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復碁)의 의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다가 내 마음을 울리는 부분을 접할 때면 나는 ‘물리적’ 소름을 느낀다. 귓바퀴 뒤편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살갗을 휩쓴다. 똑같은 감각이 때로는 팔꿈치에서부터 어깨 부근까지 팔 전체를 감싸기도 한다. 대체로 이 느낌은 2초 안팎 유지하고는 푹 꺼진다.

오늘은 달랐다. 10초 이상 긴장감이 이어졌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매일 퇴근 후 하루를 복기(復碁)한다. 바둑에서 ‘복기’란 어떤 의미가 있는 행위인가.

“복습이자 미래를 위한 설계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Why][곽아람 기자의 캔버스] 바둑인생 58년… ‘戰神’조훈현

누가 보면 뻔한 한 마디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는 말은 화살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승리도 패배도 모두 내 경험이고, 경험은 곧 자산이다. 누구나 삶의 순간순간에서 몇 번의 승리와 (대체로 승리보다 자주) 패배를 경험한다. 저 말을 한 조훈현은 프로 바둑 기사로 지금까지 2700회 넘는 대국에서 1900번 이상을 승리했다.

패배보다 승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조차 패배를 되돌아보고, 그런 다음에야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 내가 과연 얼마나 내 과거를 복기하면서 살아왔는지를 가늠해본다. 거의 없다. 일기를 때때로 쓰긴 한다만 그저 그날 하루 무엇을 했고 당장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기록했을 뿐, 내 패배와 승리의 경험을 제대로 복기해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기억나는 복기의 순간이 있긴 하다. 2년 전 진로 고민이 절정이었을 시기에 짧은 삶의 궤적을 정리해서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때의 감정과 주변 환경이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복기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런 되돌아보기의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겨울 에버노트에 저장해두었던 ‘뒤돌아보다‘라는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회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들춰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 이해하고 현재를,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고 또 그걸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나온 실행이 가치 있습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형성된 감정적 공유와 상호 이해가 가치가 있습니다.

조훈현이 매일 했을 ‘복기’가 김창준에겐 ‘회고’인 셈이다. 두 단어는 그 분야와 이름만 다를 뿐,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은 행위를 지칭한다.

복기하는 삶을 살겠다. 당장 오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