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용, 균형을 찾아야 한다 – 뇌를 위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이젠 ‘알기 쉬운 인터넷’ 종류의 책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은 당연히 아는 것이 됐고, ‘스마트’ 운운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은 삶의 기본 조건이 됐다. 그런데 이런 환경을 두고 이유 모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인터넷을 많이 하다 보면 집중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 둘째,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서보다 말을 막 하는 것 같다는 느낌.

이런 ‘느낌’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파헤치는 것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핵심이다. 느낌이나 막연한 생각 수준을 뛰어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무기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다. 그리고 우리 머릿속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 변화가 왜 문제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쓰인 보조 도구는 인류의 지(知)적 역사다. 책과 논문, 기사와 인터뷰 등을 포함한 380개 이상의 후주와 54권의 추천도서를 제시하면서 저자는 꼼꼼하게 주장을 펴쳐 나간다. 광범위한 조사, 훌륭한 논지 전개와 그에 이어지는 결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전통적 읽기란 곧 ‘깊이 읽기’다.

2. 깊이 읽기는 독자가 고요함을 찾도록 유도하고, 독자는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3. 고요함과 집중을 통해 독자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깊이 있는 사고는 ‘문화’를 가능케 한다. 그렇게 인류의 문화가 발전해 왔다.

4. 인간의 ‘공감’과 ‘열정’에도 고요함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런 고차원적 감정은 매우 세심한 정신적 과정이다.

5. 3에서 말한 문화와 4에서 말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열정은 인간성의 핵심이다.

6. 인터넷은 ‘깊이 읽기’를 방해한다.

7. 그렇게 인터넷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인간의 문화, 감정의 폭에도 영향을 미친다.

8. “우리에게는 이 같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에 대해 주의할 의무가 있다”(323쪽)
◊ 인터넷과 우리의 뇌

‘당장 인터넷을 끊자’는 식의 선동은 없다. 대신 문자 발명과 책, 그에 뒤따른 깊은 사고의 출현을 되짚으며 전체적인 지적 역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의 각종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인터넷이 우리 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그 영향이란 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문화’와 타인에 대한 공감 등 ‘고차원적 감정’에 손상을 입히는 영향이다. (참고로 이 책은 매력적인 주장과 치밀한 조사, 훌륭한 짜임새 덕분에 201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었다)

잠깐, 혹시 저 위의 ‘201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라는 링크를 클릭(터치)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했다면 왜 했는가. 하지 않았다면 왜 안했는가? 지금 나는 이것을 왜 묻는 것일까? 잠시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서 우리가 수만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두뇌의 작동 방식을 살펴보자.

우리의 친척뻘인 동물들의 뇌와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의 인간의 뇌는 산만하다. 우리는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최대한 알기 위해 시선을 계속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결과 관심이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성향이 있다.(99쪽)
우리의 관심이 신속하고 반사적으로 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는 포획자가 갑자기 습격하거나 우리가 주변에 있는 식량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것 같은 위기 상황을 최소화한다. (100쪽)

인간이 언제나 지금처럼 모든 동물과 자연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식량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워 에너지를 모으고, 혹시라도 맹수가 나타나면 곧장 도망쳐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었다.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 두뇌는 눈과 귀로 들어오는 미세한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 반응하도록 변화했다. 이런 두뇌의 움직임은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에 아래 같은결과를 초래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러분의 뇌는 위에서 ‘201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라는 하이퍼링크를 발견한 순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클릭(터치)할지’를 고민했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며 링크들을 평가하고, 또 관련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방해가 되는 문서나 다른 정보로부터 뇌를 분리시키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정신적 조정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독자로서 우리가 링크와 마주칠 때마다 적어도 몇 분의 몇 초라도 멈추고 우리의 전전두엽 피질이 그것을 클릭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토록 해야 한다. 글을 읽는 데서 판단하는 것으로 우리의 정신적 자원의 방향이 전환되는 것을 감지조차 못할 수도 있지만(우리의 뇌는 활동이 빠르다) 이는 특히 자주 반복되었을 때 이해력과 기억력을 저해한다. (183쪽)

인용구에서 “지속적으로 정신적 조정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 중요하다. 책을 읽는 두뇌와 달리 인터넷 문서를 읽는 두뇌는, 본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는 전제 하에, 본문에서 뻗어나가는 하이퍼링크(예:’2011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와 그림 파일 혹은 광고부분에 계속해서 시선을 빼았긴다. 혹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시선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면, 윤지만님의 이 포스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현재 한국 인터넷 환경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언론사 홈페이지와 네이버 뉴스 페이지를 분석한 포스팅이다. (물론 여러분은 방금도 ‘윤지만님의 이 포스팅‘ 링크를 클릭할지 말지 고민했을 것이다. )

한편 인터넷 읽기는 단순히 “읽는 데서 판단하는 것”으로 바뀌는 수준의 결과만 초래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온라인 문서 읽기는 훑어보기 형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 또 다른 문제다.

제이콥 닐슨의 실험 결과를 표현한 그림(그림을 클릭하시면 출처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제이콥 닐슨은 2006년 인터넷 사용자들에 대한 시선 추적 실허을 실시했다. (…) 대다수는 문서를 재빨리 훑었으며, 그들의 시선은 대략 알파벳 F의 형태를 띠며 페이지 아래를 향해 건너뛰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문서의 첫 번째 또는 세 번째 줄까지는 끝까지 살펴본다. 이후 그들의 시선은 약간 아래로 떨어지고, 몇 줄 더 가서 가운데 정도까지만 재빨리 살핀다. 결국 그들은 페이지의 왼쪽 아래쪽으로 옮겨 힐끔거린다. (200~201쪽)
그는 당시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고 질문했었다. 답은 간결했다. “읽지 않는다”였다. (202쪽)

 

결국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읽기는 (1) 지속적인 클릭(터치) 판단의 개입때문에 읽기 과정 자체가 버거워지고, (2) 그런 판단 개입이 없더라도 F자 형식으로 문서를 빨리빨리 훑어보는 습관을 만들어낸다. ‘깊이 읽기’의 쇠락이다.

 

◊ 깊이 읽기의 중요성

이쯤 되면 누군가는 문제 제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깊이 읽기’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는 문제 말이다. 사실 ‘깊이 읽기’는 인류의 지적 역사에서 매우 비정상적인 행위다. 그런데 이 비정상적인 행위야말로 인류가 지금 같은 문화를 쌓아올리는 출발점이었다.

문자 발명 전까지 인간은 음성 언어에 의존해서만 생각을 나눴다. 그런데 음성 언어로 이뤄지는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잠깐 딴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무슨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라고 물어보는 장면,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대화만으로는 한 가지 주제를 꾸준히 파고들기가 힘들다. 기록은 차치하더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의 특성상 한 가지 주제만을 치열하게 고민하기란 우리에게 매우 힘든 작업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준 게 문자의 발명이다. 그러나 문자 자체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음성 언어의 호흡과 강세에 해당하는 띄어쓰기와문장부호가발명되고정착되기전까지사람들은단어가연이어적혀있는텍스트를읽어야만했다. 또한 음성 언어는 강세로 의미 전달이 가능한 탓에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매번 어순이 달라질 수 있다. 초기 문자 생활에선 어순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정형화되지 않았었다. 한글텍스트는그나마사정이낫지만로마자텍스트는정확한어순띄어쓰기와문장부호가없다면읽어내기가매우힘들다. Youarenowreadingthispassagethatiswritteninanawkwardmanner와 You are now reading this passage that is written in an awkward manner를 비교해 보자. 모두가 공유하는 어순,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가 정착되기 전까지 위처럼 줄줄이 작성되던 글쓰기 방식을 ‘스크립투라 콘티누아'(Scriptura continua)라고 한다.

‘스크립투라 콘티누아’ 시절, 사람들은 글을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의 시작과 끝을 구별해내는 데 많은 정신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다. 이것은 그 당시 독자들에게 “추가적인 인지적 부담”(96쪽)을 안겨줬다. 의미 분절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곧장 알아낼 수가 없으니 텍스트 따라가기에 급급했으며, 저자의 글을 오해하지 않고 읽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이런 과정에 두뇌 에너지가 총동원되는 상황에서, 저자의 의도를 궁금해한다거나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심화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기원후 1000년 이후 띄어쓰기가 개발·보급되고, 15세기쯤이면 이탈리아 인쇄업자 알두스 마누티우스 덕분에 유럽에는 문장부호가 널리 보급된다. 그리고 인류 역사엔 본격적인 지성과 문화가 펼쳐졌다.

단어 사이에 띄어쓰기 공간을 두는 것은 문자를 해석하는 데 드는 인지적인 부담을 덜어주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조용히 그리고 더 깊이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했다. 젊은 독자들에 대한 최근의 연구가 밝혀냈듯 이를 위해서는 뇌 회로의 복잡한 변화가 요구된다. (98쪽)
뇌가 글을 해석하는 데 더 능수능란해지면서 과거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었던 것이 기본적이며 자동적으로 행하는 과정이 되었고, 뇌는 남는 힘을 의미 해석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깊이 읽기”라고 부르는 방식도 가능해졌다. (99쪽)
비교적 방해받지 않고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정신 발전 역사에 있어 불가사의하면서도 이례적인 일(100쪽)

여기에 기폭제가 된 것이 1445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 ‘깊이 읽기’를 가능케 하는 책은 이제 금속활자 덕분에 값싸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고민을 읽고 이해하고, 심도있게 고민한 뒤 자신만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게 됐다.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상징이나 성직자의 말 속에 담긴 종교적인 계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 수도원과 상아탑에 갇혀 있던 문학적 사고는 이제 보편화되었다.(100쪽)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는 윌리엄 워즈워스, 랄프 왈도 에머슨, 제인 오스틴, 플로베르, 헨리 제임스, 제임스 조이스 등 위대한 작가들과 에드워드 기번, 데카르트, 로크, 칸트, 니체, 다윈, 아인슈타인, 케인스, 토머스 쿤, 레이첼 카슨 등 근현대 인류의 지성사를 장식한 위인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기념비적인 지적 성과물 중 그 어느 것도, 긴 글을 인쇄물 형태로 효율적으로 재생산하는 데서 촉발된 읽기와 쓰기, 또한 인식과 사고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했다.(117쪽)

‘깊이 읽기’는 곧 인류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핵심 동력이었다.

 

◊ 문제는 ‘가소성’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앞서 살펴봤듯이 ‘깊이 읽기’를 근본적으로 방해한다. 특히 요즘같이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대에, 우리는 눈 뜨고 있는 내내 인터넷 방식의 글읽기를 계속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니 인간의 뇌가 말랑말랑하다는 사실이다. 바로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다.

혼히들 성인이 되면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두뇌의 성장 자체가 멈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십년에 걸친 뇌과학 연구 결과를 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라도 인간의 뇌는 얼마든지 변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뇌가 언제나 유동적이며 환경과 행동의 작은 변화에도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결론(…).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유명한 신경 연구학자인 알바로 파스쿠알 레온은 “가소성은 일생을 거쳐 신경조직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경험과 행동에 반응해 끊임없이 변하고 개별 감각의 입력, 동작, 연관성, 보상 신호, 행동 계획, 인식의 변화 등에 따라 회로를 재조직한다. (56~57쪽)

가소성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맞춰 뇌가 변한다’는 것이다. 뉴런이나 시냅스 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한 번 변한 뇌는 그만큼 해당하는 사고 방식을 수월하게 하고, 심지어는 “형성한 회로를 계속 작동시키고 싶어 하도록 우리를 조종”(61쪽)한다. 문제는 그 이면에 숨어있다.

일상적인 행동은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되는 반면 사용되지 않는 회로들은 가지치기당하는 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연하다는 것이 곧 탄력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든다.(61쪽)

계속해서 간섭받고, F 방식으로 빠르게 훑어보기가 지배하는 인터넷 읽기 방식에 맞춰 우리 뇌의 회로가 재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연성이 없는 우리의 뇌는 어느새 인터넷 읽기 방식의 뇌로 변해 버린다.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더라도, 예전처럼 차분히 읽을 수 없다. 이미 우리 뇌의 글 읽기 방식이 변해 버려서다. ‘인터넷을 많이 하면 산만해진다’는 느낌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컴퓨터를 쓰지 않을 때도 두뇌의 활동이 예전같지 않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사람들이 기억을 점점 인터넷에 “아웃소싱”(285쪽)하는 경향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좋게 보이는 이 흐름은 사실 한 개인의 사고 능력에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 있다. 원래 우리의 뇌는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때마다 사고 능력을 더욱 예리하게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하는 능력을 계속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억을 확장할 때마다 지적 능력은 향상된다. 인터넷은 개인적인 기억에 편리하고 매력적인 보조물을 제공하지만 인터넷을 개인적인 기억의 대안물로 사용하면서 내부적인 강화 과정을 건너뛴다면 우리는 그 풍부함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텅 비게 하는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것이다.(280쪽)

‘정보의 바다’가 되려 우리의 머릿속은 공허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인터넷에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기억 능력이 약해진다.

우리가 온라인에 있을 때마다 받아들이게 되는 서로 다른 메시지의 유입은 (…) 전두엽이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억의 강화 과정은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 (283쪽)

이런 흐름의 종착점은 다음과 같다.

또 신경 통로의 가소성 덕분에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의 뇌는 더욱 산만해지도록 훈련받는데, 이를 통해 정보를 매우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하긴 하지만 지속적인 집중은 불가능하다. 이는 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컴퓨터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를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283쪽)

 

◊ 깊이 읽기는 사라질 것인가

한편 인터넷 문서의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쇄물조차 이젠 인터넷 문서와 비슷한 편집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많은 잡지들은 웹 사이트의 느낌과 모양을 따라 하거나 최소한 비슷하게 보이도록 편집하고 있다. 잡지들은 기사의 길이를 줄이고, 따로 내용을 요약해주는 글상자를 도입했고, 보기 쉬운 안내문과 사진 설명으로 페이지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144쪽)

어쩌면 우리는 소수의 책과 신문을 제외하고, 웹문서를 닮은 문서만 읽으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깊이 읽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아기들이 어른이 됐을 때인 2030~2040년쯤엔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자와 문명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펼쳐보자면 말이다. 이미 우리는 아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영상 속 만 1세 아이에게, 잡지는 그저 ‘터치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패드’에 불과하다. 다음 영상도 중요하다.

아이패드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없는 종이라면, 아이는 그것을 터치하려고 하지 않는다.

손가락 끝을 갖다 대기만 하면 저절로 화면이 움직이는데, 이 신기한 물건을 두고 18개월 아기가 무슨 수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있을까.

 

◊ 지성의 후퇴와 함께 감성 능력도 약해진다

이 부분은 조금씩 생략하면서 통째 인용을 하겠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교의 뇌와 창의력 연구소자인 안토니오 다마시오가 설명하듯이 (…) 고차원적인 감정은 느리게 타고난 신경 처리 과저에서 생겨난다 (…) 인간의 뇌가 물리적인 고통의 묘사에 빨리 반응하지만(누군가가 부상당한 것을 목격했을 때 당신의 뇌에 자리 잡은 원초적인 고통은 거의 즉각적으로 활성화된다) 심리적인 고통에 공감하는 더욱 세심한 정신적 과정은 훨씬 천천히 활성화됨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뇌가 “신체의 직접적인 연관을 뛰어넘어 심리학적 도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난다면 타인의 심리적인 감정을 완전하게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도덕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우리의 살아 있는 통로의 경로를 바꾸고 사색 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바꿔놓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 성급한 결론은 아닐 것이다. (318~319쪽)

결국 인터넷 사용은 지적 능력의 감퇴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까지 약해지도록 유도한다는 암울한 결론이다.

 

◊ 균형 잡기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필로그의 제목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적인 요소들’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같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에 대해 주의할 의무가 있다”(323쪽),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능이라는 것”(324쪽) 정도의 말을 한다.

미국에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11년에는 이런 주장을 본격적으로 담은 책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내 조사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이보다 앞서 같은 주제로 출판되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책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래서일까. 책은 방대한 자료와 놀라운 발견에 비해 결론의 힘이 조금 약하다.

다행히 지난 2014년 4월 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는 이 책이 다루는 ‘지성’ 문제의 결론이 될 만한 글이 올라왔고, 같은달 25일에는 ‘감성’ 문제를 각성할 수 있을 만한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울프는 자신의 두뇌가 ‘이중 읽기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하고 있다. 헤세의 책을 다음날 다시 집어들었고 스크린으로부터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두었다.
그녀는 “‘이걸 꼭 해야 해’라고 제 자신에게 말하고, 모든 것을 치워버립니다”라며 “두번째 밤에도 세번째 밤에도 (책 읽기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2주는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2주가 지나갈 때쯤이 되자 확실하게 예전의 (읽기 능력)을 되찾았고 책을 즐기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Wolf is training her own brain to be bi-literate. She went back to the Hesse novel the next night, giving herself distance, both in time and space, from her screens.

“I put everything aside. I said to myself, ‘I have to do this,’ ” she said. “It was really hard the second night. It was really hard the third night. It took me two weeks, but by the end of the second week I had pretty much recovered myself so I could enjoy and finish the book.”

출처: Serious reading takes a hit from online scanning and skimming, researchers say

(안타깝게도 한국어 자막이 없다….)

가장 핵심을 추려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균형을 잡자”

이미 우리는 인터넷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조금만 노력하자. 책을 읽고, 종이 잡지를 구독하고, 일기를 종이 일기장에 쓰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손으로 편지를 쓰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인터넷 없이 살자는 게 아니다. 우리 뇌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인터넷이 우리 뇌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들을 알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이 글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시계와 지도를 중심으로 ‘매체가 생각을 규정한다’는 논의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정말 고맙다는 말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