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짓말

스타트업에 관한 강연과 글로 활동하는 뮌헨 출신의 블로거 얀 지라드가 쓴 글을 번역했습니다. 원작자의 허락을 받았으며, 자연스러운 한국어 글이 될 수 있도록 약간의 의역을 포함시켰습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생활방식, 문화에 대한 자아비판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디지털 노마드에 동경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 세 달 반 동안 나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는 동시에 업무도 하며 지내고 있다. 음.. 최소한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나는 내 소개를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물론 나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이 아니기도 하다. 어떤 게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저 디지털 노마드라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내가 거쳐간 곳은 태국,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였다. 이런 멋진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시간이 꽤 걸리는 새로운 작업들과 함께 다른 모든 업무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무척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배운 것은, 여행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걸 창조하기란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도 원래 무척 힘든 작업이다. 뭐가 문제고 뭐가 방해가 되는지 잘 알고있는 환경에서도 그럴진대, 여행 기간에 뭔가를 만들어내기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는 중에는 모든 것이 더 버겁게 다가온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 꼭 해야할 일들, 꼭 관람해야할 것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이런저런 장벽들, 모르는 것들, 또는 각종 장애물까지. 모든 것이 매번 더 우리를 버겁게 한다.

그리고 당신이 인터넷에서 읽어봤음직한, 디지털 노마드가 얼마나 멋진 삶인지에 관한 글들은 일단 다 거짓말이다. 당신에게 뭔가 제품을 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혹은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이나 특정한 서비스, 그것도 아니면 코칭 세션 등을 팔기 위한..

그들은 당신에게 ‘꿈’을 팔아넘기려 애를 쓴다. 다른 말로 하면 ‘라이프스타일 패키지’일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유 패키지’, 하여간 온갖 이름을 갖다붙인 패키지들. 한 달 99달러에 모십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자유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나. 클릭 몇 번으로 자유를 산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자유에 대체 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자유(freedom)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 아닌가. 그것도 무료로(for free).

세상은 분명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모든걸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최근의 시간들을 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간 경험하고 배운 것들 역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분명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저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간다는 게 대체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그림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 해변가에서 일하기

당신이 인터넷에서 봤음직한 해변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사진은 정확히 말하자면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에어컨이 없는 뙤약볕에서 이메일을 확인하려고 시도해봐라. 몇 분 안 가서 죽을 것 같다고 느낄 것이다.

에어컨 없이 해변가에서 일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그런 끝내주는 장소들은 에어컨 없이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곳들이다.

믿기 어렵다고? 그렇지 않을 거다.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름날 야외에서 한두시간 정도 업무를 해봐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단박에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업무와 여행

머무르는 지역을 바꿀 때마다 당신은 며칠의 시간을 손해 볼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있어도 일을 하는 데 쓸 수는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도시에 갔으면 그곳을 둘러봐야하지 않겠는가.

혹시 그런 쪽에 취미가 없다고 해도, 당신은 그 도시에서 간단한 생필품은 어디서 사야하는지, 어디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지 등을 새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삼시세끼 다 맥도날드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2주에 한 번씩 지역을 바꾸면서 규칙적인 업무 패턴을 지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대충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나의 업무 스타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끔은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방문한 도시가 맘에 들지 않거나, 호스텔이 거지같을 때면..

이걸 생각해보면 쉬울 거다. 사무실이 아닌 곳들에서 ‘일’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이다. 그래, 때론 집에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집안이 완전히 통제된 환경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소한 몇 가지만 틀어져도 집중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 거주

거주지로서 괜찮으면서 일까지 할 수 있을만큼 괜찮은 장소를 찾는 것 역시 무지막지하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여기에서 인터넷은 사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뭐 에어비앤비로 해결할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엔 진짜 집이 거의 없다. 최소한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에선 그랬다. 대개는 호스텔의 도미토리 광고였다.

그리고 에어비앤비에 괜찮은 실제 거주용 아파트가 올라왔다고 해도, 지낼만한 곳들은 예약이 꽉 차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잠은 호스텔에서 자고,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하는 것 역시 썩 괜찮은 대안이 아니었다. 시도는 해봤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스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또 호스텔에서 자는 경우엔 제대로 숙면을 취하기가 힘들다. 다음날이면 일을 하기엔 너무 피곤하기 일쑤다. 귀마개를 끼고 잔다고 해도 별 수 없었다.

게다가 매일 스타벅스에서 커피 다섯 잔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돈이 많다면 모르겠다만.. 매번 호텔에 투숙하는 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싼 것과 같은 이치다.

# 고립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서 나 자신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내가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단기 렌트를 할 수 있는 아파트나 그 외 괜찮은 장소를 찾아서 100%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였다. 마치 지금처럼.

지난 이틀간은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려고 다가오는 호스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다른 모두가 재밌게 놀고 있을 때, 모두들 술 한 잔 걸치고 파티를 즐길 때,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세 달 반 사이에 나는 파티에 겨우 두 번 갈 수 있었을 뿐이다.

결론은 이렇다:

뭔가를 해내고 싶다면,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다면(그저 관리하기 말고), 남들 하는 걸 똑같이 즐기면서 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냥 집에 있었어도 뭐…

# 외로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마치 꿈 속에서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개소리'(bullshit)라고 한다. 이런 삶의 방식, 진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무척 외롭기도 하다. 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외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이상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데에 걸림돌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외로움일 것이라고 본다. 오랜 시간을 고독하게 보낼 줄 모른다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절대 당신에가 맞는 방식이 아니다.

# 루틴

업무를 제대로 마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는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곳저곳 지역을 옮겨다니는 동안에는 이런 루틴을 지키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나에게 루틴을 지키는 건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한 원칙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뭔가를 계속 하는 것! 개인적으로 효과를 본 방법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걸 발행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스 이동으로 써버렸는지, 그날 무슨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한 번 이걸 해내니까, 점차 다른 일들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엔, 루틴을 정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뭔가 제대로 해내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중요한 걸 살펴보자.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 이건 당신에게 꿈을 팔아서 지갑을 채우는 사람들이 부추기는 것이다. 끝내주는 삶, 디지털 노마드라는 꿈!

디지털 노마드 현상에 버블이 끼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한 명만 나에게 소개해달라. 단, 그 사람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홍보하고 뭔가 팔려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자유 패키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인터넷 강의, 무슨무슨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티켓, 다 안 된다.

진짜 성공적인 디지털 노마드족,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그들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뽐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고, 그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다.

#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내가 보고들은 바로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프리랜서 활동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몇 년에 걸친 활동과 노력으로 당신의 이름값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고, 당장 내일 어느 섬나라에 가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 주위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세우고, 작업물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채워야 한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자유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인터넷 강의 수강하는 시간보다는 훨씬 오래.

# 관리 vs 설립 (management vs. building)

디지털 노마드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도 있긴 하다. 이미 잘 돌아가는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것이다.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로 변신하에 앞서서 이미 설립하고 궤도에 올려놓은 비즈니스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온라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은, 그 시작을 여행과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는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상품화한다거나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경우엔 얘기가 통한다. 실제로 시장에서 그런 상품이 팔리니까. 아마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비즈니스가 아닐까 싶다.

그게 바로 소위 디지털 노마드들이 그 길로 들어선 이유다. 음..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하니까. 또 나는 이처럼 돌아가는 것들을 진지하게 믿는 편이다.

난 그저 당신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열풍에 마음을 쏟기 전에 몇 가지를 알아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걸 믿게 되기 전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믿기에 앞서서 말이다.

  • yagatino

    아주 잘 읽었습니다. 디지털노마드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아름다워서’ 그리고 무엇인지 잘 몰라서 사람들이 더 끌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떠돌아다니는 시간만큼은 아무 것도 제대로된 작업물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말이네요. 루틴을 만들어라. 라는 조언이 제일 와닿네요.

    • 루틴에 갇혀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못해도 문제지만, 아무 루틴 없이 그때그때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는 것도 문제겠죠. 이런 도발적인 글을 읽을 때면 결국 균형이 중요하구나, 라는 걸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Pingback: [반박] 디지털 노마드라는 거짓말 + - 노매드KJ의 유목생활()

  • Kyoung-jin Yoon

    안녕하세요, 번역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 2년째 여행하며 일을 함께 하고 있는 여행자입니다. 윗글에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해서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http://nomadkj.kunstbada.com/archives/902

  • Pingback: 어느 리모트 직장인의 고민 - tebica story()

  • feel

    확실히 상품을 파는 모습을 보면 의아해 하긴해요.
    하지만 스스로가 여행을 떠나서 자유를 찾으며 일을하는 리얼 디지털 노마드를 보면 설레여요.

    • 김종욱

      의견 남겨주셨는데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자기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저 역시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