로꾼(…) 니콜라스 카의 두 번째 문제작입니다. 다만 첫 번째 책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말입니다.

첫 번째 책을 읽고 나서 굉장히 큰 감명을 받고 서평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이용, 균형을 찾아야 한다 – 뇌를 위해)

전편이 하이퍼텍스트라는 문서 양식과 인터넷이라는 통신 도구가 우리의 두뇌와 인지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탐구였다면, 이번 책은 기계 자동화와 소프트웨어 자동화가 인간의 인지와 능력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표지에 스마트폰이 있고 제목이 ‘유리감옥’이라서 스마트폰만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모든 자동화 문화에 대한 비판입니다. 자동화 기술이 어떻게 인간 고유의 감각, 지각, 능력을 퇴화시키고 그에 따라 인간성을 침식한다는 것입니다.

주요 지형지물이 거의 없고, 눈의 모양이 계속해서 변하며, 하룻밤만 지나면 걸어온 흔적들이 사라지는 광활하게 펼쳐진 척박한 북극 지역을 이누이트 족 사냥꾼들은 무사히 돌아다닌다. (…) 이누이트 족이 길 찾기에 능한 이유는 그들이 기술력(그들은 지도나 나침반 같은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았다)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바람, 적설 패턴, 동물의 행동, 별, 조수, 기류 흐름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각의 대가들이다. 적어도 과거에 그들은 그랬다. (…)

칼턴 대학의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클라우디오 아포타는 다년간 이누이트 족 사냥꾼들을 연구해왔다. 그는 위성 내비게이션의 이점이 매력적이지만, 이누이트 족들이 그 기기를 사용하면서 길 찾기 능력이 퇴보했고,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땅에 대한 감각이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한 부족이 갖고 있던 뛰어나고 특별한 재능이 앞으로 불과 1~2세대 만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도 감히 무리가 아니다.

188~190쪽 부분 발췌

최근 자동화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자율주행차 아닐까요. 자율주행차에 관한 주류 기술 옹호론자들과는 다른 시각도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전체적으로 저와 같이 인문계열을 전공한 분도, 그게 아니라 이공계 특히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신 분들에게도 모두 추천합니다.

다만 분명한 단점도 있습니다. 니콜라스 카는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인 사례로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의 핵심 주장은 명료하지만, 그 핵심 주장과 하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가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그러는 와중에 때로는 비약도 종종 발생하고요. 이런 점만 가려서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사피엔스

올 겨울 독서 커뮤니티에서 최대 관심작 아닐까 싶은 책입니다. 하고싶은 얘기는 많은데.. 그냥 읽어보세요. 무조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인류 역사와 문명에 관한 그 어느 책과도 다른 독창적인 시각의 책입니다. 한국어로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정말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의심이 든다면.. TED 영상 하나랑 인터뷰 기사 하나 일단 읽어보세요.

 

[다가온미래] “사피엔스는 이제 神이 되려 한다”(조선비즈, 전병근 인터뷰)

여기서 흥미를 느끼셨다면, 바로 ‘사피엔스’를 펼쳐보세요. 본편 시작입니다.

궁극의 인문학

사피엔스를 다 읽고 나서 뭘 읽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띄어서 바로 집어든 책입니다. 작년 여름에 구했는데, 읽기는 이제야 읽었네요.

사피엔스를 얘기하면서 소개했던 기사의 인터뷰어, 전병근 전 조선비즈 지식문화부장의 인터뷰를 모아서 발행한 책입니다. 저 책을 읽고 나서 왜 눈에 띄었는지 아시겠죠?

부제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9인의 사유와 통찰’이 정말 딱 들어맞는 책입니다. 일간지 지면에 진지한 기획으로 실렸던 인터뷰들인 만큼, 너무 얕지도 않고 너무 깊지도 않고 적정 수준에서 독자의 지적 흥미를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이태수, 김대식, 유발 하라리, 주경철, 토마 피케티, 조너선 하이트, 김정운, 송길영, 정민 등 자기 영역에서 단단한 내공을 쌓아올린 9명의 이야기는 시작점과 종점이 모두 다르지만 그 사이사이 교차 지점이 무척이나 많이 등장합니다.

제각각이라고는 하지만, 한데 모아놓고 보니 신기하게도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없지 않습니다. (…) 가령 이태수 교수는 “인문학이란 게 본래 항상 근원을 캐려 드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 하게 돼 있다”고 말하고, 주경철 교수는 역사가를 일컬어 “인간의 내밀한 심층에 대해 살펴보고 사회에 대해 해석해주는 우리 정신의 무당 같은 존재”라고 부릅니다. (…)

이태수 교수는 고전에서 출발했지만 인공지능과 트랜스휴머니즘과 대결하고, 김대식 교수는 뇌과학에서 시작했으면서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같은 고도의 철학적 질문에 육박합니다. 하라리 교수가 인류의 시작과 미래를 아우르는 빅히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피케티 교수는 자본주의의 빅히스토리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읽어내고, 송길영은 빅데이터에서 사회 변화의 큰 흐름을 짚어냅니다.

서문

네 권을 읽고

인류가 문자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전의 세계와 어떻게 달라졌는와 바로 그 문자 덕분에 ‘문명’이라는 것을 발달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구술문화와 문자문화’), 그렇게 지속된 문자와 인쇄 기반의 문명이 디지털 소프트웨어 자동화 시대에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고(‘유리감옥’), 이 모든 것이 호모 속의 사피엔스라는 종으로서 우리가 그려온 궤적이라는 사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고민할 수 있었고(‘사피엔스’), 그와 관점에서 9인(유발 하라리 를 빼고 전병근을 다시 더해, 9인) 인류 문화를 다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궁극의 인문학’)였습니다.

당분간 독서는 좀 멈출 생각입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통해 무언가를 읽는 것은 계속하겠지만,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은 일단 쉴 생각입니다.

올해 목표를 조금 진지하게 운동으로 바꿔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만 7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에서 욕심이 나서 책은 집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운동은 그렇게 되지가 않네요. 체지방도 덜어내고,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균형잡힌 몸을 위해 운동에 전념해보려고 합니다. ‘읽고 쓰기’처럼 ‘운동하고 쓰기’로 뭔가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