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2013년 4월 13일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 테마 변경 기념으로 글을 하나 새로 쓸까 하다가, 그냥 과거 유물을 한 번 끄집어냈다.

쓸데없이 부린 기교를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남이 쓴 글이었다면 욕을 한 바가지로 했을 듯), 지나치게 긴 문단 길이에는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지금 이걸 읽으면서 ‘2년 전과 비교하면 아주 조금은 나아졌구나’를 체감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년 후의 내가 2015년의 내 기록을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를..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 모두가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 것인데요, 이 정체성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예술가가 되는 거예요.

뉴욕에 갔을 때, 택시를 탔어요. 연극 관련한 게 붙어있길래, 택시 기사한테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 프로필이래요. 당신 그럼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봤더니 연극 배우래요. 택시 기사지만 연극을 하는 거예요. 무슨 배역을 주로 하냐고 물어봤더니, 아주 자랑스럽게 ‘리어 왕’이래요. 바로 이런 세상이 제가 꿈꾸는 세상이예요.

한 사람이 낮에는 골프 선수이면서 밤에는 작가이고, 택시 기사이면서 연극 배우이고, 은행원이면서 화가. 살아가면서 은밀하게 또는 공개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예술을 해나가는 것이지요.

– 소설가 김영하의 2010년 TEDxSeoul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마지막 부분을 재구성

소설가 김영하의 테드 강연은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덕분에 나도 펜을 들고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전에도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일기장에 손글씨로 적기도 했으며, 컴퓨터로 작성해 따로 저장하거나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오늘은 내가 왜 그렇게 글을 써왔는지,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위의 강연 녹취록은 앞서 언급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계기이면서, 이전에 내가 글을 써왔던 이유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바로 다중의 정체성을 언급한 부분이다. 다중의 정체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설핏 부정적인 무언가를 떠올린다. 골룸과 스미골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아는 분들이라면 범죄가 얽힌 이중 인격자를 떠올릴 것이다. 혹은 다중인격장애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극적으로 재구성된, 혹은 질병으로 분류될 법한 중증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다중의 정체성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쯤에서 많은 분들이 심리학자 융의 개념인 페르소나를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명확하게 규명된 바 있다. 2000년 전에 키케로는 자신의 저서 『의무론』에서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페르소나가 있다고 규정했다. 현대적인 심리학 용어로 쓰이기 이전부터, ‘페르소나’라는 용어는 키케로에 의해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쉽게 말해, 사람에게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하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쭉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내가 존재한다. 평소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대체로 ‘즐거움’에 가깝다. 남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봐도 크게 틀린 설명이 아닌듯 싶다. 시간이 남아돌 때, 나는 주로 인터넷에서 유머 사이트를 휘적거리며 시간을 허비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들락날락했던 디씨인사이드는 여전히 나의 인터넷 사용 습관에 영향을 미치는듯 하다. 다만 일베는 가지 않는다. 사실 최근 들어서는 아주 작은 규모의 유머 사이트를 애용하는데, 시간 때우기에 이만한 것이 또 없다고 생각한다. TV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단연 개그콘서트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미대 입시생 과외때문에 방송 시간에 수업을 해야 했지만, 그 기간을 빼고 생각해보면 본방송을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가 유일하다. 또 나는 수다떨기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비밀을 캐거나 뒷말을 하는 것은 삼가지만, 여럿이 어울려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삶의 큰 낙이다. 단점이라면, 남자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는 사실이다. 수다에 술이 빠질수는 없다. 맨정신으로 대낮에 하는 썰풀이도 그런대로 맛이 나지만, 어둑어둑해질 무렵 시작해 잔이 꺾일 때마다 흥이 더해가는 술자리 이야기판이야말로 진정 ‘말의 맛’을 느끼는 자리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는 아니다.

나는 진지한 것도 좋아한다. 술자리 이야기판에서도 가끔 흘러나오기 마련인 진지한 주제들 말이다. 그러한 것들도 위에서 말한 것들 못지 않게 좋아한다. 우선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어 공부법에 대한 방법론부터 시작해, 앞으로 연재할 예정인 영문법에 대한 나만의 설명, 더 나아가 영어가 한국의 사회와 계층을 분리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평, 한국 영어 공교육의 한심한 작태, 한국 영어 사교육계의 불안감 마케팅 비판 등이 나의 주요 이슈이다. 영문학 전공이다보니 문학을 비롯한 독서 이야기도 빠질 수가 없다. 실용서가 전해줄 수 없는 깊은 울림과 예술적 영감은 문학 작품을 읽는 진정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인생이 고단하고, 빠져나올 길 없는 허무감에 젖어들 때가 있다. 그러한 부정적 감정의 늪에서 삶을 건져올릴 수 있는 힘은 결국 철학하는 힘에서 비롯된다. 철학하는 힘은 철학을 다루는 책을 읽으며 단련하는 것이 가장 느리면서도 가장 빠른 길이다. 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해 한탄하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점에 대한 생각은 한 두마디 말로는 명쾌하게 표현하기 힘들다. 사회의 지향점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정치를 말하게 된다. 나는 분명 정치적 진보주의자이다. 특정 정당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사회를 다루는 규칙으로서의 정치를 생각할 때, 역사가 그려온 궤적과 앞으로의 지향점을 생각할 때, 나는 분명히 진보주의자임을 밝힌다. 진보적 신념과 행동의 강도에 비례해서, 한국 사회는 진보주의자들에게 ‘불편함’을 청구한다. 나는 실제 정치판에 뛰어들겠다는 꿈은 접었다. 생계를 위협할 만한 불편함이 나에게 청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순간순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는 언쟁을 주고받았으며, 이러한 생각을 피력할때마다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고 마무리되는 훈계를 받아왔다. 그러한 순간마다 솔직히 힘이 든다. 내가 지지하는 내용이 타인으로부터 논파당할 때도, 혹은 내가 그러한 상대방을 논파할 때도, 공히 밀려드는 씁쓸함과 허무함은 막을 길이 없다.

이러한 것들은 ‘즐거운’ 내 모습으로는 마냥 풀어낼 수가 없다. 햇살 좋은 날 카페에 앉아있는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대학 선후배, 동기와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는 ‘5년 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속한 페이스북에선 유머 사이트의 자료를 걸어 올리며 재미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그러나 내 속에는 그것들과 다른 결을 가진 생각이 분명 존재한다. 친구들과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내 모습’이 호흡을 하듯, ‘진지하며 힘든 내 모습’도 어디에선가 호흡을 해야한다. 목소리로 쉽게 호흡할수 없는 내용들이라면, 글을 통해서라도 내뱉어야 한다. 그리고 글쓰기야말로 그것을 위한 가장 확실한 통로이다. 몇 번이고 다듬고 정제할수 있기에 글쓰기는 말하기에 비해 오해의 소지를 크게 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진지하고 무거운 내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가끔 내가 쓴 글에서 평소의 나를 볼 수 없다는 평을 듣는다. 그에게 나의 글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면 어쩔 수 없다. 글을 쓰는 나는 평소의 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과 바람으로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이 점은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일찍이 마셜 맥루한이 말한 바, 미디어는 곧 메세지라고 했다. 내 속의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은 완결된 형태로서의 글이라는 매체와 함께할 경우에만 온전히 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