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다

첫 포스팅에서 “내가 쓰는 글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과 책임감 있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실명 블로그를 개설한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도록 솔직하고 올바른, 혹은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글”이라고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멀쩡히 운영하던 블로그를 버리고 새 블로그를 ‘실명’으로 개설한 건 현실 세계와 인터넷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초고속 인터넷이 완벽하게 보급되면서 우리는 현실 세계의 ‘나’와 인터넷 속 ‘나’의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익명성’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즈음 인터넷은 익명이 보장하는 자유와 함께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끓어오르는 공간이었다. 현실과 완벽하게 다른 공간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겨난 인터넷 카페와 각종 커뮤니티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익명성 뒤에 숨어’라고 칭할 만한 사건이 두드러진 적은 많지 않았다.

아름다운 시절은 생각보다 빨리 저물었다. 2000년대 중반, 인터넷 문화는 빡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 다다르면서 인터넷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마녀사냥 혹은 신상털기 말이다.

누군가가 인터넷이나 현실에서 어떤 실언을 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을 만한 행동을 저지르거나, 하여간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그 사람의 사소한 일상, 과거 발언과 행적이 줄줄이 끄집어져나와 만인 앞에 공개됐다.

말과 글이라는 게 어떻게든 인간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지라, 인터넷 공간이 현실 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상털기가 가속화되면서 인터넷과 현실 세계의 접점은 훨씬 넓어졌다. 시끌벅적한 인터넷 공간은 ‘실체 없는 수다 집합소’에서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로 변했다.

안그래도 심해지던 신상털기는 2010년대로 접어들자 한층 더 극심해졌다. 원인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바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소셜’이 우리 모두의 일과가 되고 온/오프라인 구별이 점점 무의미해지면서, 누군가가 인터넷에 쓰는 글은 곧 실제 세상에서 그가 발언하는 내용과 거의 같은 무게를 지니게 됐다. 이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유명인의 트위터, 페이스북 메시지가 곧바로 그 사람의 ‘발언’으로 인용돼 뉴스를 탄다.

이 덕분에 ‘과거’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와 관계없이 ‘현재’ 글쓴이를 재단하고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의 모든 행적이 까발려지면서 말이다.

인터넷이 점차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최근 기업들의 행보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SNS “전담팀을 두는 것은 기본”이고 다소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SNS 운용 전문가에게 외주”를 주기도 한다.  

현실 세계와 분리된 공간으로서의 인터넷은 이제 없다. 인터넷에서 발언을 하지 않을 자유는 있지만, 일단 발언을 했다면 자기 자신을 숨길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별 생각 없이 인터넷에 남긴 실언 때문에 현실의 내가 곤경에 처한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하나가 되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마 누군가는 “그럼 닥치고 있으면 되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몸의 부지런함이 정신을 따라가지 못해 실제로 써내는 글은 적지만, 늘 나는 글을 써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인터넷 자아와 현실 자아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면, 아예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정했다. 인터넷에서도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 전 이준석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페이스북에서 나 초대하는 수많은 ‘정치’그룹들… 가서 읽어보면 그냥 애초에 내용이 재미없음. 5천만 시민 앞에서 당당하게 할 수 없는 얘기들을 그냥 비슷한 성향의 100명 정도 모아놓고 집단 지적 자기위로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음”이라는 메시지를 보면서 그 목표가 더 명확해졌다.

“인터넷 공간이라 해도, 5천만 시민 앞에서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얘기만 하자.”

여기까지가 바로 앞서 말한 “현실 세계와 인터넷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말의 세부 내용이다.

책임지지 못 할 말은 머릿속에만 간직하려고 한다. 정 답답하면 종이 일기장에 쓰거나…

그런데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고민 없이 작성했던 몇몇 글이 있었다. 모든 글을 다시 점검하기엔 시간도 없고, 사실 그럴 만한 의지도 없다. 과감히 새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비스는 이전부터 눈여겨봤던 워드프레스로.

또한 책임감 있게 활동할 거라면 본명으로 활동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 판단에는 이전에 쓰던 몇몇 인터넷 닉네임과 한때 썼던 영어 이름 모두가 어색했던 경험이 크게 한몫했다. 지금껏 ‘김종욱’이라는 이름 외의 어떤 언어도 내 정체성을 대표하는 데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친한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몇 개는 예외로…)

인터넷에도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겠다는 다짐과 실명 블로그 개설에 맞춰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그리고 이메일 정보까지 모두 공유하며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볼로그 개설 열흘 만에 드디어 하고 싶었던 얘기 하나를 제대로 끝냈다.