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요즘 읽는 책은 고종석 선생님의 ‘말들의 풍경’이다. 유명 인사는 대개 별다른 호칭을 붙이지 않지만, 그가 지난해 진행한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터라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아무래도 편하다.

‘말들의 풍경’은 지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그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엮은 단행본이고, 이번 책은 2007년 출판된 초판을 조금 수정하고 일부 글을 덧댄 개정판이다. 연재된 글은 지금도 한국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1

고종석 선생님의 책을 네 권째 읽다 보니, 그의 주된 주장과 정신은 굳이 자세히 읽지 않아도 곧바로 이해가 된다. 오늘 읽은 부분 가운데서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가 눈에 띈다. 지난해 글쓰기 수업에서 그가 수강생들에게 숙제로 낸 주제라서 그렇다.

시인 김수영의 수필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신문 연재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았고, 글 말미에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라고 권했다. 지면으로 권했던 것을 그는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과제라는 형식으로 권유했다.

아래는 수강 당시 내가 선택했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이다.

1. 오롯이 – ‘완전하다’는 의미가 훨씬 더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 우리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오롯이 남아있는데…

2. 설핏 – 표준어가 아니지만 ‘얼핏’이라는 말보다 좋다. ‘설핏’은 ‘얼핏’보다 느낌이 여리지만 의미는 더 진하게 이해된다. 고종석 선생님의 어떤 글에서 처음 본 뒤로 나도 즐겨 쓰는 말이다.
: 다중의 정체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설핏 부정적인 무언가를 떠올린다.

3. 형형색색 – 말소리를 듣거나 글자를 읽기만 해도 눈앞에 갖가지 색/빛깔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 형형색색의 조각이 빚어내는 장관

4. 시리다 – ‘가슴이 시리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표현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어릴 땐 슬픈 감정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사춘기 이후에는 슬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때문인지 한창 힙합에 빠졌던 시절(…)에도 바이브 노래는 들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시리게 다가왔다.

5. 알음알음 – 형형색색과 같은 이유다. 말소리와 글자 자체에서 소문이나 소식 혹은 정보가 마치 제 발로 걸어 다니며 전파되는 느낌이다.
: 소문이란 다 그렇게 알음알음 퍼져나가는 법이지.

6. 부부 – 비록 한자는 서로 다르지만 한글로 표기되는 ‘부부’는 부인과 남편을 각각 동일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참 아름다운 말이다.
: 그 집 부부는 참 사이가 좋아 보여.

7. 향긋한 – ‘향기로운’ 보다 코끝이 더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 집 앞에 카페가 하나 새로 생긴 덕분에, 현관을 열 때마다 향긋한 냄새가 나를 반긴다.

8. 삼각 – ‘석’이나 ‘셋’과 달리, 열려있는 모음 ‘ㅏ’가 사용된 덕에 글자와 소리에서 삼각형이 보이는 듯하다.
: 칠판 위에 삼각형을 그려봐.

9. – 한 음절 고유어들이 대개 그렇듯,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의미가 즉각적으로 다가오고, 또 곧바로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 너는 꿈이 뭐니?

10. 어울리는 – 각각의 요소들이 제 독립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한때 내가 인터넷 닉네임으로 사용하던 ‘어울리게’는 이런 내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였다. 그 단어를 닉네임으로 사용하면서 내가 꿈꿨던 건 우리 사회가 독자적인 존재로 당당하게 설 수 있으면서도 타인과 소통할 줄 아는 개인들의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것이었다. 아직 이 꿈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 정체성을 ‘어울리게’라는 말로 규정할 때보다는 그 믿음이 꽤 약해져 버렸다.
: 똑같이 행동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랑 어울릴 줄은 알아야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1. 한국아이닷컴과 한국일보닷컴이 분리된 이후, 네이버 뉴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