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떻게 저걸 모를 수 있지?”

“아니 어떻게 저걸 모를 수 있지?”

‘모르다’ 대신 들어갈 만한 표현으로는 ‘헷갈리다’, ‘그렇게 생각하다’, ‘못 보다’ 등이 있다. 대체로 상대방의 실수를 조롱할 때 하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다른 사람의 글과 말에서 실수를 발견하면 저런 생각을 자주 했다. “아니 어떻게 이걸 그렇게밖에 표현 못 하지?”,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번역한 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했다. 좋게 말하자면 깐깐한 성격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속내가 좀스러웠다.

이런 내 모습을 크게 반성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전 ‘ㅍㅍㅅㅅ‘에 내 글이 올라갔다. 기존에 썼던 이 블로그 글에서 앞부분을 따로 편집한 글이었고,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잡스러운 언어, 영어‘였다.

이 블로그에 공개됐을 때보다 ‘ㅍㅍㅅㅅ’에 게재된 후 글이 훨씬 빠르게 전파되는 걸 지켜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서의 콘텐츠 확산 경로에 관해 생각했고, 며칠 전 읽은 ‘당신을 이걸 읽지 않을 것이다’(You’re not going to read this | The Verge)를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보통 무언가를 공유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다 읽는 사람은 소수라는 사실을 다룬 버지의 기사)

그런데… ‘ㅍㅍㅅㅅ’에 달린 댓글을 보고 나는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만 싶었다.

 

영어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글이었는데, 역사적 사실관계를 완전히 잘못 써버렸다. 실수가 아니었다. 무지와 태만의 결과였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영어영문학 전공했다고 자기소개를 써놓고는 영어 역사를 소개했는데, 사실관계가 완전히 잘못된 서술을 했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리고 ‘ㅍㅍㅅㅅ’에도 굉장히 미안했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이 글은 지난해 학교 커뮤니티에 썼던 글이 그 시작이다. 당시 나는 영어 어휘의 4가지 결을 설명하려고 영어가 받은 영향을 기억나는 대로 아주 간략하게 썼다.

성대사랑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앵글로색슨족을 먼저 언급했고, 그다음에 브리튼 섬의 로마 지배를 썼다. 이때 서술도 지금 돌아보면 사실과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다. 고전-통속 라틴어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건 로마제국 지배보다 로마 가톨릭 전파가 더 오랜 기간 원인이었으니까.

그때 썼던 세 줄의 내용을 이번 블로그에선 꽤 길게 확장했다. 그러면서 저 3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대충 나열했던 목록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자명한 순서가 돼 있었다. 그렇게 내 글에는 ‘로마 침략 – 앵글로색슨 침략’이라는 사실관계가 뒤바뀐 서술이 담겼다.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나는 알아채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댓글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봐도 ‘아니 어떻게 저따위로 쓸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을 작성한 두 분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고 사실에 맞게 글을 수정했다.

실수를 알게 된 다음 내용을 수정하고, 이 글을 쓰기까지 며칠간 생각이 복잡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공격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러면서도 저렇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내 모습이 너무 한심했다.

안 그래도 최근 내 마음이 더 강퍅해졌다는 걸 느끼고 이걸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 사건은 큰 자극이 됐다.

J E Theriot, finger mobile 4 (CC BY 2.0)

J E Theriot, finger mobile 4 (CC BY 2.0)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엄격한 만큼 나에게도 엄격해야 한다는 것과 남의 실수에 함부로 돌을 던지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내 발언, 내 생각, 내 글에서 실수나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조금 더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이번뿐만 아니라 글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지점은 언제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누군가가 말과 글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럴 수 있다’는 인정을 해야 한다. 몇몇 중요한 상황에선 실수를 꼭 피해야겠지만, 평범한 우리 삶에서 실수는 언제나 발생 가능하다.

지난 4일 ‘나·들’이 게재한 인터뷰 기사 ‘10살 소년 살리고 싶었다‘에서 마침 이런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을 발견했다.

손가락 하나를 펴서 남을 비판할 때 나머지 손가락 가운데 적어도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

세 손가락이 나를 향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검지를 펴는 데도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