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와 종이신문

세 달 전의 경험과 오늘 낮의 경험이 만들어낸 합치점에 대해 간단하게 기록하려고 합니다. 제목과 카테고리를 보면 아시겠지만,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관한 감상입니다. 이야기의 결론은 ‘씁쓸함’ 입니다.

[1] 2014년 6월 2일. CD

지난 6월 2일, 의정부 근처에서 지방선거 취재를 마치고 의정부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음반가게를 발견했습니다. 교보 핫트랙스가 아닌 일반 소형 음반점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가게 안에 들어갔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힙합음악을 꽤 좋아했었고, 그땐 곧잘 CD를 사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반가게를 발견하면 그 시절 생각이 나서인지 꼭 한번씩 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정부역 근처 '아트음악사'. 꽤 오래된 매장이라고 하네요.

의정부역 근처 ‘아트음악사’. 꽤 오래된 매장이라고 하네요.

들어가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오래된 음반과 최신 대중가요, 그리고 몇몇 힙합 명반들을 들춰보며 10분 정도를 보냈습니다. 가게에서는 퍼렐 윌리엄스의 ‘걸'(GIRL) CD를 사왔습니다. 나스의 ‘일매틱’ 20주년 기념판을 두고 한참 고민했지만, 그당시 유튜브에서 퍼렐의 ‘해피’를 워낙 많이 듣던 때라 결국 그 음반을 산 것이지요.

나오면서 찍은 인증샷

나오면서 찍은 인증샷

휴대용 CD플레이어가 없으니, 지하철에서는 당연히 음악을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구요. 다른 곡들을 못들어봤을 뿐이었지, 앞서 말했듯 음반의 대표곡인 ‘해피'(Happy)는 이미 무척 많이 들었던 곡이었으니까요. 저녁에 집에 가면 PC를 통해 mp3리핑을 해서 스마트폰에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CD를 PC에 넣었습니다.

그런데…저희 집 PC가 CD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더니 고장난 것이었습니다. DVD±RW의 트레이 자체는 정상 작동했지만, 아무리 여러번 CD를 뺐다 넣어봐도 아이튠즈는 아무런 정보를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한때 이 기계도 '혁신'의 무대였는데 말입니다...

한때 이 기계도 ‘혁신’의 무대였는데 말입니다…

그때 참 허무했습니다. 음악산업이 붕괴하고 있다거나, CD 등 음반 판매량이 급감한다는 사실이야 뉴스를 통해 늘상 접하던 것이었죠. 그런데 막상 제 눈 앞에서 CD라는 존재 자체가 그렇게 무용지물이 된 것을 보니… CD가 시장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만 CD 사용법을 잊어간 게 아니라, 기계 환경조차 CD를 잊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건을 겪고 나니, 몇 년 지나면 청소년들은 ‘음악 매체로서의 CD’를 거의 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년 봄에 인터넷에서 잠깐 화제였던 “어린이 친구들은 ‘저장하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디스켓 모양인 것이 무슨 연유인지” 모른다는 사실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이미 지금도 케이스에서 꺼낸 CD를 CD플레이어에 넣는 경험을 하는 청소년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 같구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때 퍼렐의 음반을 손에 쥔 게 몇년 만에 음악 CD를 만지게 된 것이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음악계는 CD의 소멸을 지켜보며 엄청난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관련산업 종사자가 아니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내는 ‘동향과 전망’ 74호의 ‘2013년 글로벌 디지털음악 시장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신규시장 확대와 신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로 디지털음악 서비스가 많은 이용자를 확보함에 따라 글로벌 음악 산업 역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유료 또는 무료로 제공되는 가입형 음악 서비스의 2013년 매출은 전년대비 51.3% 성장하여, 1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예전처럼 CD를 수백만장씩 팔면서 커다란 수익을 올리진 못하겠지만, 음악산업은 일정 규모를 계속해서 유지하거나 조금씩 그 규모를 키워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매체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2] 2014년 10월 6일. 종이신문

오늘 아침 기자실에서 한 신문 기사가 참 눈에 띄었습니다. 기사 주제부터, 제목과 지면편집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회사의 기사였지만, 좋은 건 좋다고 인정해야겠죠.

아무튼, 점심 약속을 위해 기자실을 나서면서 그 신문을 들고 나왔습니다. 오전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못봤으니 이동하면서라도 차분히 읽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역사 플랫폼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면서, 차 내부에 서있으면서, 그리고 전동차 좌석에 앉아있을 때까지, ‘종이신문’을 손에 들고 읽는 게 정말 너무 불편했습니다. 관련 기사가 4개 면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문을 넘겨야 했는데, 바람이 불고 사람이 지나쳐가는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종이신문을 들고 펼치고 접고 하는 행위가 무척 거추장스러웠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신도림역 계단에서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기사 제목을 검색하고, 5인치 스크린으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순간 너무나 심경이 복잡해졌습니다. 신문사 기자인 나조차도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게 편한데, 대다수의 일반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기사를 소비할지 생각하니 참 갑갑해졌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언론사 지망생 가운데서도 유난히 종이신문을 안 보는 편이었습니다. 아이패드로 신문사들이 제공하는 PDF를 봤고, 그 외에는 플립보드로 기사를 읽으며 공부하던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사에 들어오고 나니 ‘편집’의 묘미가 보이더군요. 디지털 기사는 죽었다 깨나도 전달할 수 없는 읽기 경험을 종이신문이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반대 현상도 성립합니다. 종이신문은 죽었다 깨나도 구현할 수 없는 경험을 디지털 기사가 독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도 하지요.

아무튼 저는 날이 갈수록 종이신문의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이신문의 최대 단점을 너무나 절절하게 실감했습니다. ‘이동 중에 보기 불편하다’는 종이신문의 치명적인 제약 말입니다.

 

[3] CD와 종이신문

매체로서 CD는 과거의 영광을 사실상 거의 다 잃어버렸지만, 음악산업은 생존방식을 나름대로 찾아냈습니다.

주요 매체가 CD에서 mp3 다운로드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비트‘ 같은 라디오형 스트리밍으로 꾸준히 탈바꿈하는 동안 음악산업은 ‘돈을 내고 즐기거나’, ‘합법적으로 무료로 듣거나’라는 두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킨 것입니다.

종이신문과 언론산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언론시장에선 주요 매체가 신문(과 방송)에서 데스크톱 인터넷으로, (한국 시장에 한정해서) 데스크톱 인터넷에서도 특히 포털 뉴스사이트로, 그 다음으로 모바일 인터넷으로, 특히 SNS를 통한 모바일 인터넷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그런데 음악시장과 달리 ‘돈을 내고 즐기기’는 뚜렷한 성공 사례가 없고, ‘합법적으로 무료로 소비’하는 게 정착됐다고 보기엔 온라인 저널리즘 시장이 지나치게 왜곡돼 있습니다.

식견이 짧은 탓에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씁쓸한 감정을 많이 느낀 하루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둠이 가시고 해가 떠오르듯, 언론산업에도 태양이 떠오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