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맞이 썰 1,2

*둘 다 지난해 한글날 즈음 페이스북에 작성했던 글인데, 평소 내 생각이 잘 드러났기에 페북 피드에 묻히게 방치해두고 싶지 않아서 옮긴다. 원문을 그대로 복사했기 때문에 평소 블로그 글의 어투와는 차이가 있다. 오타나 어색한 표현을 제거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정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썰 2번에서 말했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 같다.


 

[1]

한글날을 맞이해 온 언론이 들썩들썩..

딴지걸고 싶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애들이 말을 줄이든 말든 신경좀 꺼. 아주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 세대 간 언어차이는 단군 이래 항상 존재했던 현상. 반대로 생각좀 하면 어디가 덧나나?
‘애들이 쓰는 말을 어른이 못알아듣는다’만 때리지만, 사실 어른들이 쓰는 말도 애들은 못알아듣습니다. 이 글 보는 분들 중에 ‘후앙’이 뭔지 아는 사람?

2. 한글이랑 한국어좀 구분해서 썼으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 한글은 맞지만, 한국어는 그냥 언어들 가운데 하나일 뿐. 다만 한국어는 언어 자체로 봤을 때 좀 특이한 구석이 있음– 도통 뿌리를 찾기가 힘듦: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게 일단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지만,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음. 물론 그 반론의 성격은 ‘알타이 어족’으로 보기 힘들다’는 정도지, 한국어의 뿌리를 다른 어딘가에서 찾아오지느 못하고 있음

3. 외래어는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그 의미가 나타내는 바를 현실 속에서 ‘우리화’하려고 노력해야할 대상이지 배척해야할 ‘찌꺼기’ 가 아니다.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이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새끼 재수없다’는 느낌을 들게 하거나 ‘ㅄ 뭔소리하는거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무한정 늘어나기가 힘들다고 생각함.

4. 한국어/한글 지키기는 공교육 국어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으니 한국어단체 관계자분들은 쓸데없이 방송 나오거나 캠페인 벌이지 말고 교육부를 조지세요. 정갈하고 아름다운 한국어 시, 소설, 산문을 읽고 자란 학생은, 말하지 말라고 해도 매끄럽고 명확한 한국어 문장을 말하고 쓸 겁니다.

5. 그리고 글쓰기 교육좀…. 한 편의 글에 주어-술어 불일치는 기본이며 각종 비문이 넘쳐나는 경우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다. 학생들한테 글을 쓰게 시켜봤어야지… 영어랑 한국어를 비교하면 난 그래도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어를 더 좋아하지만, 적어도 글쓰기 문제에 관하자면 우리나라는 미국/영국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2]

한글날 맞이 썰 2탄. 단어가 단어니만큼 어조는 아주 경건 경건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41477 를 읽고…)
인터넷상은 말할 것도 없이, 2013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섹스’라는 단어는 이미 자리를 잡을 대로 잡은 ‘한국어 단어’다.

비록 유래가 서양일지언정, ‘섹스’는 한국 사회가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동안 꾸준히 한국어 사용자들의 어휘 목록에 자리잡았으며, ‘성행위’, ‘성관계’보다 훨씬 친숙한 일상어가 됐다.

그리고 인터넷의 확산과 자유분방한 사회 풍조에 따라 ‘섹스’는 여러 단어와 결합하며 한국어 사용자들의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것들이 음지에 한정돼있고, 대부분 음담패설과 관련돼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섹스’의 형용사형 단어 ‘섹시’는 이미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아주 일상적인 한국어다. ‘야하다’는 말에 담긴 천박함과 ‘성적 매력이 있다’는 말의 노골적임을 피할 수 있는 단어다. ‘섹시’를 한국어 어휘에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제거했을 때 우리 언어 생활은 불편해지면 불편해지지, 결코 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섹스’는 ‘드립’과 결합해 ‘섹드립’이라는 절묘한 조어까지 낳았다. 신동엽이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그건 낮에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거나, 사이먼디가 “다이어트 할 뻔 했는데”라고 말하는 모습을 두고 우리는, 그리고 각종 매체는, 아무렇지 않게 ‘섹드립’을 내뱉었다 칭한다.

‘야한 농담’과 ‘음담패설’이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섹드립’에서는 감지되지 않는다. 물론 몇몇 순진무구한 영혼들이나, 외국어 사용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일부 한국어 순혈주의자들은 ‘섹드립’이라는 단어가 2013년 일상 한국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사실이 불편하겠지만.

정리하자면, ‘섹스’는 자연스러운 한국어 단어다. 그것도 다른 단어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한국어 단어.

상황이 이럴진대, ‘섹스’를 ‘니디티’로 바꾸자는 노력은 헛수고에 수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특정 단어와 그에 얽힌 행위가 금기시되는 현상은 현실 세계의 노력으로 개혁해야지, S-E-X에 해당하는 한글 자판 ㄴ-ㄷ-ㅌ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개혁할 수는 없다.

마치 ‘왕따’를 대신할 말을 만든다고 해서 왕따 현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혹은 ‘병신’을 대신해 ‘장애인’이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한국 장애인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