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행 지하철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작년 글이다. 요즘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문득 생각났다. 묵혀두기 아까워 백업. 지금 다시 읽어보니 쉼표 사용이 너무 많고 어휘 선택도 조금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지난해 내 생각과 글의 모습이기에 그대로 싣는다.


 

푹푹 찌는 여름날, 동대문역에서 인천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 내려간다. 마지막 계단에서 발을 떼자마자,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과 음악이 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The train for Incheon is now approaching.”

 

3 – 4 플랫폼을 통해 탑승 후 10번 칸을 향해 걸어간다. 종로 5가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린다. 10m 앞 자리에서 여자 한 명이 일어났고, 그 자리를 쳐다보며 걸어갔다. 막상 다가가보니 바로 옆에 한 할아버지께서 서 계셨다. 등이 굽고 옷차림은 허름한 우리 시대의 할아버지. 당연히 자리에 앉지 않았는데, 당신께서는 다음 역에서 내리신다면서 나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다음 역까지라도 앉아서 가시라고 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거의 강제로 나를 앉게 하셨다.

 

“How old are you?”

 

대뜸 영어로 질문하시는 할아버지. 한국인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는 상황을 민망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스물 여섯이라고 대답했다.

 

“I’m 84. 내가 여든 넷이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보통의 젊은이들이 잘난 체 하며 영어를 섞어 말할 때 느껴지는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뒤늦게 영어라도 배우시는가 하고 생각했다. 요즘 영어를 배우시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내가 이북에서 내려왔어.”

 

노년층의 진부한 고향 이야기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Do you have a girlfriend?”

 

개연성 없는 질문에서 불안감은 더 커졌다.

 

“No.”

 

얘기가 길어질까봐 거짓말을 했다. 이때는 나도 영어로 대답했다. 오기라도 발동했던 것일까?

 

한 정거장, 3분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늘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김일성 종합대학 3학년 중퇴야. 영어 일어 다 잘한다고. You’re beautiful.”

 

“네?”

 

“Beautiful, 젊은이 보기 좋다고. 영어 열심히 해. 나중에 다 도움이 될거야. 나는 영어 일어 다 잘하는데…”

 

“아…”

 

할 말을 잃고 얼버무리고 있을 때, 우리는 종로 3가에 도착했다.

 

“See you.”

 

늦깎이 영어를 익힌 할아버지의 발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드러웠다. 외워서 하는 몇 마디 영어가 아닌, 오랜 세월 그와 함께한 숨쉬는 영어였다.

 

여든 넷이라는 나이를 거꾸로 계산해보니, 6.25 전쟁 발발 당시 할아버지는 스물 한 살이셨다.

 

식민지 조선에서 그리고 해방 이후 신생 국가에서, 할아버지는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젊은이였을 것이다. 이념을 떠나, 한 지역에서 촉망 받던 젊은이가 다른 곳으로 피난 와서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생각해보니 전쟁 이후 한국에서 무언가 한 몫 해냈겠구나 싶었다가도, 허름한 행색으로 보아하니 우리 나라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와 같은 20대 중반 청년들을 볼 때마다,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당신의 대학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굳이 영어 몇 마디를 꺼낸 것이리라 이해하기로 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의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하기엔 그의 언어는 정확했고, 애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