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공부해도 안 되는 영어”라는 미신

일단 광고 한 편을 보고 시작하자.

대개 우리나라 영어 사교육 광고에서, 영어 못하는 사람은 저렇게 ‘답답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 영어 사교육 광고 대다수의 주된 메시지는 ‘영어 못하는 당신은 바보’다.

‘너 바보’라는 메세지를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단골 멘트가 있다. 바로 ’10년 넘게 공부해도’로 시작하는 몇 가지 전형적 문장들이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말 한마디 못 한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외국에 나가면 쓸모가 없다.

10년 넘게 공부해도 원어민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정말 10년 넘게 영어공부를 해왔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 ’10년 넘게’의 미신을 물리쳐야 한다.

10년 넘게’라는 말은 단지 우리가 영어를 접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뜻일 뿐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동떨어진 표현이다.

현재 20대 중반이신 분들을 기준으로 하자면, 영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하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다. 그들이 10년 넘게 영어를 ‘접한’ 것은 사실이 된다.

그럼 실제로 영어를 학습한 시간을 생각해 보자. 역시 현재 20대 중반인 분들의 학창시절 10년을 기준으로 말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공교육에서 영어 수업은 모두 합해서 1000시수 정도 진행된다.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7차 교육과정 총론‘을 참고함. 고등학교 2,3학년 시수를 160으로 계산) 그나마도 실제 정규 수업은 초등학생의 경우 40분, 중학생 45분, 고등학생 50분이다. 한 시수가 60분에 미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주 후하게 쳐서 60분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우리는 공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 영 사교육의 뜨거운 열기를 반영해, 공교육의 2배를 배정해 보자. 주먹구구식의 근거 없는 계산이지만 내 경험과 관찰에 근거해 생각해보자면 아주 무리수도 아니다. 그러면 사교육에서 받는 영어 수업은 2000시수가 된다. 이것 역시 1시간이라 가정하고, 공교육과 사교육 수업 시간을 합친 뒤 평균을 내보자.

10년에 3000시간

1년에 300시간

1주에 5.76시간

하루에 0.82시간 = 약 50분

아무리 후하게 쳐서 계산해도, 평균적인 공교육과 사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20대 청년은 학창시절 10년간 하루 평균 50분씩 영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엄밀히 따졌을 때 ‘공부’라기보다는 수동적인 ‘수강’에 가까웠을 것이다.

주말과 방학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했기에 엉성한 결과다. 그러나 주말과 방학을 고려한다고 해서, 결과가 그리 희망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자발적 공부 시간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영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을 생각해보면 ‘자습 시간’은 곧 ‘숙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국어 화자가 영어를 쉽게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많다. 그 이유의 폭은 언어 구조의 근본적 차이부터 시작해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강력한 단일언어 공동체라는 사실에까지 걸쳐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차치하고,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간단하다.

 

영어를 안 해서 그렇다.

하긴 했는데, 수업 조금 들은게 고작이라서 그렇다.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똑같은 수사 표현을 다른 과목에 적용해서 말해 보자.

“10년 넘게 수학을 배웠는데, 당신은 아직도 간단한 공식 증명을 못 한다”

“10년 넘게 음악을 배웠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작곡을 못 하시네요”

’10년 넘게 미술을 배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현대 미술의 흐름을 몰라”

 

이제 이 글의 주제가 확실히 와닿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순히 10년의 세월이 흘렀을 뿐이다. 우리가 영어 공부를 10년째 했다는 말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영어 강박증을 심하게 앓고 있고, 그것을 이용한 사교육 업자들이 공포 마케팅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 흐름에 떠밀려서 대다수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다. “10년 넘게 공부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 걸까ㅜ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자학에 빠진 한국의 성인들은 영어 사교육 업자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10년을 해도 안 되었다면, 당신이 잘못 배운 것은 아닐까요? 여기 새로운 방법이 있습니다!

저희만 믿고 따라오세요! 이 방법과 함께라면 10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광고에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알면서 속아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래 같은 책이 유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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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을 조성하고 열등감을 부추기는 저런 영어 장사꾼들에게 가는 관심은 줄어들어야 한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당신, 당신은 초보자다. 잘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는 초보자일 뿐이다.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아직도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바보가 아니다.

영어 공부에 왕도는 없다. 제대로된 내용을 차분히 학습한 후, 그에 이어지는 꾸준한 연습만이 유일한 길이다. 과장된 광고 속 공부방법들은 대체로 ‘꼼수’에 불과하다. 쉬운 내용부터 시작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된다.

내 취미는 달리기인데,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삶의 지혜가 하나 있다. ‘천천히 가야 오래 간다. 오래 가야 멀리 간다.’ 아마 영어 공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아직도 영어를 못한다는 생각을 버리도록 하자. 부정적인 생각은 무얼 하든지 도움이 안 된다. “10년 넘게 공부했어도 안 되는 영어”라는 미신을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